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담배 연기 자욱한 <친구>의 골방을 떠올려보자. 여학생 얼굴 보겠다고 손수건에 향수 뿌리고 나타난 불청객 둘이 있겠고, 그런 머스마들이 신기한지 훑어보는 레인보 무리가 있겠고, 그동안 감감무소식이었던 친구들이 서운해서 애꿎은 고양이에게 분풀이하는 준석이 있겠고, 모든 것이 못마땅해 눈을 치켜 뜨는 동수가 있겠고. 이쯤하면 꽉 찬 것 같은데, 뭔가 좀 허전하다면 게으른 기억을 좀더 채근해보자. 아. 맞다. 연체동물처럼 벽과 바닥에 몸을 붙이고서 침묵을 굴리고 있던 청년, 도루코. “삐리한 눈빛이 맘에 들었다”는 곽경택 감독의 말처럼, 모든 질문을 단답형으로 끝내고서 씩 웃는 김태욱(31)은 실제로도 도루코 과(科)에 가까웠다.
“뭐 하나 제대로 못하고 속으로 안절부절못하는 도루코는 저랑 많이 닮았어요.” 2년이 훌쩍 지나 <똥개>에서 정우성을 못살게 구는 진묵 역을 맡아 첫 리딩을 하는 날, 곽 감독은 그가 읊은 첫 대사를 두고 “너 그렇게 하믄 도루코야”라고 면박을 줬을 만큼 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친구> 상영 이후 한동안 부산 거리를 쏘다닐 때면 사람들이 자신을 붙잡고 “도루코, 맞지요?”라고 물을 정도였으니 그 또한 쉽게 ‘도루코’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가 도루코를 지망한 것은 아니었다. 연출부에 있던 대학 동기의 권유로 참여하게 된 <친구> 오디션이 찾았던 이는 중호 역을 맡을 배우.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아무래도 키가 너무 커서 잘린 것 같다”는 것이 본인의 추측이다. 어쨌든 그때의 인연으로 <똥개>에선 어렵지 않게 진묵 역을 따냈다.
“하루에 닭 1마리, 계란 12개씩 꾸역꾸역 먹었어요. 살 찌우려고. 음. 완숙은 부담스럽고. 사이다랑 같이 먹으면 목 안 막히고 잘 넘어가요. 헤헤.” 무조건 불리라는 곽 감독의 무언의 지시를 알아챈 뒤로 그는 몸 보신에 여념이 없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 등에 출연하긴 했지만, “1년에 조연 1편 출연하는 것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한때 부산에서 통닭집을 차렸던 그는 가게를 봐주시기로 한 부모님으로부터 “그만 먹고 배달가라”는 눈총을 여러 번 받으면서 20kg 가까이 찌웠다고 웃는다. 맨몸으로 정우성과 맞닥뜨려 피투성이가 되는 마지막 장면은 난곡의 무도장에서 한달 가까이 연습한 뒤 촬영에 들어간 것이라 영화 한편은 족히 찍을 만한 에너지를 쏟았다. “우성씨가 통뼈거든요. 기회되면 한번 맞아보세요. 진묵이처럼 묵사발됩니다.” 정해놓은 합(合)없이 투견처럼 실제로 싸웠던 그는 이 장면을 찍고 나서 앰뷸런스에 실리는 처지가 됐다. “펀치 드렁크 아시죠? 나침반 바늘처럼 뇌가 떠다니는 것 같더라니까요. 근데 웃기는 건 다들 무슨 일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앰뷸런스에 태워 촬영장을 빠져나가더니 정작 도로에서는 있는 신호, 없는 신호 다 지키더라니까요. 원.”
어릴 적 꿈이 가수였던 그는 “대학가요제나 한번 나가보자”는 마음에 군 제대 뒤, 경성대 연극영화과 96학번으로 입학했지만, 늦깎이 신입생은 한 학기 만에 휴학하고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코러스 요원으로 지방을 순회하며 윤복희 선생님의 가방 모찌 생활을 하던 그가 영화에 발을 들인 것은 99년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부터. 배우 중 한명이었던 개그맨 이영재와의 교분으로 공연장을 자주 찾던 조재현, 김갑수 등을 알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포로 역할로 데뷔했다. “2달 동안 제주도에서 머물렀는데 한컷도 못 찍었어요. 나중에 양수리 촬영소에 와서 두컷 찍은 게 다예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했고, 필모그래피가 화려한 것도 아니지만, 김태욱은 조바심을 내지 않으려 한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것도 행복이에요. 그리고 이만큼 온 것도 다 부모님 은덕이고.” 사진 찍는 게 부담스럽다며 바지춤을 쥐어올리는 순박한 사내, 김태욱의 나직한 대답은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