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현대적 영웅 신밧드,<신밧드: 7대양의 전설>
2003-07-08
글 : 김현정 (객원기자)
■ Story

해적 신밧드(브래드 피트)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미셸 파이퍼)의 계략으로 ‘평화의 책’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평화의 책’은 열두 도시를 수호하는 힘을 가진 보물. 시라큐스의 왕자이자 신밧드의 어린 시절 친구인 프로테우스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신밧드의 결백을 보증한다. 처음엔 달아나려고 했던 신밧드는 프로테우스의 약혼녀 마리나(캐서린 제타 존스) 때문에 마음을 고쳐먹고 ‘평화의 책’을 찾으러 떠난다.

■ Review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아라비아의 선원 신밧드가 겪은 모험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영화다. 주인공의 이름과 섬으로 착각하고 거대한 물고기 등 위에 상륙한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신밧드>는 여러 신화에서 끌어온 캐릭터를 토대로 삼아 새로 만들어낸 모험담이다. <오디세이>의 유혹하는 인어 사이렌과 <일리어드>에서 불화의 씨앗을 내던지는 에리스가 한데 엮이고, 친구를 위해 목숨을 맡긴 그리스 신화의 다몬은 믿음 깊은 친구 프로테우스로 이름을 바꿨지만, 신밧드와 마리나는 어디까지나 현대적인 영웅들이다. 제작자 제프리 카첸버그는 “신밧드는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적이 거의 없다. 새롭고 흥미로우며 동시대의 감수성을 지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호언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빗나간다.

2D와 3D기법을 함께 사용한 <신밧드>는 평평한 TV시리즈를 향수할 겨를조차 없게 만드는, 빠르고 광대한 그림을 펼쳐놓는다. 신밧드의 배 키메라호가 물고기 옆구리에 닻을 꽂고 함께 혼돈의 나라까지 질주하는 장면은 숨가쁘게 변하는 카메라 앵글과 실제처럼 튀어오르는 물보라 덕분에 아찔해질 정도다. 물결처럼 투명하게 부서지는 사이렌과 모두 2D지만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꼬리부분만은 3D인 에리스도 관능적이다. 캐릭터도 독특한 면이 있다. 탐욕스러운 신밧드와 남자보다도 바다에 애착을 가지는 마리나는 서로를 인정하면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신밧드>는 폭풍치는 바다보단 돛을 부풀릴 바람도 없는 맑은 날의 수면에 더욱 가까운 영화다. 한무리나 되는 키메라호의 선원들은 든든한 조연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에리스와의 신화적인 대결도 맥이 빠지며, 신밧드와 마리나는 진부한 로맨스에 다가간다. <신밧드>라는 제목을 듣고 밤을 꼬박 새우며 빠져드는 옛날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법도 하지만, 한여름에는 썩 어울리는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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