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교과서적인 속편,<나쁜 녀석들2>
2003-08-05
글 : 정승훈 (영화평론가)
■ Story

네덜란드발 엑스터시를 수사하던 마이애미 경찰 마이크(윌 스미스)와 마커스(마틴 로렌스)는 사건의 배후에서 국제 마약카르텔을 포착한다. 한편 쿠바 마피아를 쫓아 마이애미에 온 마약감시국 요원 시드(가브리엘 유니온)는 마커스의 동생인데, 오빠 몰래 마이크와 사귀는 중이다. 마피아 소굴에서 간신히 증거를 확보할 무렵 마커스는 마이크와 시드의 관계를 알고 분개한다. 그러나 위장근무하던 시드가 쿠바로 납치되자 둘은 다시 뭉치며, 규정위반을 무릅쓰고 대원들과 함께 쿠바로 향한다.

■ Review

끝없이 이어지는 할리우드 속편 행렬에 <나쁜 녀석들2>도 8년 만에 명함을 내밀었다. 흑백 형사 콤비영화를 대표했던 <리쎌 웨폰> 시리즈에서 진일보한 <나쁜 녀석들>은 <리쎌 웨폰>만큼 맛깔난 캐릭터로 흑인만의 경찰 버디무비를 주류 영화사에 등재시킨 바 있다. 이후 ‘나쁜 녀석들’은 ‘잘 나가는 녀석들’이 됐고, 마이클 베이는 ‘이보다 더 잘 나갈 수 없는’ 감독이 됐다. <나쁜 녀석들2>는 바로 그 할리우드식 ‘잘 나감’을 전편보다 길어지고 빨라지고 강해진 액션에서, 무엇보다 훨씬 더 비싸 보이는 ‘뽀다구’에서 고스란히 확인시켜주는 교과서적 속편이다. 단지 파괴되기 위해 등장하는 자동차들과 건물들의 스케일은 얼마나 폼나게 부수는지가 성공의 척도이기도 한 그 동네 영화판의 생리를 또 한번 증명해준다.

다소 지루할 정도인 러닝타임과 쿠바까지 포함한 배경이 암시하듯, 규모의 확대는 더 거대한 적과의 싸움을 더 화려하게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야심을 반영한다.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추격전과 클라이맥스를 알리는 맨션 폭파는 에로비디오 같으면 스킵해서 골라볼 만한 장르의 핵심이다. 특히 나흘이나 교통체증을 유발하며 찍었다는 해변 교각의 체이스신은 뻔뻔하게 민폐끼칠 만했을 정도로 스펙터클하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나 <터미네이터3>에서처럼 크기에서 비교가 안 되는 차량들(자동차 운송 트레일러와 페라리)이 맞붙는 스릴 102%의 이 장면은 <매트릭스2 리로디드>보다 더 살벌한 역주행신과 <터미네이터3>보다 더 직접적인 파괴감을 동반한다. 용감하게 운전자의 시점숏을 유지한 카메라 덕에, 뒤집어지는 자동차는 스크린 한가득 관객을 덮칠 듯 밀어닥치는 것이다. 가상현실이나 사이보그는 아무리 위험한 액션도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 안심을 주는 반면, CG를 배제한 <나쁜 녀석들2>의 ‘리얼 액션’은 그런 미적 무관심성을 제법 위협한단 점에서 이름값을 한다. “이건 현실세계야!”라는 영화 속 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참이다.

1편보다 더 강화된 또 다른 요소는 인용과 자극성이다. 이젠 하나도 안 새로운 ‘불릿 타임’ 슬로모션이 ‘나도 따라할 수 있다’는 듯 남발되며, 제작 시기가 겹친 것 같지만 <성질 죽이기>의 성질 치료법이 그대로 등장한다. 영화들 언급뿐 아니라 “각본대로 하면 넌 죽는다”, “영화 찍는 줄 알아?” 식의 매체반영적 유머도 늘었다. 이런 가벼운 위트 위에 섹스와 슬래셔 이미지들이 자극적인 양념을 뿌려댄다. 포르노의 주특기인 극단적 앙각숏이 ‘엑스터시’로 ‘뿅간’ 나이트를 훑어가고, 호모쇼나 쥐의 교미 같은 성적 코드가 코믹하게 출몰한다. 절단된 손가락부터 뚜껑 열리는 시체까지, 그냥 웃기엔 비위 거슬리는 엽기 코드도 심심찮다. 이런 패러디와 혼종성은 영화의 상호텍스트적 허구성을 업그레이드한다. 결국 이건 가상의 자극적인 게임이란 것이다. 여기에 리얼 액션이 첨부되면, 게임은 가상이면서도 현실에 가까운, 좀더 짜릿하고 실감나는 오락이 된다.

