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그 미국 할머니, 한국말도 잘하네”, <집으로…>
2003-07-30

돌이켜보면 나의 외할머니는 무식했으나 나름대로 당당했고 사랑스러운 분이셨다. 맞은편 동네의 따뜻한 백열전구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져 어슬어슬 건너다 보이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저 집도 오늘 저녁 끼니는 거르지 않는구나’라고 서로를 안심하던 달동네. 그 달동네 외가댁에서의 기억은 곧 외할머니와의 추억이다.

나의 수호천사 외할머니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무조건의 사랑을 주셨다. 그러나 유일하게 화를 내며 주장하시던 일이 있었는데 ‘밤에 똥을 누지 말라’는 것이었다. 손자에게 이끌려 푸세식 뒷간 문 앞을 지키고 앉아서 “똥 누냐? 밤똥 누지 마! 먹은 것도 없는데 배를 비우면 아침에 배고파지잖아∼”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면 나오던 응아도 당황하고 멈칫거리기 일쑤였다. 배설을 참으면 배가 덜 고프리라 여기시는 할머니의 사랑(?)어린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유난히도 튀어나온 텔레비전의 뒤통수가 손도 못 대게 뜨거워지도록 TV 보는 일이 낙이었던 할머니께서 어느 날 <제시카의 추리극장>이라는 외화를 보시고는 기분 좋게 껄껄 웃으시며 “아이고 그 미국 할머니. 참 한국말도 잘하네” 하시는 것이었다. 나 <소머즈> 같은 젊은이들보다 훨씬 나이든 제시카 할머니의 한국어가 대견해 보이셨나보다. 외할머니가 뒤늦게 한글을 배우시느라 겨우겨우 한 글자씩 연습하시는 걸 본 것은 아홉살 때였다. 난 ‘그럼 할머니는 바보같이 여태 글자도 못 썼어?’라며 싸가지 없는 질문도 서슴없이 해댔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인생을, 손자들까지 줄줄이 등장해서 야금야금 갉아먹었던 할머니의 세월을 철부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68살로 비교적 일찍 세상을 뜨셨을 때 난 무척이나 울었다. 큰딸인 내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고 ‘우리 엄마한테는 이제 엄마가 없구나’ 싶어 마냥 안쓰러웠기도 했지만 장례를 마치고 몇달 동안은 길을 걷다가도 할머니 생각만 하면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육남매를 낳아서 그중 한명을 저승길에 먼저 앞세우고 가슴 깊이 묻었다는 외할머니는 맞벌이하는 큰딸 내외를 위해 외손자까지 기르시느라 평생 허리 펼 날도 없었던 분이셨다.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엔딩 타이틀에 관한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집으로…>라는 영화를 봐야 할 것 같았다. 눈이 어두운 외할머니 옆에서 바늘귀를 꿰어주는 영화 속 상우의 모습이 그 또래 그 옛날 내 모습 그대로였고 안채에서 멀리 떨어진 냄새나는 뒷간 앞에서 상전 기다리듯 꾸부리고 앉아 손자를 기다리던 상우할머니의 모습은 바로 나의 외할머니 모습이었다.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수많은 멋진 영화들을 접어두고 <집으로…>를 이 글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도 외할머니 살아생전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과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러요? 할머니라고 안 부르고요.” 다섯살인 내 아이가 물었을 때. “내가 너냐? 임마”라고 본데없이 대답하고 후회했던 만큼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서툰 일이기에 하나뿐인 아이를 데리고도 쩔쩔매며 친정어머니의 신세를 지는 일이 다반사다. 외할머니가 된 내 어머니는 ”외손자 길러봤자 다 소용없다고들 하더라” 하시면서도 일한답시고 잘난 척하는 딸의 아이를 정성껏 돌봐주시고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아이에게 보약을 지어 먹이시는 일도 자진해서 하신다. 아직도 짐을 덜어주지 못한 딸 주제에 말하기는 뭐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의 외할머니는 나의 외할머니가 사신 세월보다 더 오래 건강하고 유쾌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백휘정/ 출판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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