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고전 무협영화에 대한 존경과 변형,<청풍명월>
2003-07-15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Story

왕의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청의 무관 규엽(조재현)은 최근 잇단 살인사건을 조사하라는 명을 받는다. 5년 전 쿠데타로 집권한 왕을 도왔던 공신들이 솜씨좋은 자객의 칼에 살해당했기 때문. 규엽은 자객의 칼에 ‘청풍명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는 증언을 듣고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무관양성소 청풍명월을 떠올린다. 규엽은 그곳에서 지환(최민수)을 만나 우정을 나눴으며 지환이 스승의 딸 시영(김보경)을 사랑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부하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반란군의 편에 선 규엽은 그때 스승과 지환을 칼로 찔렀던 기억에 치를 떤다. 과연 왕의 호위무사 규엽은 자객이 된 지환과 시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 Review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선택이 틀렸을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 5년 전 규엽은 자기 부하들의 목이 눈앞에서 굴러다니는 것을 봤다. 자신을 믿고 따랐던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옳지 못한 일이라고 여긴 반란에 가담한다. 스승의 목을 베고 친구의 가슴에 칼을 들이댔다. 그뒤의 삶은 지옥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관객은 규엽을 ‘인간백정’이라고 수군대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의 목숨은 그에게 파리의 생명처럼 부질없다. 가로막는 것은 무조건 베어버린다. 규엽은 그렇게 살다가, 잊고 싶었던 과거의 유령을 만난다. 유령은 자객이 되어, 적이 되어 나타난다.

<청풍명월>은 거대한 역사의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희생자가 된 인물, 규엽의 기록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새로운 임금을 세운 인조반정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는 현실정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마지못해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의 편에 섰던 한 남자가 한때 청운의 꿈을 나누었던 인물과 적이 되어 마주친다. 80년대를 거친 사람들에겐 가슴이 뜨거워질 만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청풍명월>은 현실정치의 우화로만 그치는 영화는 아니다. 무엇보다 <청풍명월>은 스스로 무협서사극이라 이름붙인 무협영화다. 여기서 정치적 메시지는 무협영화에서 가장 익숙한 구조인 복수담에 녹아든다. 쿠데타로 스승과 친구를 잃은 남자가 복수를 위해 칼을 간다. 복수를 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걸 알지만 그에겐 남은 삶의 이유가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까 <청풍명월>은 역사의 희생자가 된 두 남자가 적이 되어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한 남자는 한맺힌 사연으로 자객이 됐고, 다른 한 남자는 호위무사가 됐다. 상대의 목에 칼을 들이밀어야 할 때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청풍명월>이 특이한 점은 주인공으로 설정한 인물이 지환이 아니라 규엽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유가 어찌됐든 변절자다. 한때 자신이 믿었던 이념과 사람을 버렸고 그로 인해 세상의 보편적 윤리와 담을 쌓은 자이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대변한다. 아쉬운 건 정작 영화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청풍명월>은 이야기가 그럴듯한 데 비해 감정을 연출하는 대목이 상당히 허술하다. 규엽이 처음 지환과 마주치는 장면. 푸른 대숲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낸 지환에게 규엽은 “다음엔 살려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영화의 맥락에 따르면 규엽은 그처럼 단호할 수 없는 입장이건만 영화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대목에서 의외로 직선적이다. 무언가 할말이 있는데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안타까움까지 표현해주길 기대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가에 관한 거시적 흐름은 잡히지만 개인의 고뇌가 어떤 행동으로 표현됐는지에 관한 미시적 접근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셈이다. 규엽이 부하를 살리기 위해 반군의 편에 서는 대목이나 지환이 스승의 딸 시영에게 사랑을 느끼는 대목처럼 감정적으로 중요한 장면이 소홀히 처리된 점은 대표적이다. 감독이 인물의 감정을 버리더라도 큰 틀의 내러티브를 선택한 느낌이 든다. 규엽의 표정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을 수 없는 건 관객이 둔감해서가 아닐 것이다.

