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포르노
제562번째 시리즈에 이르른 D.E.B.S는 자신들이 힘든 적수와 맞닥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밀요원으로 훈련된 세명의 여학생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전직 요원과 맞서고, 그중 한 천사 요원이 전직 요원에게 납치되어 있는 위기상황이 발생한 것. 그런데 백척간두의 벼랑에 놓인 천사들의 행동이 좀 이상하다. 나무 탁자 위에 벌렁 누운 두 여자는 서로의 유니폼을 보며 “어머 너 내 스웨터 입었잖아”라며 서로를 질투하고, 한편 천하의 악녀에게 사로잡힌 또 다른 천사는 위기의 순간, 악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열렬한 키스와 함께 바닥에 나뒹군다.
이게 웬 엽기냐 하는 분들,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안젤라 로빈슨의 작품 의 내용이다. 주류 영화인 <미녀 삼총사>를 비꼰 <미녀 삼총사> 레즈비언 버전인 이 영화에서 소녀들은 담배를 피우고, 서로의 스웨터를 훔쳐 입고 성적 금기를 어기면서도 즐겁게 세상을 구한다. 흑인 여성감독인 안젤라 로빈슨은 단 11분의 짧은 시간 안에 미녀 삼총사가 얼마나 머리가 텅텅 빈 가짜 페미니즘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지를 신나는 웃음으로 깨우쳐준다. 세상의 구원자 대신 세상의 빚더미를 자처하는 이들 D.E.B.S의 ‘deb’은 불량 소녀를 지칭하는 미국식 속어. 리뷰 불가 파동까지 일으키며 쉬쉬했던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를 보고 있노라니, 나 역시 글 대신 10분짜리 <미녀 삼총사: 찰리없이 살아가기>라든가 <추녀 삼총사, 빅 마마 버전>, 혹은 <창녀 삼총사: 위험한 마음의 고백> 같은 영화들로 비평을 하고픈 충동에 빠진다.
콜럼비아사의 횃불이 그대로 몽골 산간지방의 불길로 이어지면서, 미녀 삼총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자신만만하게 <인디아나 존스>를 재인용하며 출발 기어를 올린 영화는 조그만 상자곽에서 기어나오는 루시 리우의 탄력성, 남자들과 술내기를 해도 끄떡없는 드루 배리모어의 남성성, 그리고 “여기가 여관인가요?”를 외치며 갑자기 전기말을 타기 시작하는 카메론 디아즈의 깜찍성을 모두 집결시키면서, 벌써부터 살벌해진다. 당연히 수순은 포로로 잡힌 고위관리를 데리고 산간 오지를 탈출하는 것, 감독은 첫 장면부터 <매트릭스>의 쿵후 정지동작 같은 슬로 모션으로 행동의 각을 세우고, 시간과 공간을 분절하며 유영하는 총알은 탱크 하나를 완전히 폭발시킨다. 천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육중한 트럭에서 탈출하는 미녀들은 허공을 붕붕 날아 무사히 지상으로 안착한다. 시작한 뒤 단 10분을 보고나서 영화가 더이상 보여줄 게 있나 슬슬 걱정이 되시는 분, 너무 염려하지 마시라. 여기 여러분의 무료한 시간을 구해주는 ‘골 빈 삼총사’가 당도해 있다.
과잉의 음악, 과잉의 이야기, 과잉의 물량공세
비치 보이스, 닥터 드레, 스눕 도기독, 어게인스트 더 머신, 엠시 해머, 데이비드 보위, 버나드 허먼, 그리고 더 후의 음악 등이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관객몰이를 하는 <미녀 삼총사> 속편은 ‘맥’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감독 조셉 매킨티 니콜이 자신의 전편과 벌이는 일종의 속도전이기도 하다. 그는 전편을 능가할 수 있는 속편의 공식으로 <헐크>에 버금가는 양적 팽창만을 주장한다. 전편보다 더 많은 의상에, 더 많은 숏의 분절에, 더 많은 슬로 모션과 더 많은 플로 모 기법에 더 나쁜 악당을 내세우는 뻥튀기 전략 말이다.
그러나 이를 이루기 위한 맥의 연출은 딱할 정도로 단순하다. 오토바이나 자동차 같은 속도감 있는 장면에서는 카메라를 정지시키고, 거꾸로 피사체가 정지해 있을 때는 360도 트래킹이나 화면 분할로 최대한 카메라를 쥐고 흔든다. 누가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이 아니랄까봐, 음악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뒤, 한순간도 빠짐없이 장면마다 빳빳한 폼과 속도감을 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편보다 한층 더, <미녀 삼총사>는 과잉의 음악에 과잉의 이야기, 과잉의 물량공세에 빠진다. 맥은 이러한 영화의 단점을 감추기 위해 심지어 흘러간 할리우드영화를 재인용하면서 <미녀 삼총사> 속편을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오마주나 자기 반영성이 있는 꽤 ‘있어 보이는’ 영화로 포장하려 든다. <인디아나 존스>의 술내기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씬맨의 과거를 알아내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거쳐, <플래쉬 댄스>와 <터미네이터> <토요일 밤의 열기>에 이르른다.
