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알맞을 때 잘 넘어졌죠`,<아는 여자> 준비중인 감독 장진
2003-07-02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슬럼프예요, 슬럼프. 사진도 슬프게 찍어야 해요.” 엄살을 떠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나이에 잘 나가도 너무 잘 나가는 거 아냐? 하는 시샘 반 질투 반의 눈초리를 받아왔던 장진 감독에게 최근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대한 대중의 외면은 어쩌면 그의 붐업 이후 처음으로 맞는 찬바람이었을 터이다. 물론 제작은 디토로 되어 있고 김정권 감독이 메가폰을 잡긴 했지만,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세팅 자체가 필름있수다(이하 수다)에서 나온 이 영화는 흥행실패뿐 아니라, 영화의 질에 대해 “저 영화 장진이 쓴 거 맞아?” 하는 의문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장진 감독과의 대화는 먼저 <화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화성…>이 수다에, 그리고 장진 감독 개인에게 준 손실과 득이 있다면. 일단 <화성…>이 수다에게 준 경제적 데미지는 큰 편이다. 군소영화사에서 자체적으로 6억원 이상 넣었다. 좋은 마음으로 도와준 개인 엔젤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에네르기’가 많이 빠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업료치고는 좀 많이 깨지긴 깨졌는데, 다행히 적절한 시기에 좋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수다라인업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묻지마 패밀리>나 다른 프로젝트들이 성공을 했던 시기 중간에 <화성…>이 깨진 것은 상업영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새롭게 다잡는 좋은 레슨이었던 것 같다. 사실 <화성…>은 쉽게 가자는 마음이 없진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감독, 작가적인 입장에서 너무 좋은 공부였다. 김정권 감독이 영화를 못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 <동감>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고 <화성…>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는 거다. 작품에 대한 해석력에서, 그 싸움에서 김정권 감독이 진 거고, 나 역시 <동감>류나 <화성…>류의 작품을 써내는 작가로서 정확함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촘촘히 쌓인 알레고리가 결국 내가 원하는 큰 진경을 만들어내기를 바랐는데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대중영화를 써내려가는 작가가 대중영화에는 부대끼는 사이즈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그것을 감독이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갔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김정권 감독과 나의 가장 큰 핸디캡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반성 많이 했다. <아는 여자> 시나리오 봐라, 85신이다. (웃음)

그렇다. 장진 감독의 머릿속은 요즘 온통 <아는 여자>로 꽉 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킬러들의 수다> 이후 들어갈 계획이었던 <바르게 살자>를 잠시 보류시키게 만든 장본인 역시 바로 <아는 여자>다. 그렇다면 <아는 여자>는 어떤 영화인가. 첫 장면에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별을 통고받는 남자가 있다. 그래, 이 여자도 결국 사랑이 아니었구나, 돌아서는 남자.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이 남자는 기구하게도 앞으로 3개월밖에 못산다는 시한부 인생을 통고받는다. 충격을 받은 남자는 술을 먹고 바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어떤 여자’의 부축을 받고 여관으로 향한다. 여자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주사없이 얌전히 자는 사람이다. 다음날 남자는 자신에게 3가지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에게는 내년도, 첫사랑도, 주사도 없다. 이후 그 ‘어떤 여자’이연과 영화관에 간 남자는 우연히 옛 애인을 만나게 되고, “저 여자 누구야”라고 묻는 옛 애인에게 그는 이연을 “아는 여자”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제목이 ‘아는 여자’다.

