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내가 진짜 원조다!<피노키오>
2003-07-08
글 : 박은영
■ Story

이상한 통나무가 굴러들어와 온 마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는다. 목수 제페토는 이 통나무로 곡예 인형을 만들어 이름을 피노키오(로베르토 베니니)라 붙이고 아들로 삼는다. 학교에 열심히 다니고 말 잘 듣길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피노키오는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 아버지가 어렵게 마련한 책을 팔아 인형극을 구경하고, 여우와 고양이에게 속아 금화를 뺏길 위기에 처한다. 영원히 놀 수 있는 나라에 갔다가 당나귀로 변하기도 한다. 이때마다 피노키오를 구하는 이는 “착하게 행동하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푸른 요정(니콜레타 브라스치). 상어 뱃속에서 상봉한 아버지를 돌보며, 피노키오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 Review

내가 진짜 원조다! <피노키오>를 만든 로베르토 베니니의 자부심은 그것이었다. 눈 맞으면 시도 때도 없이 춤추고 노래하는 디즈니 가계의 명랑한 아이들 틈에 끼어 있는 <피노키오>(1940)가 원조를 자처하는 현실을, 더이상은 좌시할 수 없다는 의무감 혹은 자존심. 로베르토 베니니와 피노키오의 궁합이 완벽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투스카니 지방을 배경으로 한 서민들의 동화와 투스카니 출신 코미디언의 만남. 일찍이 페데리코 펠리니는 <달의 목소리>에서 만난 로베르토 베니니와 <피노키오>의 영화화를 진지하게 고려했고, 베니니를 ‘피노키오’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타계한 펠리니의 못 다 이룬 소망인 <피노키오>는 베니니 필생의 프로젝트로 대물림됐다. 스필버그가 큐브릭의 <A.I.>를 기어코 만들어야 했던 것처럼.

베니니의 <피노키오>에는 그러나, 펠리니의 흔적이 없다. 이건 원작자 카를로 콜로디의 무덤에 바치는 영화이자, 거울 앞에 선 베니니 자신의 영화다. 베니니의 <피노키오>는 원작을 가장 충실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형상화한 작품. <피터팬>의 후일담 형식으로 변주된 가족영화 <후크>나 <피노키오>를 비롯한 동화들을 SF의 용광로에 녹여낸 와 달리, 베니니의 <피노키오>는 재해석의 수고를 마다한다. 베니니는 디즈니애니메이션이 뮤지컬 시퀀스 때문에 혹은 ‘베드타임 스토리’치고는 너무 어두워서 잘라낸 스토리의 디테일을 복구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친구(라 믿은 사람과 동물)들의 음모와 배신, 죽음은 베니니의 <피노키오>를 지탱하는 절반의 테마다. 원작에 대한 베니니의 ‘절대적인 충성심’은 비현실적인 프로덕션디자인에서도 드러나는데, 제페토의 마을, 해변 마을, 장난감 나라를 재현한 미술은 기괴하리만치 회화적이고 인공적이어서, 동화책 삽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든다. 베니니는 필름 위에다 <피노키오>를 옮겨 쓰고 싶었던 것이다.

<피노키오>가 야심만만한 영화인 것은 이탈리아 영화사상 가장 비싼 영화(4500만달러)라는 기록보다는 베니니 그 자신이 연출과 각색은 물론, 주연까지 겸하는 무리수를 뒀다는 사실에 있다.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페토 할아버지가 더 어울림직한 나이에) 베니니는 그의 철부지 나무인형이자 늦둥이 아들인 피노키오가 되어보겠다고 덤벼든다. 무려 20년 동안 <피노키오>를 가슴에 품었던 베니니 자신은 정말 ‘나는 피노키오다’라는 자기 최면에 단단히 걸려, 일곱살배기처럼 웃고 울고 말하고 뛰어논다. 거울 앞에 선 당나귀 귀의 베니니는 그렇게 영락없는 나르시스다(푸른 요정은, 당연히 그의 아내이자 뮤즈인 니콜레타 브라스치가 맡았다).

