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여우계단> 주인공 송지효, 박한별
2003-07-29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보이지 않는 고통 심했어요

원래는 28개지만 절실한 소망을 빌면 29번째 계단이 열리며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화속 ‘여우계단’, 송지효(22)와 박한별(19)이야말로 29번째의 계단을 밟은 이들인지 모른다. 영화사 씨네2000이 올초 ‘여고괴담’ 시리즈 3편의 네 주인공을 뽑기 위해 만나본 이는 3000여명, 그 가운데 주인공 진성과 소희로 뽑힌 이들이니 말이다. 지난 26일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선입견도 있었다. 꽤 독한 친구들이겠군, 영화 속처럼 서로에 대한 경쟁심도 만만찮지 않을까 하지만 신문사 옥상의 정원을 보고 “와~” 탄성을 지르며 겅중겅중 뛰는 송지효, 그를 보자마자 “언니, 우리가 (영화속에서) 동성애래, 책임져!” 어리광 부리는 박한별은 아직 어린 티가 채 가시지 않은 평범한 젊은이였다. “한별아, 언니가…언니가…” 말하는 송지효는 영락없는 큰 언니였다.

물론 최종 오디션에 12명이 올랐을 때 “싸~하던” 분위기를 그들은 잊지 못한다. “발레복 입고 오디션을 봐야 해서 7시간 동안 배 나올까봐 물 한모금 못 먹었어요. 너무 배고파 먹는 얘기한 게 처음 말한 거예요.” 영화 속 박한별은 무엇이든 학교 1등인 소희, 송지효는 모차르트를 이기지 못하는 살리에르 같은 진성 역을 맡았다. “진성만큼 끔찍할 정도로 남을 질투하고 시기한 일은 없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음 속 한구석엔 그런 감정이 숨겨져 있지 않나요”(송) “요즘 애들 그런가 오히려 친구들을 보면 요즘엔 더 의리있는 편인 것 같은데….”(박)

촬영이 끝난 뒤에야 한 발자국 떨어져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배우가, 프로가 되는 과정은 진성과 소희가 흘린 땀과 피 못지 않았다. 인문고와 세무학과를 나온 송지효는 물론, 한국무용을 예고 시절 전공했던 박한별조차도 토슈즈를 신고 몇시간 서 있으면 발가락이 터져버렸다. “보여지는 건 1시간30분짜리지만 보이지 않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송) “여고괴담 나오면 무조건 뜬다고 하도 얘기 들으니 두려워요. 사람들은 쉽게 찍어 쉽게 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박) 여고괴담 시리즈가 배출한 배우들의 면면은 만만찮다. 최강희, 박진희(1편), 김민선, 이영진, 박예진(2편) 등이 그들. 송지효와 박한별이 부담을 느낄 만도 하다.

그래도 송지효는 좀 느긋한 편이다. “원래 제가 긴장을 안 하는 편이거든요. 오디션때도 제일 천하태평이란 소리도 들었고. 솔직히 좀 더 준비가 된 다음 영화를 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꽤 많은 CF를 했지만 “얼굴이 찍을 때마다 달라 보이는 탓인지” 길거리에 나서도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생활이 좋다고 털털하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에서 순간 집중력이 떨어져 보인다”며 장면을 이야기할 땐 신인답지 않다. 부천국제영화제에 페스티벌 레이디로 유독 박한별이 선정된 데 대해 서운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자 “사진을 찍어도 주로 한별이를 오래 찍더라고요. 같은 주인공인데 처음엔 시기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근데 동생 같아선지, 이젠 한별아 니가 해, 자꾸 그렇게 되더라고요.”

박한별은 소희와 닮은 구석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리틀앤젤스 활동을 하며 “학교, 연습, 학교, 연습” 때문에 처음 극장에 가서 본 게 “중1때 본 <여고괴담> 1편이었”을 정도. 중3때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연기자의 준비를 했지만 고2때 인터넷에 친구들이 띄운 앨범사진 하나로 ‘얼짱’(얼굴짱) 소리를 들으며 유명해졌다. 전지현을 닮았다는 얘기는 하도 들어 이제는 “무감해졌지만” <여우계단> 덕에 “전지현이 아니라 박한별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곧장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는 박한별과 달리 송지효는 “느긋하게 여행 좀 했음 좋겠다”고 말했다. 하긴 어떠랴. 이들은 이제 막 여우계단의 첫 계단을 디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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