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2142년 에너지 전쟁으로 파괴된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건설한 유일한 청정도시 ‘에코반’의 심장부에 칩입자가 들어온다. 푸른 하늘을 보여주겠다는 어린 시절 첫사랑의 약속을 간직한 경비대원 제이는 침입자가 바로 실종되었던 자신의 첫사랑 수하임을 알게 되고 혼란스러워한다. 한편 제이를 사랑하는 경비대장 시몬도 이 사실을 알고 수하를 제거하려고 한다.
■ Review126억원의 제작비와 7년간의 제작기간, 그리고 무수한 입소문, <쉬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국영화를 기사회생시켰듯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산업적 기대 등 엄청난 부담감이 87분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작품에 얹혀져 있다. <원더풀 데이즈>는 좀 온당치 못하게도 결국 그 ‘기대’에 얼마나 부응했느냐 못했느냐로 감상되고 평가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 사실을 갈수록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감독과 300여명에 이른다는 스탭들에겐 가혹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일단 인정하고 시작해야겠다. 기술적으로 <원더풀 데이즈>는 놀랍다. 인물은 2D 셀애니메이션으로 액션이나 메커닉은 3D CG로, 배경 등은 미니어처 실사로 해서 죄다 이어붙인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시도는 경이로운 볼거리이다. 국화꽃으로 확 피어나는 타이틀 앞으로 2142년 지구의 황량한 풍경을 주인공 제이가 오토바이로 통과해 나가는 장면에서부터 이미 <원더풀 데이즈>는 선구자에게 주어진 기술적인 방면의 도전을 거의 성공리에 완수했다는 것을 과시한다. 하나의 사소한 조악함으로도 모든 것이 폄훼될지 모른다는 이들의 완벽주의적 우려는 심지어 잠깐 삽입된 춤 장면의 안무를 위해 기어코 엔딩 크레딧에 안은미의 이름까지 올려놓고 만다.
하지만 아쉽다. 프라하까지 날아가 녹음했다는 원일의 음악과 어우러지는 이 거창한 비주얼에 경탄하면 할 수록 그 느낌은 더해진다. 드라마가 약하다는 말은 적절치 않다. ‘영화를 미장센의 집합’이라고 생각하는 김문생 감독에게 드라마보다 중요한 것이 이미지라는 것은 당연하고 그 이미지의 창조는 확실히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부족하다. 그것은 원화가 연이어 수정되면서 ‘때깔’은 좋아졌으나 성형미인처럼 맨송맨송해진 캐릭터들 때문일 수도 있고 주연급 성우들의 판에 박힌 목소리 연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2142년의 그 아마득한 미래의 세계를 관객에게 납득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저 ‘오래된 미래’의 세세한 정치사회적 맥락을 오시이 마모루처럼 브리핑하지도 않고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경험하며 배우게 하지도 않는다. 견고한 비주얼과 사운드로 관객의 뇌리 속에서 직접 그 세계를 열어젖히려고 한다. ‘영 어덜트’(young adult)를 타깃으로 한다는 말도 비교적 이미지로 인식하는 데 익숙한 세대를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의 뜻이다.
따라서 <원더풀 데이즈>가 많은 성공적인 전범들 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세심하게 녹여내는 것은 당연하다. 시실섬이라는 단일 공간에 부유하고 선택받은 계층의 유토피아인 ‘에코반’과 이곳에 진입하지 못한 가난한 이들이 지배와 착취를 받으며 버텨가는 디스토피아 ‘마르’라는 양축을 대조시켜놓고 묵시록적인 이미지를 풍길 때는 오시이 마모루가, 파괴된 생태계의 지옥도와 푸른 하늘의 대조적 이미지를 끌어낼 때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이 넘치는 마르 지역에서의 액션에서는 피터 정이, 수하와 제이가 스테인드글라스 앞에서 대치할 때, <카우보이 비밥>이 떠오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의도했든 아니든, 그 이미지들이야말로 대중적으로 검증된 <원더풀 데이즈>가 당연히 참고했을 이미지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이미지들을 성공적으로 때로는 더 월등하게 재현한다.
다만 이 검증된 이질적 잡탕밥들을 2D와 3D, 미니어처의 방식들을 결합할 때처럼 잘 버무리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매끄럽지 않은 이음새 탓에 관객은 영화가 보여주는 만큼만 보게 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보지 못한다. 그 매끄럽지 않은 이음새 중의 하나가 바로 대사다. 이미지를 중시하고 설명이나 대사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말은 대사가 어떻든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다. 대사가 이미지에 봉사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물들이 서로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대화들을 주고받으면서 빛과 공간감으로 풍성한 <원더풀 데이즈>의 완벽한 비주얼의 세계는 갑자기 살아 있는(animate) 것 같지 않게 된다.
그래도 <원더풀 데이즈>의 비주얼은 성급하게 달려가는 클라이맥스의 민망함을 덮을 만큼 압도적인 잠깐 동안의 희망을 보여준다. 마지막 실사로 촬영된 푸른 하늘이 CG의 힘을 입어 활짝 열리는 장관(壯觀)이 그것인데, <원더풀 데이즈>가 한국 애니메이션에 그런 ‘푸른 하늘’을 열어주리라는 약속을 잠시나마 지킬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 <원더풀 데이즈>에 나오는 공간오염지구 마르는 청계천 모델
약 140년 뒤의 미래, 지구상 마지막 피난처 시실섬은 시실(時失)이라는 말 그대로 시간을 잃어버린 곳이다. 섬의 이름은 지도에서만 잠깐 보이고 직접 언급되지는 않는데 모델은 1940년대 핵실험 기지로 사용되었던 남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섬이다. 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수하가 믿었던 이상향 ‘지브롤터’도 실은 이 섬이다.
이 섬 안의 각 지역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제작팀들에게 영감을 준 것들은 대개 주변의 것들이다. 제이가 비를 맞으며 마르에서 에코반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귀환하는 인상적인 장면에 나오는 황량한 길은 몇번의 터널들의 반복에서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이유는 양수리에서 팔당으로 넘어오는 6번 국도의 변형이라서다. 김문생 감독이 실제로 양수리 종합촬영소에서 서울로 올라오다가 영감을 얻었다.
에너지 전쟁에서 살아남기는 했지만 에코반으로의 진입이 거부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오염지구 마르(Marr)의 디스토피아적 공간은 브라질 출신 사진작가인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an Salgado)의 사진들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이지만 최근 공사가 시작된 청계천을 모델로 했다.
오염물질을 먹고 그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인공지능의 유기체 식물도시 에코반은 ‘Eco+Urban’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원래 오염된 지구를 정화하려는 시스템인데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부해처럼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환경을 복원하면 소멸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특권층이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오염물질을 주변에 만들면서 그 명맥을 이어간다. 그 핵심에 있는 델로스 타워의 연꽃 컨셉은 서울 삼성동의 봉은사 연등축제 때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수하가 델로스 타워에 침투해서 주요 정보를 빼내려고 할 때 친 패스워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를 풀어쓰기 한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