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리고 18년 후>의 감독 콜린 세로와 배우 마들렌 베송
2003-06-26
글 : 김소희 (전 씨네21 편집장)
사진 : 이혜정
바구니 속의 아기, 이렇게 컸답니다.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의 18년 뒤, <그리고 18년 후> 들고 온 감독 콜린 세로와 배우 마들렌 베송

결혼이나 가족으로부터 구속받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세 남자가 한 아파트에 모여 산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집 앞에 여자아이가 담긴 바구니 하나가 달랑 놓여 있고, 세 남자 중에 한 사람을 아빠로 지목하며 몇달간 맡아달라는 아이 엄마의 메모가 첨부되어 있다. 아, 이런! 개인주의자 피에르, 자크, 미셸이 마리와 동거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삶의 형태가 부상하는 사회현실을 세밀하고 따뜻하게 포착한 1985년작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는 프랑스 내 박스오피스를 석권하며 세자르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골든글로브와 오스카의 주목 끝에 미국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재미난 프랑스영화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18년이 지났다. 콜린 세로 감독은 그때의 세 아빠와 마리의 18년 뒤를 보여주는 속편 <그리고 18년 후>(2001)를 만들었다. 세명의 남자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바구니 속에 들어 있던 꼬마배우까지 고스란히 출연했다. 이제 18살 숙녀가 된 마들렌 베송은 콜린 세로 감독의 친딸로 제3회 서울 프랑스영화제 참석차 감독 겸 어머니와 함께 내한했다.

<그리고 18년 후>는 가장 오랜만에 나온 속편이 아닐까.

콜린 세로: 아마 그럴 것 같다. 두 영화 모두 기쁘게 촬영했지만 속편이 더 즐거웠다. 기획을 한 즉시 작업에 착수했는데, 세명의 남자배우들이 이 계획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자신들의 일정표를 막아놓고 준비에 들어갔다. 마리의 어머니, 약국 약사도 그대로 출연했고 스탭 중에서는 편집기사가 전편에 이어 속편도 함께했다.

느낌이 특별했을 것 같다.

콜린 세로: 그래도 어쨌든 나에게는 열 번째 영화라서 특별한 건 없었다. 영화 만든다는 일은 언제나 힘든 작업이다. 나에게 배우들이 있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같다.

당신의 영화는 코미디 장르의 특별한 힘을 생각하게 한다.

콜린 세로: 유머러스한 영화를 좋아하며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 영화에는 여러 가지 느낌과 장면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장르 혹은 카테고리에 넣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18년 후>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콜린 세로: 여러 가지 차이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 첫 번째는 서로 다른 아버지상이다. 영화에 나오는 미국인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지시하고 지배하기를 좋아하는 가부장적 아버지다. 반면 프랑스 아버지는 애정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자녀를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한다. 두명의 미국인 형제를 통해서 또 다른 차이를 말하고 싶었다. 잘난 형 잭은 아버지를 고스란히 닮아서 경쟁 지향적이다. 아버지는 결국 경쟁만 하다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았나. 동생 아더는 사랑에 대해 진솔하고 경쟁적인 것을 싫어한다. 우리 사회는 경쟁사회다. 빛난다고 해서 항상 가치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미국과 프랑스를 보는 정치적 시선이라고 해석해도 좋은가.

콜린 세로: 물론 미국을 통해서 경쟁사회를 묘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작은아들을 통해서 또 다른 미국의 모습을 그리기를 원했다. 아들은 미국의 미래를 나타낸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버지이고 그것이 현재의 미국사회다.

마들렌 베송: 아버지와 큰아들은 거의 똑같다. 반면 작은아들 아더는 보호와 간섭에 상관없이 독립적이고, 아버지가 정치적인 모임에 끼는 것을 싫어해도 스스로 참여한다. 물론 두 아들의 선택은 각자의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더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는 상대방과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휴가라는 상황을 설정한 이유는.

콜린 세로: 작은 사회를 만들어서 관찰하는 기회로 삼기 위해서였다. 중요한 것은 세 남자가 개인적으로 독립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서 일종의 부족처럼 산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삶의 양식은 아니지만 그들은 서로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

디지털을 택한 이유는.

