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여름 즈음에 나는 서강대학교 본관의 한 작은 방에서 진행하던 영화상영회를 찾곤 했었다. 어느 날 막 시작하던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첫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대로 울어버린 기억이 있다.
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뒤 한분이 내게 물으신다. “자네가 영화를 하게 만드는 원형이 있나?” 누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네… 작은 여자아이가 하염없이 신작로를 바라보고 있어요. 햇살이 따가운 담벼락 아래서, 해질녘의 논둑에서 때로는 늦은 밤에 툇마루에 나앉아… 가끔씩 저 멀리 굽이진 산길로부터 작은 불빛이 아주 느리게 다가왔다가 사라져가곤 해요. 그 불빛이 신작로를 벗어나 자기가 있는 곳으로 와주길 참 많이도 바라면서…그 시간들을 함께했던 담벼락의 햇볕, 논가의 흙냄새, 가끔씩 감당할 수 없이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게 만들던 밤의 바람소리나 흔들리는 그림자들…”.
그 순간 어떻게 이런 대답이 튀어나왔을까. 내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었나? 그분은 왜 또 나에게 물으셨던 걸까. 나의 20대의 주문은 “잊자, 잊자, 생각하지 말자”였다. 무얼 잊으려 했는지, 왜 그랬었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잊는 것에 익숙해진 지금도 그 순간이 문득문득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이런저런 생각의 언저리들을 헤매게 된다.
어둠 속을 달리던 차가 외딴 늪지대를 지나 도착한 곳은 정신병원이다. 힘과 권위로 강제된 생각과 방식, 바라볼 곳도 없고 바라보는 행위도 없는 곳, 기다림도 없고 농담도 없고 슬픔도 없고 그래서 자기도 없는 그런 곳에 던져진 주인공. 그는 타고난 영웅으로 그곳에 던져진 것이 아니다. 그런 그가 계속 움직인다. 세상에는 다른 생각 다른 방식도 있을 수 있고 겪어볼 것도 있으며 기다림도 있고 웃음도 있고 아픔도 있고 그런 속에 자기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움직여 보여주면서. 영웅이 아닌 그는 끝내 만신창이가 된다. 그래서 그를 따라 웃다가보면 어느새 그만큼의 웃음 이상으로 되돌아오는, 옆사람에게 드러내보이기 낯설어 호흡을 고르게 되는 그런 감정의 흔들림을 만나게 된다. 주인공으로 분한 잭 니콜슨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고만 하기엔 뭔가 뒤가 묵직해지는 그런 감정이. 훗날 그 감정이 잭 니콜슨을 바라봐주었던 그 거구의 인디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를 바라봐주고 기다리고 거두어주었던 사람.
내 이름의 ‘자’는 아들 子이다. 위로 딸만 셋을 낳은 맏며느리는 대를 이을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다른 자매들의 돌림자를 쓰지 않고 ‘子’를 쓰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3년 뒤에 아들을 낳으셨고 출산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면서 아직 어린 나를 시골의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셨다. 어머니가 건강해지신 뒤에도 나는 자주 시골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만큼 자주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다 커서도 가끔씩 혼자 밤길을 걸어 집을 찾아가는 꿈을 꾸었던 것을 보면 기다림이 꽤 깊었나보다. 나의 유년기가 특별히 불행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시골 풍경의 넉넉함에 많은 덕을 입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부터 어딘가를 바라보거나 기다림이 만들어내는 감정들에 익숙해졌고 나이 들면서 한동안은….
영화의 첫 장면, 굽이진 밤의 먼 외딴길로 다가오는 차의 약한 불빛과 마주친 순간은 영화와 내가, 나의 역사가 처음 서로를 통한 내 인생의 첫 경험이었다. 우연히 지나칠 수도 있었던, 특별히 멋스럽지도 않은 그 장면과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그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보려 애쓰던 시간들. 이제 유년 시절의 불안한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변해간다. 어머니, 나의 근원을 일깨워주려 하셨던 선생님, 그리고 또 어떤 순간들…. 그 그리움이, 다른 영화 속에서 마주치게 될 무언가에 대한 기대가, 나를 북돋워주고 움직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