<아는 여자>는 지금까지 장진 감독의 영화의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향기가 좀 다른 영화다. 여전히 사람들은 저마다 수다를 떨고, 군데군데 장진식의 유머가 적절하게 숨어 있지만, 그 수다와 유머는 뇌를 통해 적절히 배치된 것이 아니라 심장을 통해 하나하나 박아넣어진 느낌이다. 워낙 시나리오 안으로 많이 빠져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백인백색의 각기 다른 사랑의 담론이 펼쳐지는 영화라 그런 것일까? 장진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모니터링도 꼼꼼히 챙겨듣는 편이고, 유난히 초고를 읽은 사람들의 반응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아는 여자>는 10일 만에 초고를 썼다고 들었다. 갑자기 이 시나리오를 내달리게 했던 동력은 무엇이었나. 언제부터인가, 뭐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기운들이, 감정들이 계속 내 속에 와 있었고 그것들의 워밍업이 급속히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대단히 이기적인 영화다. 그래, 정말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영화다. 그래서 그 이기적인 심정에 동감하는 사람들, 혹은 그 개인적인 심정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이 작업에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세팅해가고 있다. 사실 10일 만에, 2주 만에 초고 쓴 적은 많았는데 그 초고를 가지고 캐스팅해본 적은 처음이다. 초고는 내가 대강 어떤 이야기를 할는지만 썼지 캐릭터가 살아 있어서 캐스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아는 여자>는 완성도를 떠나 정말 신기할 정도로 다른 요소보다 ‘캐릭터’가 살아 있다. 문제는 내가 지금 너무 이 시나리오에 빠져 있어서 정리가 안 된다는 거다. 문제점이 보여도 손댈 수가 없다. 그래서 한 2, 3주쯤은 손을 떼고 있으려고 한다.

많은 에피소드들과 많은 등장인물들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핵은 무엇인가. 사랑! (웃음)

혹시 실연 같은 데서 오는 깨달음을 말하는 건가. 실연이라는 말은 좀 틀리고…. 사실 사랑이란 걸 뭘까에 대해 그렇게 궁금하게 여기면서도 진지하게 국어사전에서 ‘사랑’이란 말을 찾아보는 이는 드물다. 왜냐면, 우리는 아니까. 결코 국어사전에서 나오는 사전적인 해석이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못할 거란 것을. 사랑이란 단어의 의미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찾을 수 없다는 거다. 내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모르겠어. 사랑을 하면서 끊임없이 부닥치는 내 허약함의 발견,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영원불멸 뭐 그런 거였는데, 그런데 이건 뭐지? 또 다시 속고, 좌절당하고, 그것이 지나가면 아 사랑이 아니었구나, 그러다가 다시오면 아, 이건 긴가보다, 부여잡고 미쳐 있다가 또 잘못되면 아, 또 아니었나보다 다시 좌절하고…. 뭐랄까 내 자신에 대한 가증과 혐오에서 시작된 거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이 시나리오를 낄낄거리며 읽을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심정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정말 슬프게 본다.

-<아는 여자> 시나리오를 보고 누군가는 “장진이 철들었네”라고 했다던데….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다소 추상적이던 사랑의 실체가 구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 그 전에는 바라는 걸 썼다. 바라는 사람에 대해, 바라는 사랑에 대해. 이번 시나리오를 읽고 사람들은 다 “이거 니 이야기지?” 한다. ‘고해서’라고 하더라, 고해서. 예전에는 남자, 여자가 만나고 어쩌고저쩌고 쓰면서 아, 나도 이런 식으로 만나봤으면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느낀 기분이나 현상의 이미지들을 시나리오에 옮겨 썼다. 조금 더 보편적일 수 있고, 심정적인 동의를 구할 수 있는 내용이다.

<기막힌 사내들>부터 <킬러들의 수다>까지는, 장진이란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란, 상상력이란, 능력이란 이런 거다, 관객아 봐라 하는 느낌이었다면, <아는여자>는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런 거예요, 들어주세요,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맞을 거다. 이야기의 얼개나 에피소드의 구성만 보면 여전히 상업적인, 장진의 색이 여전히 묻어나는 영화겠지만 그 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면 훨씬 더 주지적이다. 내 목소리일 수도 있고, 내가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방에서 내가 현실적으로 뱉어냈던 소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에 나오는 내 ‘아는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일 수도 있다.

남자가 죽는다, 시한부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실연당하고 나면 모두들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나. “시간이 해결해준다….” 그런데 그에게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봐라. 그리고 “너 석달밖에 살 수 없어, 뭘 하고 싶니?”라고 묻는다면? “최대한 치료받겠어요”, “혹시, 석달 중에 2월도 포함되나요? 7, 8, 9월 이렇게 안 될까요?” 하지 않을 거다. 이 영화에서는 남자에게 이 석달 동안 네가 그렇게 궁금해했고, 네가 그토록 원했던 사랑이란 걸 찾아보렴 하고 준다. 그런데 사랑에 대해 믿지 못하는 거야. 혼란 속에서 이 정체 속에서 나오질 못해. 그때 그의 선택은 뭘까가 궁금했다.