콜린 세로: 이번이 두 번째 디지털 작업이다. 디지털은 편집에서 훨씬 용이하고 조명도 필요없어서 일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등장인물이 많았기 때문에 2, 3대의 카메라가 항상 동시에 사용되었는데 35mm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35mm로 상영하지만 머잖아 보는 것도 디지털로 하게 된다면 정말 굉장할 것이다.

<그리고 18년 후>는 이 사회에서 내가 느끼는 생의 감각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한국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이라면 어떤 차이를 느끼지 않는가.

콜린 세로: 한국영화는 오래 전에 한편 본 적이 있고 이번에 전수일 감독의 <파괴>를 봤다. 절망적인 상황이 감명 깊게 묘사되어 있고 배우들의 연기 역시 피상적이지 않은, 깊은 감정을 전달했다. 한국사회 전체가 젊은 사람들에게는 막다른 골목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회가 정말로 그렇게 짧은 기간 안에 흔적도 없이 바뀌는가? 사람과의 관계나 의식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모든 것이 빨리 변화하고 기계나 문명은 최신 상태로 발달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런 리듬으로 사는가? 프랑스는 생활의 리듬이나 변화의 속도가 늦다.

그런 게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프랑스라는 나라를 상상할 때 갖고 있는 이미지일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당신의 영화가 실제로는 중요하고 급격한 사회 변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음에도 내게는 마치 르누아르 그림을 보는 듯한,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소극(笑劇) 한 토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콜린 세로: 흥미롭게 들린다.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려 하지만 체류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잘 알 수는 없다. 뭔가 있기는 한데… 어떤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마들렌 베송: 미국과 프랑스 사람들은 피상적인 데 반해 한국 사람들은 가식이 없고 진실에 가까운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프랑스는 차가운 사회다.

이 대목에서 어머니와 딸은 서로간의 의견을 짤막하게 교환했다. 프랑스어로 나누는 이야기인데다 굳이 통역을 요청할 만한 상황이 아닌지라 대화의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이들이 평소에 서로의 의견을 즉각적으로 교환하면서 귀기울이는 모녀 관계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실 콜린 세로 감독과 마들렌 베송이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자기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언론 매체와 마주앉은 감독과 배우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어쩌면 퉁명스럽다고 여겨질 만큼 자신들의 관심사에 집중했고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화려한 언사를 굳이 피해갔으며 인터뷰어에게 질문하기를 좋아했다. 박스오피스를 석권한 여류 코미디 감독이라는 선입관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대화하고 스스로는 잘 웃지 않지만 남을 잘 웃길 수 있는 예리하고 진지한 페미니스트의 상이 들어섰다. 어느 쪽이든 보는 이에게는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배우 마들렌에 대해 말해달라.

콜린 세로: 사실 오랫동안 망설였다. 마리 역의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오디션도 많이 봤고 그중에는 정말 잘하는 배우도 있었다. 그러나 마들렌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움,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춤도 출 줄 아는 면모를 다른 배우에게서 찾기 힘들었다. 나는 영화인이면서 화가로서 딸의 얼굴을 매우 좋아한다. 딸이 나중에 음악가가 될 거라고 하니, 딸 자랑이나 홍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마들렌이 처음 영화를 만들도록 영감을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들렌은 연기 경력이 있는지.

마들렌 베송: 전혀 없다. 처음에는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니 멋진 경험이 될 것 같았고, 엄마가 아닌 감독으로서 이런 분과 일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만족스럽고 멋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마리 역은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많은 부분이 원래의 내 이미지다. 살사를 배운 지 3년 정도 되었는데 무척 좋아한다. 아더가 하는 다리 들어올리는 운동은 엄마가 아주 잘하는 운동이다. (‘그렇게 힘든 운동을?’ 하는 놀라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감독은 ‘많이 연습하면 된다’며 정답을 알려주었다). 이번 작업은 카메라 뒤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가까이서 본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영화와 음악이 서로 다른 언어를 가졌지만 둘 다 깊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감성(sensibility)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도 의미있었다. 다만 앞으로는 영화를 할 계획이 없다.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이 얘기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관심 끄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재즈를 비롯한 음악에 관심이 많다.

세명의 아빠와 사는 삶을 어떻게 느꼈나. 가장 그럴듯한 아빠는 누구였는지.

