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고통 심했어요
원래는 28개지만 절실한 소망을 빌면 29번째 계단이 열리며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화속 ‘여우계단’, 송지효(22)와 박한별(19)이야말로 29번째의 계단을 밟은 이들인지 모른다. 영화사 씨네2000이 올초 ‘여고괴담’ 시리즈 3편의 네 주인공을 뽑기 위해 만나본 이는 3000여명, 그 가운데 주인공 진성과 소희로 뽑힌 이들이니 말이다. 지난 26일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선입견도 있었다. 꽤 독한 친구들이겠군, 영화 속처럼 서로에 대한 경쟁심도 만만찮지 않을까 하지만 신문사 옥상의 정원을 보고 “와~” 탄성을 지르며 겅중겅중 뛰는 송지효, 그를 보자마자 “언니, 우리가 (영화속에서) 동성애래, 책임져!” 어리광 부리는 박한별은 아직 어린 티가 채 가시지 않은 평범한 젊은이였다. “한별아, 언니가…언니가…” 말하는 송지효는 영락없는 큰 언니였다.
물론 최종 오디션에 12명이 올랐을 때 “싸~하던” 분위기를 그들은 잊지 못한다. “발레복 입고 오디션을 봐야 해서 7시간 동안 배 나올까봐 물 한모금 못 먹었어요. 너무 배고파 먹는 얘기한 게 처음 말한 거예요.” 영화 속 박한별은 무엇이든 학교 1등인 소희, 송지효는 모차르트를 이기지 못하는 살리에르 같은 진성 역을 맡았다. “진성만큼 끔찍할 정도로 남을 질투하고 시기한 일은 없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음 속 한구석엔 그런 감정이 숨겨져 있지 않나요”(송) “요즘 애들 그런가 오히려 친구들을 보면 요즘엔 더 의리있는 편인 것 같은데….”(박)
촬영이 끝난 뒤에야 한 발자국 떨어져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배우가, 프로가 되는 과정은 진성과 소희가 흘린 땀과 피 못지 않았다. 인문고와 세무학과를 나온 송지효는 물론, 한국무용을 예고 시절 전공했던 박한별조차도 토슈즈를 신고 몇시간 서 있으면 발가락이 터져버렸다. “보여지는 건 1시간30분짜리지만 보이지 않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송) “여고괴담 나오면 무조건 뜬다고 하도 얘기 들으니 두려워요. 사람들은 쉽게 찍어 쉽게 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박) 여고괴담 시리즈가 배출한 배우들의 면면은 만만찮다. 최강희, 박진희(1편), 김민선, 이영진, 박예진(2편) 등이 그들. 송지효와 박한별이 부담을 느낄 만도 하다.
그래도 송지효는 좀 느긋한 편이다. “원래 제가 긴장을 안 하는 편이거든요. 오디션때도 제일 천하태평이란 소리도 들었고. 솔직히 좀 더 준비가 된 다음 영화를 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꽤 많은 CF를 했지만 “얼굴이 찍을 때마다 달라 보이는 탓인지” 길거리에 나서도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생활이 좋다고 털털하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에서 순간 집중력이 떨어져 보인다”며 장면을 이야기할 땐 신인답지 않다. 부천국제영화제에 페스티벌 레이디로 유독 박한별이 선정된 데 대해 서운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자 “사진을 찍어도 주로 한별이를 오래 찍더라고요. 같은 주인공인데 처음엔 시기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근데 동생 같아선지, 이젠 한별아 니가 해, 자꾸 그렇게 되더라고요.”
박한별은 소희와 닮은 구석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리틀앤젤스 활동을 하며 “학교, 연습, 학교, 연습” 때문에 처음 극장에 가서 본 게 “중1때 본 <여고괴담> 1편이었”을 정도. 중3때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연기자의 준비를 했지만 고2때 인터넷에 친구들이 띄운 앨범사진 하나로 ‘얼짱’(얼굴짱) 소리를 들으며 유명해졌다. 전지현을 닮았다는 얘기는 하도 들어 이제는 “무감해졌지만” <여우계단> 덕에 “전지현이 아니라 박한별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곧장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는 박한별과 달리 송지효는 “느긋하게 여행 좀 했음 좋겠다”고 말했다. 하긴 어떠랴. 이들은 이제 막 여우계단의 첫 계단을 디뎠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