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해리 포터의 다섯 번째 모험
2003-07-10
글 : 이지연 (런던 통신원)

지난 6월20일 자정,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 워터스톤스 서점 앞에는 보기 드물게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일곱, 여덟살 정도의 꼬마들에서부터 10대 중반의 소년 소녀들이, 간혹 부모로 보이는 어른들과 함께, 상기된 얼굴로 졸음도 잊은 채 늘어서 있는 이 줄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해리 포터와 불사조의 기사단>(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the Phoenix)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6월21일 0시를 기해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지에서 판매를 시작한 이 책은,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 지난 2000년 여름에 세운 신기록을 깨고, 세계 역사상 출판 첫날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6월23일 추산으로는 첫날에만 177만7천권이 영국에서 팔려나갔다. 이것은 <해리 포터> 네 번째 책이 세운 기록, 첫날 판매 37만2775권을 훨씬 넘어선 숫자다.

이제는 ‘해리 포터 현상’이라고 부르게 된 해리 포터의 마술은, 영화면 영화, DVD면 DVD, 그 마술이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전세계적으로 무섭게 팔려나가게 만들었다. 이 모든 마술이 시작된 것은 여전히 J. K. 롤링의 원작소설로부터다. 영국 여왕보다도 더 부유하다는 그녀는, 가난한 싱글맘에서 지금은 역사상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린이들이 읽는 책의 행복한 (그리고 결혼한) 작가가 되었다. 이처럼 뜨거운 해리 포터 열기에도 불구하고, 해리 포터 소설의 문학적인 가치며, 롤링의 글쓰기 스타일과 문장들이 높게 평가되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책을 손에 들자마자 누가누가 먼저 읽나 내기라도 하듯 열중해서 읽어내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흐뭇해진 어른들은,- 공공장소에서 내놓고 자랑스럽게 <해리 포터> 책을 읽는가 하면- 이제 모두 롤링의 손을 들어주기로 한 것 같다. 그녀에게 Dame 작위가 수여될 것이라는 소문은 그렇다치더라도, 이제는 평론가들이며 교사들도, 그녀를 전자시대 아이들을 책 앞으로 돌려보낸 세기의 영웅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전 세계의 <해리 포터> 팬들을 3년간 기다리게 한 이 다섯 번째 책은 무척 두껍다. 38챕터, 766쪽. 이것은 꽤 묵직했던 지난번 책보다 1/3가량 분량이 더 길어진 것이다. 무게 1kg.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힌트를 던지자면, 이번 책에서는 중요한 캐릭터 한명이 죽는다- 그게 누가 되든, 당연히 그 캐릭터는 <해리 포터>의 여섯 번째 영화부터는 출현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해리는 숙적인 볼데모르와 자신이 어떤 운명으로 엮여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또, 해리는 이제 15살이다. 이른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지는 않지만, 이 ‘아동 소설’의 주인공도 첫사랑의 어지러운 감정들을 조금은 느끼게 된다.

책을 소개하면서 왜 이만큼의 정보밖에 주지 않느냐는 불만은 접어두길 바란다. 이 책이 6월21일 0시에 판매를 시작하기 전까지 이 책에 관한 모든 정보는 철저한 보안정책 아래 절대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일급비밀’이었다. 이번 해리 책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 인쇄소 직원부터 해리 책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들까지- 에게는 모두 함구령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쇄소 직원이 새 책의 몇 페이지를 훔쳐내는 일이며, 책 판매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 책들을 싣고 가던 트럭 한대가 탈취(?)당하는 범죄(!)가 발생했었다. 알려졌었던 것은, 책의 맨 첫 번째 문단의 몇 문장뿐. ‘여름의 가장 더운 날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나른한 고요함이 Privet Drive 거리의 큰 사각형의 집들에 내려앉아 있었다…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라고는 4번지의 꽃밭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십대의 소년뿐이었다….’

모두 7권으로 예정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이 다섯 번째 책에 대한 반응은 좋다, 나쁘다라는 식으로 판가름나지 않은 상태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출시된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난 지금, 책을 단숨에 읽어치운 팬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지금까지의 <해리 포터> 시리즈 중 최고라고 하는가 하면, 가장 별로라는 반응도 있다. 그렇지만 모두 동의하는 바는, 지금까지의 시리즈 중 가장 어둡다는 것이고, 여전히 이 두꺼운 책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조금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평가는, 이전의 <해리 포터> 책을 재미없다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 리 없다는 모순적인 한계를 갖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가장 비판적인 반응은 책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례적인 책 마케팅 전략에 대한 것이다. ‘비밀주의’를 지향하고, 정해진 곳에서만 정해진 시간에 판매를 시작하는 식의 마케팅이 책에 대한 ‘과대한’ 기대를 낳고, 그 ‘과대한’ 기대가 순간 폭발적인 판매량으로 연결되고, 다시 그 폭발적인 판매량이 지속적인 판매와 인기를 보장하는 수순의.

현재, <해리 포터>의 세 번째 이야기 <아즈카반의 죄수>는 이미 허포드셔의 스튜디오에서 촬영에 들어갔고, 네 번째 이야기는 이제 시나리오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이 네 번째 영화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헤이먼은 이 원작이 영화 한편으로 옮겨지기에는 조금 길게 느껴지므로, 만약 한편으로 만들기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두편으로 만들 생각도 있음을 밝혔다. 이번의 다섯 번째 이야기가 네 번째보다 1/3가량 더 길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다섯 번째 이야기야말로 정말 두편의 영화로도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하게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길이가 아니라 나이다. 해리 역의 대니얼 래드클리프를 비롯 세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고, 한참 성장기에 있는 이 배우들은 일년이 다르게 쑥쑥 자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해리 포터> 소설에서는 매권이 이들의 호그와트 마술학교에서의 일년을 다룬다. 매권마다 아이들은 한살씩 나이를 더 먹고, 따라서 영화에서도 모두 한살씩 더 먹는 것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또, 네 번째 책에서 다섯 번째 책으로 넘어가면서 3년의 시간이 걸렸으니, 책을 읽는 독자들을 생각해보면, 해리와 같은 나이로 자라던 팬들이 이제는 해리보다 3살 더 먹은 상태에서 새로 나온 해리 책을 읽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한편의 책을 두편의 영화로 만들게 되거나 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어떻게든 매년 한편, 혹은 두편씩 영화를 만들면서 해리의 나이를 따라잡는다고 하더라도, 정작 해리 역의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과연 그렇게 나이들어갈 때까지 해리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어느 날 하룻밤에 쑥 자라서 거의 청년의 모습이 된다 해도, 어떤 마술로도 그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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