마들렌 베송: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아빠는 규칙대로 바른길로 인도하려 하고 진짜 아빠로 설정된 두 번째 아빠는 부드럽게 딸과 같이하려는 사람이고 세 번째 아빠는 재미있게 놀려는 사람이다. 셋이 합해서 한 사람 몫을 하는 것이니까 누구 한 사람을 선택하지는 않겠다.

감독으로서의 어머니에 대해 말한다면.

마들렌 베송: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잠시 생각하다) 엄마는 일을 많이 하고, 특히 멋진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두편의 영화로 포착한 프랑스사회의 변화를 요약한다면.

콜린 세로: 혼자 사는 사람이 급증했다. 특히 30대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주 많다. 여기서는 여성들의 혁명이 있었는가?

독신 여성들이 많이 늘었지만 관행과 윤리, 제도의 측면에서는 새로운 합의가 생성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콜린 세로: 낙태가 법률로 인정되는가? 무료인가?

인정되지만 무료는 아니다. 당신은 프랑스의 지금을 어떻다고 보는가.

콜린 세로: 남자들은 천천히 진보하는 데 비해 여자들은 빨리 변한다. 유럽이 다른 사회에 비해 약간 더 진보한 상태이겠는데, 남자들은 자신이 누렸던 것을 잃어버리고 갈팡질팡하는 단계이고 여자들은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들렌 베송: 여자들이 한편으로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고 하는 반면 프랑스 어디서나 나체 광고를 본다.

이런 상황과 관련하여 당신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콜린 세로: 변화가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안에 대규모 이슬람 교도 집단이 살고 있다.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정당성 없는 전쟁을 하는 바람에 프랑스에 사는 알제리인들은 자신의 것을 유지하기 위해 이슬람교의 극단적인 면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여성들의 위치가 후진적이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들이 누리는 자유가 모든 면에서 늘어났지만 한쪽에서는 살기조차 힘들 만큼 지독한 가부장 제도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 즉 프랑스가 진보하는 동시에 퇴보하는 면도 있다는 사실이다. 2001년에 만든 <카오스>에서 이런 문제를 다뤘다.

한국과 프랑스사회의 변화 상태로 볼 때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 <그리고 18년 후>에 묘사된 삶의 양식은 우리에게 다소 예언적이다. 같은 변화를 앞두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당신의 생각은.

콜린 세로: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생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생을 희생시키지 말라.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라.

<그리고 18년 후>는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강한데.

콜린 세로: 그렇다.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마리와 아더의 모습대로 그들의 미래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육체적 사랑만이 아니라 둘이서 많은 일들을 함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주고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서로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가정부 역의 부인이 돌을 잔뜩 지니고 다니다 버리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콜린 세로: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갖고 다니는 고통이 있다. 어느 날엔가는 다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세 남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중에 일부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콜린 세로: 나도 모른다. 어쨌거나 모두에게 자기 자리가 있는 사회니까. 딸의 친구 아모스가 이 집에 와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에서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는 6개월간 박스오피스에 올라 있었다고 들었다. 관객이 그렇게 특별한 반응을 보인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콜린 세로: 9개월이다. 사람들이 많이 웃으면서도 이면의 메시지를 보는 것 같아 기쁘다. 나뿐만 아니라 배우들도 애정어린 편지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편지를 소개한다면.

콜린 세로: 할 수 없다. 나를 칭찬하는 게 되니까.

지금은 그런 일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자리다. (웃음)

콜린 세로: 그래도 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배경은 가부장 제도가 막을 내리는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좋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세 남자와 아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콜린 세로: (커다란 소리로 웃으며)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언급하고 싶지 않다. 나는 비평가가 아니니까 감독들에 대해서는 나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모든 영화는 아름답다.

리메이크를 원한다면 다시 허락할 것인가.

콜린 세로: 미국 사람은 절대로 안 하겠다. 문제될 게 없다. 생각조차 안 할 거니까. (웃음)

마들렌은 어떻게 느꼈나.

마들렌 베송: 어린 시절에 봤기 때문에 전부를 기억하지는 못하고 어떤 이미지들만 남아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들이 달랐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피상적(superficial)이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미국영화처럼. 어쨌거나 리메이크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원작만큼 최선의 상태가 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빠뜨리지 않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콜린 세로: 그런 건 따로 없다. 누구나 자기의 방식으로 보고 말할 자유가 있는 법이니까. 감동 깊은 점들이 있다면 관객에게도 전해지지 않겠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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