홍콩의 무술감독인 <조폭 마누라>의 원진과 <동방불패> <신용문객잔>의 원빈이 안무한 <청풍명월>의 액션연출은 90년대 홍콩 무협영화처럼 화려한 것은 아니다. 감독이 “사실적”이라고 말한 대로 <청풍명월>에서 무술은 검이 바위를 쪼개고 십척 공중으로 비상하는 종류가 아니다. 대신 영화는 저속촬영과 고속촬영을 넘다들며 액션의 흐름을 잡으려 애쓴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순간은 드물고 검의 흐름만이 화면에 담긴다. 때로 이런 장면 가운데 놀라운 부분도 있다. 특히 지환이 갈댓잎으로 사람의 목을 베는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액션이 나올 때 무협영화에서만 가능한 격정과 흥분이 용솟음친다. <협녀>와 <와호장룡>의 대나무숲 결투장면이나 <독비도>의 외팔이 왕우의 검술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다. 하지만 <청풍명월>은 좁은 다리 위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전투처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장면이 많은데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보긴 힘들다. 액션장면의 양에 비해 충격의 파장은 약한 편이다.

1999년 <북경반점> 이후 4년 만에 <청풍명월>을 연출한 김의석 감독은 장철의 영화를 보며 자란 세대이고 <청풍명월>은 검무에서 세상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면 만들기 힘든 영화다. 고전 무협영화에 대한 존경과 변형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에서 골라 선택한 촬영장소는 눈길을 끌 만하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무협의 세계가 그 속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프리프로덕션 2년, 제작 1년의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다. 헬기를 동원한 항공촬영, 격렬한 전투장면, 와이어에 매달려 찍은 장면 등 스탭과 배우의 노고가 배어나는 화면도 상당하고 최민수의 카리스마에 어떤 위력이 있는지도 돌이켜보게 만든다. <청풍명월>은 아쉬운 대목이 많지만 단칼에 베어내리기엔 아까운 영화다.

:: 김의석 감독 인터뷰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선을 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 출신으로 <결혼 이야기>로 화려하게 데뷔한 김의석 감독은 <그여자 그여자> <총잡이> <홀리데이인 서울> <북경반점>을 거쳐 <청풍명월>이 5편째 장편영화다.

어떻게 <청풍명월>을 연출하게 됐나.

칼싸움영화를 하고 싶어서 95년에 이미 준비한 적이 있다. 상황이 안 좋아서 <총잡이>를 찍게 됐고 그뒤로 잊고 있었는데 <북경반점>을 끝내고 나니까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장민석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의뢰했다. 원래 하고 싶었던 건 일지매 이야기였는데 <청풍명월>로 바뀌게 됐다.

인조반정을 모티브로 삼은 건 어떤 계기가 있나.

실제 역사를 빌려서 어떤 상상을 덧붙이자는 생각을 했다. 사실 조선시대가 칼을 왕성하게 쓰던 시대는 아니지 않나. 칼싸움영화를 좋아하는데 우리 시대에 맞는 우리의 칼싸움영화를 하고 싶었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있는데 우리나라엔 없는 거니까. 우리 역사에서 그런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찾아보다 인조반정이 떠오른 것이다.

영화가 상당히 정치적인 이야기인데.

관객한테 그런 점이 중요하게 전달될지는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관심을 갖고 있다. 80년 광주를 경험한 세대라 서로를 찔렀던 아픈 역사를 잊지 못한다. 현재도 그런 걸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한테 와닿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이런 걸 중국이나 일본영화가 아니라 우리 영화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내에서 헌팅해서 찍은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다. 우리 얘기를 하는데 외국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 우리 자연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나. 더 좋은 장소를 많이 찾았고 일부는 찍기도 했는데 편집에서 잘라낸 게 아쉽다.

액션연출에서 중점을 둔 것은 어떤 부분인가.

새로운 표현은 아니지만 사실적이고 다이내믹한 면에 신경을 썼다. 홍콩영화처럼 화려하고 과장된 표현은 자제하면서. 저속촬영과 고속촬영을 많이 했는데 정직하게만 찍으면 너무 느슨할 것 같았다.

규엽과 지환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나.

둘 다 역사와 시스템의 희생자이며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지환이 낭만주의자라면 규엽은 현실주의자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둘 다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선을 넘어버린 사람들이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해남에서 지환이 갈대밭에서 액션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아직 영화는 반도 끝나지 않았는데 다들 많이 지쳤다. 팀워크도 흔들리고. 하지만 그뒤부터는 단련이 돼서 그런지 오히려 손발이 잘 맞았다. 춘천 공지천에 40척의 배로 다리를 만들어놓고 촬영이 연기됐던 때도 힘들었다. 촬영이 연기된 뒤 몇달 지나 공지천에 가보니까 다리가 그대로 있었는데 내가 엄청난 짓을 벌여놓고 지금 뭐하고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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