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팬티 입고 목욕합니꺼. 요게 똑바로 스이소!” 우악스런 손길로 안마시술소를 찾은 철민(정우성)의 꾸부정한 하체에 긴장을 바짝 불어넣는 순자. <똥개>를 봤다면, “순자, 가가 누고?”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치밀어오를 것이다. 낮에는 인조눈썹이 빠지도록 스쿠터 몰고다니며 커피 배달을 하고, 밤에는 안마시술소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그 억센 소녀를 차지한 다음, 초짜배우 홍지영(22)은 한동안 안절부절못했다. 1년 전, 경상대학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뒤 친구따라 고향인 부산을 떠나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드라마 단역뿐. “껌 뱉고 지나가는 행인 역할이 전부였다”는 그에게 쉽사리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곤 본인조차 몰랐다.
“떨어진 줄 알고 포기하고 있었어요.” 순자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언니가 아르바이트해서 마련해준 100만원이 떨어져갈 무렵, 그는 헬스클럽에서 서무 일을 맡아보기 시작했다. 그 무렵 틈틈이 연기학원을 다니던 그는 인터넷 사이트에 아무 생각없이 프로필을 올렸는데 한 매니저가 전화를 걸어 오디션 제의를 해왔다. “외모도 순자하고 어울리고, 집도 부산이니 사투리가 될끼다고 생각했겠죠.” 일면식 없는 제작사에 무턱대고 찾아가서 면접을 치른 것이 두번. 그러나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나중에 (엄)지원이 언니한테 들은 이야긴데, 최종 후보로 남은 또 한분이 더 유력했대요. 키도 상대역인 지원이 언니하고 비슷하고, 연기도 더 잘했다 하고. 처음에는 그분 땜빵인 줄 알았다니까요.”
크랭크인 직전에서야 곽경택 감독이 “영화 속 순자의 이미지랑 더 닮았다”며 합격통지서를 내줬으니 기쁨이 오죽했을까. 그러나 혹독한 촬영현장은 신인배우를 이내 긴장케 했다. 철민과의 관계를 추궁하는 친구 정애(엄지원)와의 기싸움 장면.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물고서 10여번 NG를 내는 동안 감독과 스탭들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그는 그때의 당혹함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카메라 앞에서 벌거벗은 정우성과의 천연덕스러운 대면도 쉽지는 않은 일. “우성이 오빠를 현장에서 항상 ‘그’라고 불렀어요. 여자 스탭들은 심지어 ‘그’가 입었던 옷이라며 냄새를 맡기도 했고. (웃음) 그런데 공사를 했다고 하지만 ‘그’의 알몸을 뻔히 보는 게 어디 쉬워요. 촬영 때 안 보려고 무진장 애썼어요.”
첫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극장에서 자신이 아닌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아 마냥 좋았다는 그는 “송강호, 설경구 선생님을 모델로 삼고서”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으려 한다. “스타 되려고 시작한 건 아니거든요. 대학 때 무대에 서면 주인공을 할 때도 있었지만, 매번 할머니나 남장여자였으니까. 그냥 막 오르기 전에 밀려오는 긴장과 흥분이 좋아서 한 거예요.” 얼마 전, 비슷한 이미지의 배역으로 드라마에 출연 섭외가 있었지만, 한발 물러섰던 것도 “과욕 부리다 쉽게 망가지는 전철을 밟기 싫어서다”. 현재 아는 언니의 바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기의 꿈을 단단히 다지고 있는 그의 최종목표는 뮤지컬 배우. 첫 인터뷰라면서도 서슴없이 강단을 내뿜는 걸 보면, 그가 제시한 궤적이 터무니없는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