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이 소녀들을 부탁해,<장화홍련>의 불행한 자매 임수정+문근영
2003-06-25
글 : 김혜리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정진환

손끝이 닿지 않아 가슴을 태우던 영화 속 연인이 푸근한 포옹을 나누고, 한쪽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우던 적수들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수다를 떤다. 한편의 영화를 같이 만든 배우들이 현실로 돌아와 인터뷰라는 명목으로 재회하는 자리는, 그래서 종종 여한을 품고 스러져간 ‘영혼’들을 달래는 기이한 위령제처럼 느껴지곤 한다. <장화, 홍련>의 불행한 자매, 임수정과 문근영을 기다리면서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그토록 슬피 울며 서로를 찾아 헤매던 두 소녀가 한 공간에서 살아 숨쉬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이제부터 볼 수 있겠구나. 장대비가 내리는 따분한 오후 5시. 무슨 일을 하건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각에 두 사람은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오후 내내 빗줄기에 눈을 흘기다가, 하릴없이 TV 앞에서 고양이 흉내를 내기로 의기투합한 언니와 동생처럼, <장화, 홍련>의 임수정과 문근영은 금세 소파 위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얽고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언니, 나 <니모를 찾아서>랑 <폰부스>랑 <나크> 보러 갈 거다.”

영화도 모의고사도 모두 끝나서 어디든 날아가고 싶은 해방감에 풍선처럼 부푼 문근영이 자랑을 늘어놓자, 임수정이 조숙한 입매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고 타이른다. “음, 그건 우리 영화랑 같은 날 개봉하는데 <장화, 홍련> 주인공이 거기 가 있으면 어떡하니?” 문근영의 머루알 같은 눈동자가 더욱 동그래지더니 순하게 궁리한다. “그럼, 우선 하나만 볼래.” 줄곧 “언니, 있잖아” 하며 종알거리는 문근영을 감싸안은 채 어깨 너머 먼 곳에 시선을 두고 다정히 끄덕이는 임수정의 모습은 언니라기보다 작은 엄마처럼 보였다. 놀랄 일도 아니다. <장화, 홍련>에서 동생 수연은 수미의 피조물이니까. 수연의 살과 피는 바로 언니가 흘린 눈물과 신음이었으니까.

언젠가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을, “알의 껍질이 깨지고 잔인한 세계에 내동댕이쳐지는 공포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캐릭터의 저주가 연기자에겐 축복이었을까. 누군가의 어린 시절 혹은 누군가의 딸로 스크린에 입문한 임수정과 문근영은 <장화, 홍련>으로 한 사람 몫의 존재감을 획득했다. 실제 나이보다 놀랄 만큼 어려 보이는 외모를 지닌 두 사람은 스크린에서는 거꾸로 너무 조숙해서 처연한 얼굴로 관객을 바라본다. 아직 어리거나 젊은 두 배우는 묘한 지혜의 향기를 풍긴다. 연약한 임수정은 사물의 이면을 두루 살피는 신중함으로, 천진하고 건강한 문근영은 아주 맑아서 단숨에 핵심을 꿰뚫는 직관으로.

임수정과 문근영은 <장화, 홍련> 촬영장에서 다른 어떤 지시보다 언니의 음성이 동생의 얼굴이 감정의 현을 울리는 큐 사인이었다고 말했다. 울음이 잦아든 뒤에도 언니가 안아주면 다시 서러움이 복받쳐 울었고 동생의 흐느낌은 다시 언니의 눈물을 터뜨렸다고. 세트를 벗어나도 조그맣게 방구석에 웅크려 앉아 있던 동생의 실루엣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수미가 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임수정과 문근영은 수미와 수연이 패배하고 파괴된 그곳에서- 장화와 홍련의 피를 성장의 제단에 바치고- 생기 넘치는 기지개를 펴고 있다. 훗날 두 사람 중 누군가는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꼭 부둥켜안고 어른이 되었고 ‘배우’가 되었노라고.

