내 첫사랑은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사람이었다. 아, 물론 그전에도 좋아했던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의 감정을 가지고 첫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발육이 늦었으면 늦었지, 조숙한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내 첫사랑의 주인공. 그 사람은 나보다 한살이 많았고, 중학교 선도부(지금도 이런 게 있나 모르겠다. 등교할 때 교문 앞에 학생들이 ‘선도’ 표지를 달고 복장이 불량한 학생을 잡아내는 이상한 제도였다) 선배였다. 선배는 키가 컸고 공부를 잘했으며 활짝 웃을 때 보이는 멋진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또 한 가지, 그 나이로는 보기 드문, 상당히 인상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됐을까마는 그 선배 옆에 언제나 애들이 많았던 걸 보면 또래 집단에는 통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 선배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4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줄곧 좋아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간 뒤 만날 기회가 없었다면 그 기간이 훨씬 짧아졌을 것이고(눈에서 안 보이면 마음도 멀어진다니까), 그랬더라면 내 청춘의 방향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학교 밖에서 만날 수 있는 모임이 있었기에 계속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모임 장소에 들어갔더니 한 무리가 모여서 영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영화를 보고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선배 혼자였고, 나머지는 열심히 듣고 있는 중이었다. 살짝 무리에 끼려고 자리를 잡는 순간, 선배가 물었다. “너 <장미의 이름> 봤지? 영화 좋아하잖아.” 나는 냉큼 대답했다. “아, 그럼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선배의 질문이 ‘<장미의 이름> 봤어?’였다면 나는 정직하게 대답을 할 수 있었을 거다. 맹세한다. 그러나 선배는 ‘봤지?’ 하고 물었다. 그 물음에, 그 선배가 나는 영화를 봤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데, 내 옆의 친구가 아닌 나한테 물었는데, 무엇보다 선배와 긴 대화를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어떻게 ‘아뇨, 안 봤어요’라고 대답을 한단 말인가.
내 입에서 ‘그럼요’라는 답이 나간 순간 선배의 눈은 반짝였고, 나는 한 20분가량을 모르는 걸 아는 척, 안 본 걸 본 척하느라고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영화광이었던 언니에게서 곁다리로 들었던 희미한 정보를 기억해내고, 그 정보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말하기 위해서 나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날, 내 첫사랑과 <장미의 이름>에 대해 대화를 나눈 그 20분 동안 내 임기응변술은 완성된 셈이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비디오를 빌렸고, 엄마의 눈을 피해 새벽녘에 일어나 비디오를 봤으며, 구립도서관까지 가서 지나간 영화잡지를 찾아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모임에 나갔다. 그러나 웬걸, 선배를 포함한 모두가 영화 얘기는 잊어버린 듯했다. 그 이후 모임에서 <장미의 이름>이 화제의 대상이 된 적은 없었고, 나도 그 선배와 길게 얘기할 기회를 다시는 잡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가끔 보지 않은 영화를 보았다는 거짓말을 한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서, 허영심 때문에, 집단에서 소외되기 싫어서…. 거짓말 때문에 본 영화들 대부분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장미의 이름>으로 나는 장 자크 아노의 팬이 되었고, 에코의 팬이 되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선배에게 ‘저 그 영화 안 봤었는데요, 선배 때문에 일부러 찾아서 봤어요’라고 말할 솔직함이 있었더라면, 내 첫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통행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