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스카가 있다면 독일에는 롤라가 있다. 롤라는 독일영화상(도이치필름프라이스)의 트로피로 날렵한 나신을 도금판으로 감아 살짝 가리고 있다. 독일영화상은 1951년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출범했으며 지금까지 독일 정부가 주관해오고 있다. 심사기준은 작품의 대중성과 관계없이 예술성에 두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관객의 기호와는 따로 노는, 고리타분한 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관객과 심사위원들의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했으니, 그 공은 볼프강 베커 감독의 <굿바이, 레닌!>에 있다.
지난 6월6일 거행된 제53회 시상식에서 가장 빈번하게 호명된 이름은 레닌이었다. 그리고 총 35억원에 달하는 상금의 대부분을 챙긴 작품도 바로 <굿바이, 레닌!>이었다. 이 작품에 수여된 트로피는 총 9개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다니엘 브륄), 남우조연상(플로리안 루카스), 개인예술상(페터 아담: 편집), 음악상, 미술상(이상 본선부문)을 비롯해 인기작품상과 인기배우상까지 가세했다. 게다가 독일 관객은 <굿바이, 레닌!>을 올해 최고의 독일영화로 선정했다.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동베를린의 한 평범한 주부(미세스 케르너)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의 충격으로 코마 상태에 빠진다.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지만, 그간 동서독이 통일된 사실을 알 리가 없다. 동독 사회주의가 붕괴한 것을 알면 모친이 다시 코마 상태에 빠질까 걱정하는 아들 알렉스는 가족과 친구들을 동원, 동독이 지금도 건재하는 양 웃지 못할 코미디를 벌인다. 장벽이 무너지던 날, 자본주의에 절망한 서독인들이 사회주의 천국 동독으로 물밀듯 찾아왔다는 아들의 거짓말에 미소짓는 어머니. 베커 감독은 특유의 재치와 위트로 이 소시민 가족을 통해 동서독 분단 및 통일의 현대사를 슬프고도 유머러스하게 되짚어 보여준다.
올해 초 베를린영화제에서 푸른 천사상을 수상하며 그 전조를 보였던 레닌의 영광은 비평가들의 극찬과 관객의 환호로 이어지더니 독일영화상 9개 부문 석권으로 그 정점에 달했다. 이 저예산영화를 통해 베커 감독은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따로 노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올 상반기 흥행순위 3위, 자국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2월13일 개봉 이후 지금까지 약 600만명이 이 작품을 관람했다. 상반기 자국영화 점유율이 20%를 넘긴 공도 전적으로 이 한편에 있다고 한다. 이런 선전을 높이 산 크리스티나 봐이스 문화장관은 지난 4월, 연방하원 의원들에게 <굿바이, 레닌!>을 단체관람시키기도 했다. 베를린=진화영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