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새롭진 않지만 여전히 즐거운,<터미네이터3>
2003-07-22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 Story

1997년에 다가오기로 예정되어 있던 심판의 날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러나 존 코너(닉 스탈)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한 채 여전히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존 코너의 불안은 현실로 다가온다. 존 코너와 함께 저항군의 주력이 될 인물들을 암살하기 위하여 새로운 터미네이터 T-X(크리스타나 로켄)가 미래에서 보내진 것이다. 신형 T-X는 기계 골격에 액체 금속이 입혀졌고, 모든 기계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그뒤를 이어 존 코너와 케이트 브루스터(클레어 데인즈)를 보호하기 위하여 새로운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이 도착한다. 운명은 바뀌지 않았고, 스카이 넷은 세계를 장악하기 위한 음모를 시작한다.

■ Review

제임스 카메론 없는 <터미네이터3>가 과연 가능할까? 12년 만에 만들어진 <터미네이터3>가 불안했던 이유는 제임스 카메론의 존재였다. <터미네이터>를 창조하고, 속편에서도 전편 못지않은 찬사를 받았던 제임스 카메론이 사라진 시리즈의 3번째 영화는 누가 생각해도 위험하다. 게다가 감독은 이제 겨우 3편의 영화를 만든 조너선 모스토. 스스로 말하듯, <터미네이터3>의 감독을 맡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미친 짓이었다. 그 누가 감독을 맡더라도, 제임스 카메론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0.1%를 결코 넘지 않는다.

조너선 모스토는 결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터미네이터3>는 전편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 있지만, 나름대로의 장점들이 담긴 영화다. 조너선 모스토는 잔재주 대신에 뚝심으로 밀고 나간다. <터미네이터3>가 택한 노선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장면은 초반에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전이다. 존과 케이트는 소형 밴을 타고 있고, T-X는 대형 크레인으로 쫓아온다.

거기에 오토바이를 탄 T-800이 가세한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처럼 직접 도로를 만들어 찍은 이 장면은 가끔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거침이 없고, 극한을 달려간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자동차 추격전이 우아하고 섬세하다면, <터미네이터3>의 추격전은 단순하고 과격하다. 크레인에 매달린 T-800을 떨어뜨리기 위해, T-X는 크레인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달려가던 구급차에 부딪히고, 가로등에 충돌하고, 도로변의 건물을 송두리째 박살내버린다. 조너선 모스토는 잠깐의 쉴 틈도 없이 그대로 밀어붙이는데, 그 막무가내의 액션이 짜릿한 쾌감을 준다. 제작진은 이 무지막지한 장면을 찍기 위하여, 금방 부서질 주변 건물까지 포함하여 1km의 4차선 도로를 직접 만들었다. 그 덕에 제작비는 1억9천만달러까지 치솟았고.

제임스 카메론이 만들었던 1편에는 투박하면서도 절절하게 가슴을 흔들어대는 감동이 있었고, 2편에는 화려하다 못해 아찔한 액션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제임스 카메론은 드라마와 액션 어느 하나도 소홀히 대하지 않는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에는 두 가지가 함께 담겨 있었다. 하지만 조너선 모스토는 <터미네이터3>에서 그 모든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전편에서 다하지 못한 것들을 엮어내면서, 아놀드 슈워제네거 없이도 다음 시리즈를 만들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정도다. 액션은 새로운 것 대신, T-X와 T-800이 서로의 몸을 움켜잡고 벽에다 밀어붙이면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화장실 액션신처럼 오로지 힘으로 일관한다. <터미네이터3>를 보고 있으면 <리쎌 웨폰4>가 떠오른다. 이야기는 진부하고, 캐릭터도 똑같은데, 전혀 새롭거나 탁월하지도 않은데 여전히 즐거움을 안겨주는 영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만 충실해서 그게 장점이 되는 영화.

<터미네이터3>는 전편을 보았던 관객이 향수를 느낄 만한 장면들도 곳곳에 있었다. 몇개만 꼽아보자면, 터미네이터들은 여전히 벌거벗은 채 현재에 도착하여 옷을 뺏어 입는다. 물론 선글라스도. 사라 코너는 이미 죽었지만, 용감하게 기관총을 발사하는 케이트를 보고 존 코너는 되뇐다. ‘내 엄마를 보는 것 같아’라고. T-X의 종말은 1편을 그대로 끌어왔다. 1편에 대한 오마주이긴 하지만, 막강한 T-X의 능력을 감안한다면 아쉬운 장면이다.

<댈러스모닝뉴스>의 필립 원치는 “플롯에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작자들은 대부분의 관객이 화면에서 펼쳐지는 액션을 감상하기에 바빠 이를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 느끼는 것 같은데, 그들의 생각은 아마도 적중한 것 같다”고 말한다. <터미네이터3>는 정교한 플롯으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볼 구석은 있다. 전편들은 미래를 바꾸기 위하여 과거로 터미네이터가 보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터미네이터3>는 약간 다르다. 이번의 T-800은 미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기 위하여 보내진다. 파멸의 미래, 운명은 결코 바꿀 수 없고 단지 그들이 할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뿐이다. 존과 케이트가 T-X에게서 겨우 목숨을 보전했을 때 깨달은 점은 바로 그것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아마도 정치가가 될 아놀드 슈워제네거 없이 계속될 것이다. 3편에서 그 복선을 충분히 깔아놓았으니까.

:: <터미네이터3>의 감독과 배우들

우리가 낯설다구요?

약간 살이 붙은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제외하고, <터미네이터3>에서 익숙한 이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클레어 데인즈다. 약간 경박해 보이지만 상큼한 매력으로 로미오를 홀렸던 클레어 데인즈는 이제 성숙한 여인이 되어 돌아왔다. 존 코너의 말처럼 사라 코너 못지않은 여장부의 기질을 지니고 있는. 클레어 데인즈는 지난해에 <디 아워스>에 나왔고, 최근작은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It’s All about Love>다. 멜 깁슨의 <더 페이스>로 데뷔한 닉 스탈은 <씬 레드 라인>에 출연하면서 주목받았다.

에드워드 펄롱 같은 꽃미남은 아니지만, 초췌한 존 코너의 모습을 연기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최강의 여성형 터미네이터로 출연한 크리스타나 로켄은 모델 출신이고, <터미네이터3>가 데뷔작이다. 강력한 T-X 역을 소화해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운동신경이 매우 뛰어나고, 지극히 효율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다.

조너선 모스토는 89년 <베벌리힐스 바디스내쳐>란 코미디영화로 데뷔했다. 데뷔작은 시원찮았지만, 97년의 <브레이크 다운>은 섬뜩한 액션스릴러로 절찬을 받았다. 혹시 놓쳤다면 반드시 찾아봐야 할 걸작. 잠수함영화인 은 2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아카데미 음향상을 받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조너선 모스토는 <브레이크 다운>과 <U-571>을 통해 액션스릴러를 능숙하게 다루는 재능을 발휘하여 대작인 <터미네이터3> 연출을 맡게 되었다. 해외에서는 <터미네이터3>의 연출이 비교적 성공이라는 호평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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