가장 큰 변화는 장진의 시나리오에서 늘 등장했던 ‘화이’가 증발하고 ‘이연’이란 여자가 나타났다는 거다(<웰컴 투 동막골>의 여자주인공 이름도 이연이다). 물론 단순하게 보자면 이름일 뿐이지만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 캐릭터가 가지는 속성과 느낌, 여성상 역시 변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화이’라는 어감이 자꾸만 몽롱해져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젠 화이라는 이름을 못 쓰겠다. 꿈에만 있는 여자 같고, 허무맹랑한 여자,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대신 이연이는 내가 만났던 사람 같은 ‘아는여자’의 느낌이다. (웃음) 물론 화이가 그랬듯 이연 역시 내가 원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만 쓰일 이름이다.

사실 3개월밖에 못산다면 뭘 할까 하는 질문은 감독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던졌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3개월밖에 못산다면 나는 그동안 <아는 여자>를 빨리 만들어서 그 ‘아는여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웃음) 아까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그 사람에게 주는 선물일 수도 있다. 해답없는, 아니 해결 못한.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본다고 해도 세상에 단 한명의 관객은 남들이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걸 찾아내게 될 거라는 기대가 나에겐 가장 신나는 일이다. 물론 세상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소중한 명분임을 부정하진 않겠다.

글쎄,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모두 다르겠지만, 포장지를 다 뜯어내고 본다면, 영화란 결국 감독이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비록 그것이 개인적이라고 할지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동의한다. 늘 그래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주류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들이 많이 어려워졌던 게 사실이다.

그간 장진 감독의 영화는 어떤 이들에게는 익숙해져서 장진의 스타일로 굳어진 경우도 있고 또한 어떤 이에게는 반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영화는 내용적인 면에서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과도기적 영화가 될 듯하다. 여전히 기능적으로 편집, 촬영에 대해 하고 싶었던 다양한 실험을 해볼 거다. 특히 배우가 가지는 동선이 좀더 영화적이 될 것이다. 편집적인 부분에서 행동을 보며 연상되는 시간을 좁히는, 영상과 영상 사이를 지체하지 않고 다른 영상이 치고들어오는 식으로, 호흡이 조금 더 빨라질 것 같다. 즉 관객의 서브텍스트에 대한 지체를 막으면서 영화의 속도를 내 마음대로 조정해보고 싶다.

예산은 어느 정도로 잡고 있나. 순제 20억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멜로영화로 보면 중간쯤 되는 예산이다. 40회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킬러들의 수다>도 40회에 찍었으니, 이 규모 영화로는 굉장히 공을 들여서 찍게 되는 거다. 스탭들 스케줄을 고려해서 8월 말이나 9월 초에 촬영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장진은 한 사람의 감독이자 작가인 동시에 ‘필름있수다’라는 창작집단을 이끌어 가는 수장의 자리에 있다.

99년 연극공연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창작집단으로 시작해 <허탕> <아름다운 사인> <박수칠 때 떠나라> 등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수다는 2001년부터 공식 명칭을 ‘필름있수다’로 바꾸었고, 이후 <다찌마와 리> <극단적 하루> <커밍아웃> 등의 인터넷 영화프로젝트, 지난해 신인감독들의 단편영화를 옴니버스식으로 제작해 극장 개봉해 흥행한 <묻지마 패밀리> 등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제조사로도 명성을 날렸다. 어느덧 2003년 프로젝트들만 해도 줄줄이 이어지는 수다는 장진과 어떤 공생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창작집단으로서의 수다는 어떤 변화를 꿈꾸고 있을까.