낙천적이고 자기 도취적인 사회적 약자, 그리고 무해한 말썽꾼이라는 베니니의 페르소나(<자니 스테치노> <미스터 몬스터> <인생은 아름다워>)는 사람이 되길 소망하는 천방지축 나무인형과도 제법 친연성이 있어 보인다. 게다가 베니니는 언제나처럼 ‘변치 않는 동심, 저항의 본능’을 은근슬쩍 찬양한다. 피노키오는 “사람들이 널 길들였구나” 하며 유혹하는 ‘나쁜 친구’ 레오나도를 각별히 사랑하며, 사람이 된 뒤에도 자신의 그림자만은 학교에 들이지 않는다. 이는 공동체의 규칙과 가치를 받아들인 피노키오가 “그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지” 확신하지 못한 원작자의 마음을, 베니니가 읽어냈다는 뜻이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선 아무래도 보이 소프라노의 만담식 대사와 과장된 슬랩스틱 연기로 일관하는 베니니가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꼬마 피노키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건 치명적인 결함이다. 단 몇 순간을 제외하면 시상식장에서 스코시즈의 발에 입맞추고, 객석을 겅중대며 뛰어다니던, 자연인 베니니의 돌출행동들이 겹쳐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정색하고 들이미는 <피노키오>의 완역본은 시각적으로 황홀하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다른 흥미나 감동이 전해지지 않는다.

<피노키오>는 이래저래 운이 나빴다. “코미디언만이 비극의 정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진리를 웅변한 걸작 <인생은 아름다워>의 다음 주자라는 사실은 <피노키오>에 대한 세간의 기대와 실망을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반응은 상이했다. 이탈리아에선 시골 소극장부터 폐관한 극장까지 프린트를 달라 아우성이었고, 첫 주말 수익 950만유로로, 이탈리아 영화사상 최고의 개봉 성적을 거뒀다. 미국에선 더빙판이 혹평을 얻은 뒤 자막판으로 재개봉했지만, 초반 부진을 만회하지 못했다. <피노키오>의 원조 대결은, 결국 홈그라운드에서 찜찜한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 프로덕션디자인

1800년대 이탈리아 예술 반영, 세트 제작에만 8개월 소요

“20년 전부터, 어쩌면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내 코가 길어지는 것을 상상했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그가 <피노키오>를 만드는 것이 “도토리 나무에 도토리가 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운명이라고 믿었다. 훗날 아내가 된 여배우 니콜레타 브라스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의 목소리>에 배우로 출연했을때, 그는 <피노키오>의 아이디어를 나누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베니니는 자신의 프로덕션 멜람포에서 지난 2000년부터 <피노키오>의 프로덕션을 시작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로 이탈리아영화의 위상을 드높인 베니니에게는 안팎으로 지원군도 많았기 때문에 <피노키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베니니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제작자, 각본가, 음악가를 다시 불러모았고, <L.A. 컨피덴셜> <인사이더>를 촬영한 단테 스피노티, <로미오와 줄리엣> <카사노바>의 미술을 맡았던 다닐로 도나티 등으로 화려한 진용을 짰다. 해외 배급은 미라맥스가 맡아 하기로 결정된 상태였다.

프로덕션 단계의 가장 어려운 숙제는 동화 속 환상을 물리적으로 재현해 보이는 일이었다. 동화 속 피노키오의 모험과 배경들을 최대한 살려내는 방향으로 각색작업을 진행한 베니니는 “실제로 환상적인 장소가 아니라면 찍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투스카니 등 일부 시골 지역의 풍광을 잡아내는 것을 제외하면, <피노키오>는 거의 대부분을 세트에서 촬영해야 했다. 이에 다닐로 도나티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촬영한 파피뇨 세트장에 제페토의 마을, 바닷가 마을, 장난감 나라 등의 세트를 지어냈다. 제페토의 집, 요정의 집, 학교, 인형극장, 감옥, 서커스장, 상어 입 등의 복잡한 세트와 구조물은 “1800년부터 70년 동안의 이탈리아 예술을 모두 반영한다”는 미술감독 도나티의 야심의 산물. 푸른 요정의 마차를 끄는 흰 쥐떼와 나비 등의 몇몇 이미지를 제외하면 컴퓨터그래픽의 사용을 극소화한, 아날로그 미술을 지향했다. 세트 제작에만 총 8개월, 60개 회사, 270명의 인력이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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