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장화,홍련> 전래동화와는 아무 상관없네! 반칙이다
2003-07-01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을 만든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은 호러 혹은 스릴러 영화로만 설명할 수 없다. 공포 분위기 조성에 치중하는 호러 영화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공포의 주체가 좀체 드러나지 않는 스릴러의 틀을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고 본다. 이 강퍅한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성장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인지 <장화, 홍련>에는 ‘반칙’도 많았다.

수미와 수연, 두 자매는 새장가 든 아빠와 새엄마와 함께 외진 별장 같은 곳에 살고 있다. 그 곳에는 죽은 엄마의 영혼인 듯한 귀신도 나오고 불길한 기운 또한 가득하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침대에 죽은 동물이 나오는 것만 빼면 전래 소설 <장화홍련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반칙이다. 그 불길한 기운은 놀러온 새 외삼촌 부부의 방문 때 극에 다다르고 이어서 엽기적인 시체 쇼가 제시된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모든 것은 수미(임수정)의 착란 증세가 빚어낸 것이었다. 분명히 새엄마 은주(염정아)와 수연(문근영)의 시점에서 전개된 장면도 있었지만 영화는 단지 수미의 착란 현상이었다고 딱 잡아뗀다. 반칙이었다. 게다가 아버지 무현(김갑수)은 놀라울 정도로 태연하거나 인내심만 강한 ‘조용한 가족’일 뿐이었다. 아니, 아예 역할을 하지 않았다. 문제제기 주체의 속수무책 공포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반칙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반칙은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용납될 수 있는 것이었다. <장화, 홍련>을 극도로 예민한 소녀의 감정에 관한 영화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의 질서에 대한 반감, 억압당하는 감정과 욕구의 표현, 무서울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수미를 통하여 도도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잘 짜여진 미장센과 인물의 감정을 절묘하게 드러내는 연기력과 카메라, 그리고 편집 등의 미덕이 가세한다. 물론 맥락 없이 무리하게 제시된 공포 장면의 설정과 사운드 효과는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아빠, 새엄마, 동생을 향한 수미의 질투심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것을 읽는다면, 그 질투심과 미래에 대한 공포심은 세상과 삶에 대한 솔직하고도 대담한 이야기로 충분히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공포 혹은 스릴러의 탈을 쓰고 딴전을 피우듯 드러내는 이 메타포는, 비록 얄팍한 상업적 갈무리의 흔적이 역력하기는 해도, 대단하다. 내가 보기에, <장화, 홍련>은 막연한 공포나 슬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소녀의 질투심과 미래의 공포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소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 이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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