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비디오 게임 같은 <터미네이터3>
2003-07-23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미래는 아직 기록되지 않았다….” <터미네이터3: 기계들의 봉기>(Terminator 3: Rise of the Machine) 시작과 함께 젊은 내레이터는 엄숙하게 선언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비록 아놀드 슈워제너거로 무장한 이 영화의 미래 박스오피스 성적이 어떨 것인지는 이미 자명하지만. 이 작품은 올 여름영화 전쟁에서 엄청난 사전예매를 기록함으로써 향후 흥행여부를 거의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놓았으니 말이다.

만약 지금이 다시 <터미네이터> 시즌이라면, 필경 모 공화당 후보가 재선을 위해 뛰고 있어야 맞다. 무명의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하고 1930년대 이래 가장 충격적인 프랑켄슈타인 몬스터를 출연시킨 오리지널 아놀드 슈워제너거의 로봇 오페라는 그 정체가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1984년 대통령 재선 하루 전날 개봉함으로써, 레이건식 ‘새로운 아침’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대안을 마련해준 바 있다. 또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은 부시 1세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모토로 앞세운 채 1991년 여름 권좌를 차지하면서 세력을 한껏 강화하고 있을 때 나타났다. 카메론이 엄청 부풀려놓은 이 “포스트 ‘사막의 폭풍’”은 대통령의 체력 조언자(아놀드 슈워제너거를 말함- 역자)를 더욱 친절하고 점잖은 킬러 사이보그로 부활시켰다(한때 <터미네이터2>는 역대 가장 비싼 제작비를 잡아먹은 영화였는데, 카메론은 겸손하게도 이를 “세계평화를 대변하는 최초의 액션영화”라고 묘사한 바 있다).

후속편의 제작 마감시한 같은 건 없으며, 바야흐로 지금, 부시 2세 군단이 마구 돌진하려 하는 이때, 데어(der) 아놀드- 한때 <타임>에 의해 “할리우드의 ‘전세계 정복’의 ‘가장 강력한 심벌’”이라고 불렸던- 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다. 아니면, 이제 존 코너(닉 스탈)로 자라난, 미리 예정된 세계의 구원자가 돌아온다고 말해도 되겠다. 성 잘 내는 사람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가 실수나 혹은 전략적 사기에 의해 인류의 지도자가 된다는 점을 눈여겨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또 뭐 어쨌단 말인가? 카메론은 잠수함 스릴러인 의 작가이며 선임자보다 짐의 무게가 확실히 덜한 사내 조너선 모스토에게 연출 프랜차이즈를 떼주었다. <터미네이터2>가 팍 퍼진 난봉꾼 같은 군사작전을 보여준 데 반해 이보다 더 날렵하고 덜 장대한 <터미네이터3>는 버뱅크 도심에서 일어난 지진 속을 관통해 질주하는 주자 같은 느낌을 준다.

미래로부터의 임무를 띠고 급파된 아놀드 안드로이드의 최신 모델은 모하브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 거기서 물질화한다(몸을 만들어낸다). 벌거벗은 채 태어나 이 세상으로 스며들어온 그는, 이제 터미네이터의 전통이 되다시피한 약탈을 통해 입을 옷을 마련한다. 이번에는 거만하고 성마른 남성 스트리퍼를 발가벗겨 페스티시적이고 찬란한 누더기를 빼앗고 스스로를 울트라 ‘남성 역할 여성’ 이미지로 옷입힌다. 2편에서보다 뭔가 덜 아버지스런 슈워제너거는 매우 근사한, 다시 말해 웃음이 날 정도로 불끈불끈한, 몸매를 보여준다. 그의 업데이트된 터미네이터도 역시 여전히 사회성 떨어지는 기계다. 물론 그에게는 특정한 직업적 자존심이 있지만 말이다. 비웃듯이 ‘로봇’이라고 지칭되자 그는 재빨리 시정해준다. “나는 사이버네틱 생명체다.”

첫 두편의 <터미네이터>는 중성적인 린다 해밀턴의 ‘전사 같은 여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일종의 근육질 페미니즘을 투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록 클레어 데인즈가 다양한 총기를 가지고 띄엄띄엄 재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오히려 여성을 깔보고 공격하는 흐름이 깔려 있다. 슈워제네거의 적인 엄청나게 우아한 T-X(크리스타나 로켄)는 몸에 찰싹 붙는 점퍼슈트를 입고 초인적인 힘을 내는 팔을 지닌, ‘로봇 깔치’(robot babe)라고나 해야 할 캐릭터다. 그녀의 단점은 울컥하는 성미로, 이 세련된 여전사는 조만간 날려버릴 희생자를 만나면 머리를 까딱이며 비인간적인 호기심으로 빛을 발하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버릇이 있다. 게다가 그녀는 슈워제네거의 전기회로를 불태워먹을 수도 있다.

지난 80년대 중반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터미네이터>는 그 터프걸 여주인공 덕분에, 여러 가지 학구적인 담론에 영감을 제공했다. 복잡하게 뒤얽히고 괴상할 정도로 오이디푸스적인 시간여행을 배경으로, 존 코너는 그의 미래 가장 친한 친구에 의해 아버지가 됐으며, 슈워제네거는 할리우드의 액션 슈퍼스타, 어쩌면 ‘블록버스터의 인격화’랄 수 있는 존재로 막 등극했다.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것들을 몰고 온 전작들에 비해 3탄이니 그렇겠지만, <터미네이터3>에는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 우리 세계는 머지않아 스스로를 인식하는 단일한 거대 컴퓨터 프로그램의 해로운 통제와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흔해 빠진 사상 안에, 요즘 식의 정신착란과 복잡한 가계도가 녹아 있다. 어쩌면 정말, 그 프로그램이 이 영화 각본도 직접 집필했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죽여버릴 수 없는 한쌍의 적을 등장시키는 한편의 비디오 게임에 가깝다고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영화 설명이 되는 이 작품을 말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마상(馬上) 창 시합 수준의 메가 범퍼 자동차 레이싱은 <매트릭스2 리로디드>의 어마어마한 고속도로 전투만큼이나 인상적인 파괴의 축제를 보여준다. 그러나 싸움은, 훨씬 더 실제적이다. 모스토의 연출 조이스틱이 내리는 명령에 따라, 끝없이 되살아나는 터미네이터와 터미네트릭스는 쇳소리 철컥거리는 발레 메커닉 속에서, 번갈아 서로를 들어올리고 내리치며, 밀어젖히고 덤벼들며, 던져올리고 부딪치고 으깨버린다. 저런 것이야말로 최후의 전희가 아닐까 싶은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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