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에너미 앳 더 게이트>
2001-05-15
<에너미 앳 더 게이트>

■ STORY

1942년 히틀러의 제3제국군은 한때 우호관계를 맺었던 소련을 침공했다. 순식간에 소련 영토를 장악해가던 독일군은 소련군의 마지막 보루인 스탈린그라드에서 주춤하며 장기전에 들어간다. 소련군의 선전장교 다닐로프(조셉 파인즈)는 우랄지방에서 막 전장에 투입된 병사 바실리(주드 로)를 만난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늑대사냥을 배웠던 바실리는 순식간에 독일군 5명을 사살하는 탁월한 저격솜씨를 보여준다. 다닐로프는 바실리를 영웅으로 만들어, 막강한 독일군의 위력에 의기소침한 소련병사의 사기를 높일 계획을 세운다. 바실리는 저격병으로 전출되어 매일 독일장교를 사살하고, 전설적인 소련의 영웅으로 만들어진다. 그러자 독일군에서도 최고의 저격수인 코니그 소령(에드 해리스)를 파견하여 바실리를 사살하려 한다.

■ Review

실화에 기초한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이상한 전쟁영화다. 2차대전의 격전지 스탈린그라드를 둘러싼 두 ‘독재국가’의 야만적인 전투를 그려나가면서도, 정정당당하게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정통적인 서부극을 모방한다. 나치도, 소련도 야비하다. 그들은 승리를 위해 어떤 사악한 방법도 서슴지 않는다. 소련의 젊은 목동 바실리와 독일의 고상한 귀족 코니그는 단지 ‘결투’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상황은 개인의 대결이 아니라 집단의 승리를 원한다. 자연의 풍광을 잡아내거나 서사적인 장면의 맥을 짚어내는 장 자크 아노의 솜씨는 여전히 훌륭하다. 갓 전장에 투입된 병사들은 기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질려버린다. 강 너머로 보이는 곳은 지옥. 그들은 독일 비행기의 폭탄과 기관총탄이 퍼붓는 볼가강을 건너 지옥의 전투에 참가해야만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프닝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이 장면에서, 장 자크 아노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자신의 의지라고는 털끝만큼도 작용하지 못하는 잔인한 세계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텅 빈 마음이 전해진다. 스탈린그라드에서 필요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영웅 혹은 악마다.

바실리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선전’에서 필수적인 일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평화시에서도 ‘노동영웅’을 이용하여 생산의욕을 고취시킨다. <리틀 빅 히어로>가 말하듯, 자본주의국가도 동일하다. 장 자크 아노는 그 동서고금의 진리를 서투른 체제비판으로 연결시킨다. 죽음을 예감한 다닐로프는 ‘평등한 사회가 되면 모든 것이 잘될 줄 알았다’고 유치한 한탄을 늘어놓는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집단만이 아니라 개인을 포착하는 데에도 서툴다. 바실리와 다닐로프, 타냐가 행동하고 결단을 내리는 동기는 단순하고 돌연하다. 코니그만이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움직인다. 장 자크 아노는 바실리와 코니그의 결투를 ‘그려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내지는 못한다. 전작 <티벳에서의 7년>이나 <장미의 이름> 등에서도 그랬듯이.김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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