하지만 오락적인 면만 봐도 속편이 전편을 능가했다고 보긴 어렵다. <나쁜 녀석들>의 매력이 액션의 물량공세보다 말 많은 콤비의 죽여주는 ‘성질’에 있었다면, 속편은 그들의 오해와 화해로 엮이는 아옹다옹을 너무 안이하게 처리한다. 마커스는 심할 정도로 보수적이며, 시드는 전편의 백인 여자보다 노출만 심했지 역설적인 상황 창출력은 약하다. 이에 따라 재기 넘치는 시추에이션 코미디 대신 말발에 기댄 개인기만 득세한다. 또, 끄나풀 협박이나 위기 모면용 말다툼이 과시하는 공격적 능청은 신선함의 약발이 떨어지고, 성적 암시를 깐 대사들은 억지로 짜낸 듯하다. 무엇보다 시드를 구하러 쿠바로 가기 직전, 울먹이는 마커스와 달래는 마이크, 동참하는 대원들이 연출하는 어설픈 비장미는 <아마겟돈>의 가족적 애국주의를 갑작스레 표절해댄다. 1편의 탄탄한 시나리오는 그간 베이 영화의 규모 증가와 이데올로기적 타락이 빚어낸 앙상한 작품성의 그늘 뒤로 사라지는 느낌이다.

마지막의 쿠바 침공은 끝내 스펙터클에 사족처럼 정치성을 덧칠한다. 러시아와 연계된 쿠바 마피아가 카스트로의 군대와 연합하는 순간, 영화는 미국에 마약이나 팔아먹는 구공산권 ‘깡패 국가’에 대한 정의의 심판 흉내를 낸다. 그러나 그 정의는 허름한 쿠바 민가를 초토화하는 ‘깡패 미국’의 나쁜 쾌락을 양식으로 삼는다. “우리나라에 왜 왔어?!”라고 역정내는 ‘나쁜 녀석들’은 남의 나라를 ‘람보’처럼 뭉개놓고 그 나라에 주둔한 미군 부대로 도망친다. 시대의 변화라면 흑인이 람보 역으로 등극했다는 점이겠다. 오락영화라는 면죄부만 걷어내면 <나쁜 녀석들2>는 전편의 영화사적 의의를 악용한 ‘나쁜 영화’인 셈이다.

:: 마이클 베이의 작가주의

화려한 액션, 진부한 미션, 천박한 네이션

인물이 가만있을 때도 좌→우, 우→좌로 이어지는 원형 트래킹숏은 카메라 워킹의 리듬감을 만든 핵심 기법이다.

CF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마이클 베이는 데뷔작 <나쁜 녀석들>부터 자신의 커리어를 십분 발휘했다. 거의 2초 이하인 액션숏들은 패닝과 틸팅, 줌과 클로즈업, 특히 대상의 ‘후까시’를 강조하는 비스듬한 앙각숏을 쉴새없이 남발한다. 인물이 가만있을 때도 좌→우, 우→좌로 이어지는 원형 트래킹숏은 카메라 워킹의 리듬감을 만든 핵심 기법이다. <더 록>의 샌프란시스코 체이스신은 리드미컬 액션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음악은 영화 전체의 긴장과 이완을 조율하는데 액션은 테크노, 일상은 힙합에 담은 <나쁜 녀석들2>는 백인 장르에 흑인 주인공이라는 궁합과도 어울린다. 다만 너무 짧은 컷들이 액션의 조망을 어렵게 하고, 그의 스타일이 스스로 클리셰가 돼가는 징후는 한계로 작용할 듯하다. 주황색 황혼과 검은 실루엣은 달력그림처럼 상투적으로 멋있을 뿐이다.

지구에 떨어질 운석을 파괴하는 <아마겟돈>만 빼면, 화려한 액션에 비해 주인공들의 미션은 진부한 편이다. 악당은 마약상(<나쁜 녀석들> 1, 2), 반국가게릴라(<더 록>), 일본(<진주만>) 등이고, 이는 미국이 처한(현재), 처할지 모를(미래), 처했던(과거) 위기에 대응하며, 대체로 제한시간 내에 임무를 마쳐야 한다는 관습적 서스펜스가 작동된다. 문제는 부시 시대를 바라볼 즈음부터 너무 노골적으로 강화된 미국 중심주의인데, <아마겟돈>은 지구를 지키는 미국을 우러러보는 지구촌 구석구석을 장엄하게 일별하며 강압적 보편성에 기반한 억지 감동을 조장한 바 있다. <진주만>은 <타이타닉>의 재난 로맨스를 유치하게 복사한 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자랑스런 미국인을 한껏 천박하게, 시대착오적으로 찬양해댔다. 이에 비하면 <나쁜 녀석들2>는 좋은 영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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