나비의 비명

누군가 체념하듯 읊조린 적이 있었다. 나비 한 마리 외롭게 죽어간들 그 날갯짓 소리가 들리겠는가. 그러나 <장화, 홍련>의 동생 수연으로 분한 문근영은, 그 나비의 비명이 우리의 귓전을 때리게 만든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옷자락 치렁한 귀신보다 먼저 <장화, 홍련>의 관객을 움찔하게 만드는 것은, 꽈리를 씹다 무심히 찡그리는 수연의 입술, 계모 앞에 겁먹은 수연의 눈망울에 실린 간절한 호소다. 열일곱살 문근영의 말간 얼굴에는 그저 커다랗게 스크린에 비쳐지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를 연연하게 만드는 영화스타의 고전적인 자질이 천연스럽게 깃들어 있다.

<장화, 홍련>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호러’라고 주장한다면, 그 슬픔의 심장은 문근영이 연기한 수연의 것이다. 죽은 자를 죽었다고 폭로하는 첫 클라이맥스가 관객의 마음에 파문을 새기는 이유는, 누구나 예감한 반전의 충격 때문이 아니라, 난데없는 고발에 무방비한 오열을 터뜨리는 것이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날 문근영은 “나는 안 죽었는데… 나는 안 죽었는데…”라고 끝없이 되뇌며 흐느꼈다. 강남 한 극장에서 스탭들과 <장화, 홍련>의 완성 프린트를 처음 보던 새벽녘, 문근영은 “영화, 어땠어요?”라는 영화사 식구의 질문에 또 한번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왜 운 거예요?” 조심스레 때늦은 질문을 건넸다. “스크린에 나온 나를 보면 이상하게 떨려요. 나도 모르게 떨리고 속에서 막 뜨거운 것이 올라와요.” 그리고 미안한 투로 덧붙인다. “저는, 말로 설명 못하는 게 너무 많아요. 엉뚱한 애라서 그래요.”

본인을 ‘엉뚱하다’라는 말로 일축하는 문근영의 감수성과 이해력은 그저 사랑스러운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 날카롭고 때로 시인처럼 하늘을 난다. 영화에서 어느 장면이 좋았냐고 물었더니 “저수지에 발을 담그는 장면을 찍은 날, 무지 추웠거든요. 그런데 영화에는 참 따뜻하게 나왔어요… 신기했어요”라고 영화의 마술에 둔해진 기자를 순진한 감탄으로 일깨운다. 영화 속에서 제 사연을 직접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수연이를 어떤 아이로 상상했냐는 질문의 답도 뜻밖이다. “무서운 아이요.” “무서운? ‘무서워하는’이 아니구요?” “사람들은 수연이는 불쌍한 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무서운 아이예요. 새엄마가 무슨 짓을 했냐고 묻는 언니에게 입을 열지 않는 건,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지만, 직접 듣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발견하면 충격도 미움도 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예요.” 문근영은 <장화, 홍련>을 찍는 동안 중학교를 졸업했고 개봉이 임박해서도 모의고사를 보느라 머리를 싸맸다. 공부 욕심도 놓지 않는 학생이라는 소문이 언뜻 떠올랐다.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데 친구들하고 똑같이 평가받아야 하니 속상하죠?” “속상하지는 않고 아쉬워요.” 비슷해 보이는 두 말을 단호히 구분하는 소녀의 목소리에는 스스로 내린 선택이 뜻하는 바를 선명히 이해하는 ‘어른’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함이 흘렀다.

<장화, 홍련>의 제작과 관련된 모든 사람은, 문근영의 이야기만 나오면 어휘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달콤한 한숨만 흘리곤 했다. “착하고 속깊고 글쎄요, 아휴, 뭐라고 해야 하나, 그 애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허락된 시간 내내, 쌍둥이별을 관찰하는 집요한 점성가처럼 문근영의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별 수 없었다. 두어 시간 뒤 “문근영씨, 만나보니 어땠어요?”라는 질문 앞에서 기자 역시 꼭 맞는 단어를 찾지 못해 허둥거리고 있었다.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문근영 “근영이는 보기만 해도 사람을 흔들어놓는다. 그런 힘은 한국 여배우 가운데 심은하 정도만 발휘할 수 있었던 힘이다. 연기에 대해 지금까지 배운 것을 잊고 자기 안을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꽃처럼 가시처럼

“장미를 좋아한다”고 말한 건 그저 인사였을까? 그럴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고. <장화, 홍련>에서 그녀의 이름은 수미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장화라고 잘못 부르곤 금세 미안해할 것이다. 가시와 꽃이 혼동되기 시작한다.