지난 1년 동안 수다는 약간의 변화를 겪었다.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던 김영일 이사가 독립했고, <묻지마 패밀리>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수다’라는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 게 사실이고. 그런데 원래 <아는 여자>보다 <묻지마 패밀리 2003>이 먼저 제작되기도 했던 것 아니었나. 현재 수다의 직원이 20명이고 10억원 정도의 돈이 투자가 되어 있는 상태다. <묻지마 패밀리>의 경우는 돈을 안 번 건 아닌데 수익이 생기면 모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약속한 게 있어서 오히려 마이너스다. <묻지마 패밀리 2003>은 솔직히 약간 정체상태에 있다. 초심이 없어져서 그렇다. <묻지마 패밀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나? 처음에는 누군가 단편영화를 만든다고 하기에, 그렇다면 수다가 해줄 수 있는 한 도와주자. 이게 잘되면 이 감독들이 수다와 더 큰 프로젝트에서 만날 수 있는 거니까, 하나의 인큐베이팅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번 그렇게 하고 나니 지금은 일단 개봉이 목적이고, 신인감독 발견이 목적이 되어버렸다. 회사 내부에서는 이렇게 난항이 예상된다면 엎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 된 시나리오가 안 나오고 있는 거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안 나온다는 말은, 어떻게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개봉을 하고, 캐스팅을 하느냐, 하는 건데, 이게 문제라는 거다. 이 시나리오에서 어떤 실험을 할 수 있나. 감독의 역량이 어떻게 빛을 발할까가 아니라, 귀결점이 자꾸 이거 사람 많이 들겠니, 하는 식으로 가니까 안 되는 거다.

그렇다면 제작이 아주 불투명해진 것인가. <묻지마…>의 성공은 사실 크게 본다면 사람들이 그걸 왜하니? 그게 되겠니? 의심하던 프로젝트들을 수다가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니까 <묻지마…>가 아니더라도, 하물며 영화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그게 뭐야, 너희들이 왜 그런 거 하니, 하는 것일지라도 지금 현재, 대중적인 실험으로 수다라는 멀티 프로덕션이 해내야 하고, 재밌겠다 생각하는 것은 할 수 있고 해내야 한다고 보는 거다.

크게 보자면 수다가 창작집단이지만 결국 영화사인데 한 영화사 대표가 현재 작품을 계속해서 만드는 사람이고 독특한 색이 있는 감독이다보니, 다른 색깔을 가진 감독들과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크게 보면 두 가지가 가장 절실하다. 가장 필요한 것은 수다 안에서 빨리 나 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나와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그’가 수다의 색깔을 들키지 않는 선에서 조금 조금씩 바꾸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좌장의 자리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내년이 되면 김성제 PD가 영화팀 팀장으로 수다의 좌장자리에 앉을 거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을 비롯해 라인업에 올라와 있는 몇몇 감독들이다. 나는 그냥 작가팀장으로 가서 작가들 인큐베이팅하는 작업을 할 거다. 본연의 물건 만드는 사람의 자리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 시기가 빨리 와야 하고 그 시기가 빨리 오는 게 수다가 발전하고 달라지는 길이다. 두 번째, 사실 우리끼리는 수다를 ‘중립적 우호집단’이라고 하는데, 외부에서 보면 시네마서비스 라인 프로덕션으로 보는 이미지가 있다. 물론 시네마서비스와 강우석 감독은 장진에게 고마운 집단이고 고마운 사람이고, 아직도 결핍이 많은 내 어떤 부분을 많이 채워주는 곳이다. 그런데 수다에 나를 제외한 다른 프로듀서의 다른 프로젝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투자에서 배급까지 그들의 디자인대로 가야 한다고 본다. 내가 해왔던 식이 수다의 매뉴얼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그걸 버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웰컴 투 동막골>의 경우 내가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지만 이건 엄연히 박광현 감독과 이은하 PD의 듀엣작이 될 것이다. 시네마서비스는, 제일 먼저 상의할 수 있는 어드바이스 파트너로 존재하겠지만, 그들은 새롭게 또 다른 자금, 마케팅구조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년부터 전적으로 나의 역할은 ‘작가팀장’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규모도 40억원 정도로 잡고 있다고 들었다. 여지껏 수다에서 만든 영화 중 가장 큰 규모가 되겠다. <웰컴 투 동막골>는 일단 영화가 끝이 좋고, 설정 자체가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고, 억지를 안 부리는 좋은 틀들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해볼 만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 박광현 감독이 만들고 싶은 영화와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상당히 근접했고 내가 푸는 이야기가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내 나이키>로 좋은 파트너임을 확인했던 박 감독과 나의 궁합을 더욱 큰 장에서 풀어보는 실험이 될 것이다. 또한 수다라는 창작집단이 빨리 그리고 성공적으로 ‘메이드 인 장진’에서 벗어나게 될 1호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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