여전히 전편과 똑같은 팬티를 입은 카메론 디아즈의 엉덩이춤을 보는 일은 즐겁지만 그녀의 엉덩이가 그녀의 머리를 구할 수는 없는 일. 무엇보다도 속편의 빵빵함에 김을 뺀 주범은 감독 외에도 바로 세 여배우들의 연기와 앙상블이다. 전편의 ‘요 귀여운 것들’ 수준이었던 여성성 전략이 속편에 이르러서는 뻔한 클리셰로 전락하고, 어쩔 수 없는 세월 앞에서 미녀 삼총사도 투항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카메론 디아즈의 얼굴엔 주름이 잡히고 드루 배리모어는 살이 쪄가고, 루시 리우는 본연의 자의식으로 요염 연기 자체를 버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그나마 미녀 삼총사 셋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매디슨 리 역의 데미 무어의 등장이었다. 그것은 물경 4억원을 들여 수술했다는 그녀의 몸매 때문만은 아니다. 찰리와의 관계에서 보여준 데미 무어라는 존재는 <미녀 삼총사>가 왜 그토록 반여성주의적인지를 고지하는 일종의 열쇠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찰리라는 남자(그는 남자임이 분명하다. 전편의 마지막에서 분명히 늙은 남자로 뒷모습을 보였으니까), 그는 목소리만으로 존재한다. 쭉쭉빵빵한 미녀 셋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그는 부와 파워를 겸비한 그러나 육신을 뛰어넘어 목소리만으로 존재하는 신인 셈이다.
그런데 데미 무어는 감히 그녀에게 가해진 천사의 역할을 거부한다. 배트맨을 조롱하듯 날다람쥐 옷을 입고 할리우드 거리를 붕붕 나르는 그녀는 스스로 천사보다는 신이 낫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남자주인공 대신 여자주인공을 위기에 처하게 하는 이 레즈비언 팜므파탈은 맨주먹과 쭉쭉빵빵한 킥을 전문으로 하는 천사들과 달리, 총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이힐과 검은 가죽 점퍼, 날카로운 손톱 등 남근을 표지하는 모든 페티시한 물품으로 온몸을 치장했다. 그녀가 찰리의 목소리를 중계하는 스피커를 총으로 부수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을 때, 할리우드의 공식으로 보자면 그녀는 물론 또 다른 천사의 손에 죽임을 당해 마땅하다. 카메론 디아즈는 데미 무어와의 마지막 격투에서 “난 당신과 달라. 당신이 없는 게 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친구가 있다며 데미 무어에게 멋진 킥을 날린다. 그러나 이 말은 거꾸로 데미 무어가 왜 천사들과 똑같이 지적이고, 아름다운 슈퍼 우먼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카메론 디아즈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한마디로 단독 영웅이 되고 싶어했던 것이다. “나는 한번도 선한 적이 없었지. 나는 위대했어”(I was never good. I was great)라는 그녀의 말처럼.
액션 영웅, 액션 창녀
또한 그녀가 터미네이터와 이유없는 반항의 주요 무대가 되었던 할리우드의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거대한 망원경 앞에 나타날 때 그녀의 욕망은 분명해진다. 그녀는 보여지는 여자에서 보는 여자가 되려는 것이다. 해변에서 조그만 망원경으로 자신의 육체를 전시당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눈, 즉 망원경과 함께 나타난다. 보여지는 여자에서 보는 여자로. 물론 그녀의 이러한 욕망은 깡그리 징벌당하지만 그놈의 관음증을 뒤엎는 천문학적 기계, 천문대 망원경만큼은 인상적이지 않은가.
<미녀 삼총사>에서 데미 무어의 육체는 여성영화평론가 바버라 크리드가 지적했듯 일종의 양성성으로 충만한 레즈비언 보디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천사들에게 격퇴당하는 이 퇴물 천사가 데미 무어라는 사실은 그저 우연한 캐스팅의 결과라기보다는 필연적인 한 시대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데미 무어와 지나 데이비스는 <지 아이 제인>과 <컷 로스 아일랜드>로 레즈비언 여성전사 시대를 마감한 장본인이다. 이제 와서 얼굴에 멍이 나고 피 흘리는 카메론 디아즈나 안젤리나 졸리를 상상할 수는 없지만 당시 <지 아이 제인>의 데미 무어는 장 클로드 반담이나 스티븐 시걸 유의 ‘걸어다니는 거대한 알통’을 따라하려다 즉 자신의 여성성을 거세하려다 자멸해갔다.
이제 카메론 디아즈를 비롯한 안젤리나 졸리 같은 2000년대의 여성전사들은 데미 무어와 달리 변신의 마술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때의 변신은 스스로를 양성적인 존재로 여겼던 자신의 선배들과 달리 단지 임무라는 목적을 위한 수없는 겉치장의 변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속편에 이르러서는 남성과 여성을 번갈아 가면서 변신하는 미녀 삼총사의 끝없는 변신은 모두에게 자신을 나누어주어 스스로는 어떤 정체성도 지니지 못한 텅 빈 껍질만을 감지하게 만든다. 특히 수녀에서 용접공으로 다시 망사 스타킹을 입은 창부로 변신하는 그녀들은 남과 여, 음란함과 성스러움, 지적인 여성과 백치미의 여성을 오가며 분열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어떤 고통도 없는 아메바의 핵분열 같은 것이다. 그녀들의 육신은 욕망과 불가능한 현실 사이의 유희보다는 그저 판타지만이 가득 찬 기표로 기화해버린다.
결국 자신의 여성성에 끊임없이 괴로워하며 모성 이데올로기를 짊어졌던 90년대의 레즈비언 보디를 죽이고, 미녀 삼총사는 화려한 축제의 한판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이어 나오는 차닦는 장면은 실은 <미녀 삼총사>의 육체의 전시방식이 소프트포르노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스스로 폭로한다.
CGV의 빨간 의자에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시간을 휘휘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물론 있는 척하는 오락보다는 훨씬 나은 태도이지만, 미녀 삼총사는 남자 손님에게 저절로 쾌락의 극치에 이르게 하는 588 거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액션 영웅과 액션 창녀를 오가며, 미녀 삼총사는 동네 호프집 벽에 걸린 싸구려 달력들의 쾌락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역사상 가장 값비싼 뮤직비디오의 외피를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