나이 20살이 훌쩍 넘어 4살을 더 먹었는데도 임수정은 ‘숙녀’라는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소녀의 이미지에 가깝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 머리 하나쯤은 놀려먹을 수 있을 만큼 영리해 보인다. 또는 눈길 한번만으로도 장정 하나쯤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여유로운 듯 앉아 있지만, 날카롭게 세운 귀로는 상대의 말을 단어 하나, 하나씩 나누어 듣고 있다. 패션잡지의 모델로 시작했다… 음… <학교4>라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의 기억력을 꾸짖으며 똑같은 단어를 앞과 뒤에 번갈아 붙여 꼬인 질문을 해도, 웃을 듯 말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조금 엉터리이긴 하지만, 대충 알 것 같으니 정리해서 말해드리죠’라는 표정으로 또박또박 대답을 풀어놓는다.

“오디션 장소에 많이 가봤어요. 많이 떨어져도 봤고. 그래서 가서 즐기는 법도 배웠고요. 사실 김지운 감독님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든요. 떨어뜨리려면 떨어뜨려라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캐스팅됐을 때 너는 행운아야, 사람들이 그러는데, 다들 왜 이러나 했죠.” 지금은 임수정도 그런 주위 사람들의 호들갑이 부러움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 은주, 수연, 수미 역을 다 시킬 때는 “연기를 못해서 시키나보다” 했지만, 죄의식의 경험에 대해 묻는 김지운 감독의 질문에는 아는 대로 대답했다. “구구절절히 말하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여도 될 일이었으니까. 의심 많은 눈초리로 “정말 그런 기억이 있으세요”라고 물어도, “있으니까 대답했죠”라는 짧은 진실이 되돌아온다.

이제 임수정은 수미의 감정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알고 있다.<장화, 홍련> 이전의 임수정은 “내 감정만 중요했다”. 만약 한편의 영화를 마친 배우가 또 하나의 인격과 감정을 얻는 것이라면, 그녀는 이제 걸음마를 막 뗀 셈이다. “내가 이렇게 아픈 아이의 마음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고심했지만, 칭찬에 인색한 김지운 감독의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말 한마디, 프레임 밖에서 언니를 바라보고 있는 근영이의 눈빛이 그녀에게는 감정의 소생술이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한다. 감정의 교환이 무엇인지를. 그래서 <장화, 홍련>은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지친 홍보 순례를 하면서도 임수정은 4개월간이나 갇혀 있었던 그 ‘집’을 그리워한다. “스탭들은 지겹다”고 하지만, 임수정은 문근영에게 “그 집... 가고 싶지 않니” 하고 종종 묻는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이게 다가 아닐까? 장르 때문에, 신인이라는 특성 때문에 제대로 못한 걸 안 보고 넘어간 거 아닐까? 앞으로는 사람들이 배우 임수정을 구체적으로 보게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그녀를 자꾸 되돌아보게 하는지도 모른다. 계절을 빨리 알아채듯, 사람의 냄새도 빨리 알아채는 임수정, 그녀의 옆을 재잘재잘 맴도는 문근영 덕에 몇 시간 동안 임수정은 많이 웃고 있었다. 가시와 꽃을 이제 조금 구별하겠다.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임수정 “임수정은 또래 연기자들에게 찾을 수 없는 고전적인 여성성과 정서를 지녔다. <장화, 홍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 수정이는 자기를 가리는 폐쇄적인 부분도 많고 벽도 많았지만 시간과 더불어 그것들을 천천히 허물어갔다. 성벽이 깨지면 자기 세계가 아주 없어지는 걸로 알지만, 사실 그녀는 유연해지면서 더 견고해질 수 있는 연기자다. 연기를 너무 어렵게 접근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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