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진부한 소재를 통해 본 호러의 신세계,<주온>
2003-06-24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 Story

자원봉사자인 리카(오키나 메구미)는 어느 선배의 부탁으로 사치에라는 이름의 노파를 보살피기 위해 집을 방문한다. 집에 도착했을 때 리카는 묘하게도 섬뜩한 기운을 느낀다. 노파는 뭔가에 홀린 듯 망연자실한 상태이고 2층에서 리카는 한 소년을 발견한다. 노파는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리카는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한편 히토미(이토 미사키)는 오빠인 카츠야의 집을 방문하지만 오빠는 그녀를 억지로 돌려보낸다. 이상한 일이 있는 것 같다. 오빠의 집에 전화를 걸지만 아무도 받지 않고 히토미는 화장실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방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나타난다. 이즈미(우에하라 미사)는 귀신이 나온다는 어느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여기서 이즈미는 죽은 아버지를 보게 된다. 수학여행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이상하게 변해 있고 이즈미는 죽음의 기운을 감지한다.

■ Review

공포영화는 ‘무섭다’라는 통념과 결별해도 좋을지 모른다. 미국 공포영화, 특히 좀비영화의 탄생은 호러와 코미디를 급속도로 가깝게 했다. 공포영화가 마니아의 손에서 해방되기 시작한 것이다.” <큐어>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특히 <스크림> 시리즈 이후 미국영화에서 공포물은, 코미디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관객 입장에서 웃어야 할지 아니면 비명을 질러야 할지 난감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영화는 상황이 다르다. 특수효과는 조잡하고 물량공세 역시 할리우드에 비할 수 없는 지경이지만 꾸준하게 ‘정통’ 공포영화가 탄생하고 있다. <주온> 역시 마찬가지다. 원혼이라는 극단적으로 진부한 소재를 통해 <주온>은 호러의 신세계를 열어 보이고 있다. 신인에 가까운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영화에 대해 선배인 구로사와 기요시는 “인체실험이라 불러도 좋을 공포감의 극치”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타란티노 영화에서 힌트를 얻은 것은 아닐까. <주온>은 구조상 <펄프 픽션>과 흡사하다. 다른 캐릭터의 시점에서 각 에피소드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 사이엔 시간적으로 약간의 균열이 있다. 균열의 틈 사이로 물컹한 공포감이 배어나온다. 영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화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느 부부의 죽음이 암시되고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몇년 뒤 리카라는 여성은 어느 집에서 노파를 돌보게 된다. 노파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각 에피소드는 빠른 속도로 시작과 종결을 반복한다. 카츠야라는 남자는 아내가 어느 날 넋이 나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음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히토미. 카츠야의 여동생 히토미는 TV모니터를 통해 괴상한 존재를 본다. 이렇듯 <주온>은 정연하고 고전적인 내러티브의 영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모든 것은 뒤얽혀 있고 시간순서는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관객을 화면에 서서히 몰입시키는 영화의 리듬은, 전례를 찾기 쉽지 않을 만큼 무거운 충격을 남긴다. 매혹적이다.

<주온>은 일본 공포영화 몇편을 연상시킨다. 기괴한 집을 무대로 하는 점에선, 그리고 집에 관한 공포를 다루는 것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스위트 홈>(1989)을, 원혼의 저주가 한없이 전파되는 것은 <링> 시리즈를 닮았다. <링> 시리즈는 <주온>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 TV라는 매체를 귀신 이야기와 결합하는 것, 거울 모티브가 결정적 순간에 등장하는 것도 흡사하다. 영화 속 인물들이 겹겹이 관계를 쌓다가 광범위한 원한의 ‘네크워크’를 형성한다는 점은 <주온>이 <링>의 업그레이드 버전임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의 장면은 아찔하다. 아이의 혼령은 한 여성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씩 올라갈 때마다 각 층에서 여성을 기다린다. 작은 유리창으로 빼꼼히 들여다보면서. 그리고 바닥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면서 접근해오는 어느 ‘물체’는 영화 마무리에 정체를 드러낸다. 샤워를 하고 있으면 뒷목을 슬며시 감싸는 손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각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누군가의 눈(目)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우리를 긴장시킨다. 요컨대 영화는 쉬지 않고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종결부로 향하고 있다.

<주온>은 서사구조가 영화적이라기보다 소설적이다. 혹시 무라카미 류의 <라인>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 있다면, 더 이해하기 쉬울지 모른다. 피해망상, 대인기피, 폭력충동 등에 시달리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쓴 소설이다. 모두가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아무도 주인공이 아닌 작품인 것이다. 전부 피해자이고 또 가해자다. <주온>에서 흘러나오는 공포는 그 양상이 단순하지 않다. 영화는 아슬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현대인이 마주하는 원인 모를 불안감, 그리고 살얼음판 같은 현실의 이면을 담아낸다. 가족도 공포스럽고 집도 공포스럽다. TV도 심지어 곁에 있는 친구도 끔찍하다. 모두 두려움의 대상이다. 같은 이유로 <주온>은 원혼에 관한 공포이면서 동시에 타인에 관한, 즉 ‘관계맺음’에 대한 공포에 관한 영화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독창적인 장르영화로 평하기에도 <주온>은, 부족함이 없다.

:: 제작 에피소드

비디오 시리즈 영화화, 얽히고 섥힌 캐릭터 설명

<주온>을 본 사람이라면 영화가 어딘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원래 <주온>은 일본에서 비디오 시리즈로 제작된 것이다. <주온>과 <주온2>가 그것. 감독인 시미즈 다카시는 이 시리즈의 성공으로 영화 <토미에> 시리즈 중 한편을 연출하기도 했다. 비디오 시리즈인 <주온>은 극장판의 전사(前史)에 해당한다. 극장판에서 원혼으로 나타나는 존재들,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캐릭터들 관계가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된 것인지 설명해주는 것이다. 실종된 아이, 떼로 덤벼드는 원혼들, 그리고 살인극에 이르기까지 비디오 시리즈 <주온>은 극장판의 원형에 해당한다. <주온> 비디오 시리즈는 호러 마니아들 사이에서,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편이다.

<주온>에서 낯익은 이름을 크레딧에서 발견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구로사와 기요시, 그리고 <링>의 각본을 썼던 다카하시 히로시 등이 참여하고 있는 것. 시미즈 다카시 감독이 원래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강의를 듣고 연출세계에 발을 디딘 것을 상기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링> 시리즈를 연출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 역시 <주온>에 대해 호의적인 평을 내렸으며 그는 “한시의 긴장도 늦출 수 없는 영화”라고 논했다.

감독인 시미즈 다카시는 전형적으로 도제과정을 거쳐 감독이 된 경우다. 그는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잠자는 남자> 등에서 연출부로 일했고 이후 TV시리즈와 단편 제작, 그리고 <주온>의 비디오 시리즈를 만들었다. <주온> 극장판에 대한 감독의 자평은 “하나의 스토리 라인보다 서서히 드러나는 인간관계쪽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 것. 그는 <주온>의 두 번째 극장판도 최근 제작했으며 영화는 올해 여름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주온> 한편으로 할리우드까지 알려져 <이블 데드> 시리즈의 샘 레이미와 함께 작업할 예정이라고 한다. 목표는 <주온>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을 만드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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