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과잉의 원리,<신밧드:7대양의 전설> OST
2003-08-11
글 :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아랍권 해양모험담의 최고봉인 신밧드와 그리스 신화, 그리고 시실리섬 근처에 실제로 존재했던 고대 그리스 식민지 ‘시라쿠사’(시라큐스)를 혼합한 변종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서 트로이의 전쟁을 야기시킨 ‘황금 사과’를 던진 이는 누구인가. 바로 ‘불화의 여신’ 에리스다. 에리스는 불화의 여신이지만 세상의 사건들을, 전설적인 모험을 야기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녀의 질투와 소유욕이 ‘평화의 책’을 좇는 성배 이야기를 추동하고, 거기에 모험과 우정과 사랑이 깃든다. 게다가 바캉스를 꿈꾸는 미국 중산층의 희망을 요약한 ‘피지’까지.

이처럼 ‘신화와 전설의 혼성모방’을 이룬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의 음악을 맡은 이는 해리 그렉슨-윌리엄스. 그는 이미 <슈렉>에서도 드림웍스의 파트너가 된 바 있다. 한스 짐머의 팀에서도 활약한 바 있는 그는 특별한 ‘튀는 개성’을 가진 작곡가라기보다는 할리우드의 컨벤션을 잘 소화해내고 어느 장르의 영화에서도 보편적으로 다가갈 만한 음악을 만들 줄 아는 정통 테크니션이라 할 수 있다. <치킨 런> 같은 아이들용 영화음악에서 <폰 부스> 같은 스릴러 타입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가 펼치는 영화음악의 세계는 넓다.

<슈렉>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과 선곡을 많이 조화시키는 키치적인 발상법을 두드러지게 사용한 것과 달리 <신밧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만의 힘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음악은 감정의 고조뿐 아니라 장소의 분위기, 모험의 긴장감 등 모든 분야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장면전환, 거의 숨가쁠 정도의 스피드를 음악이 잘도 따라간다. 그렇다. 이건 한 동작도 쉬지 않을 정도다. 남김없이 그 모든 속도감을 따라가며 음악은, 효과음이 칼 휘두르는 소리에 일치되듯, 모든 장면의 모든 분위기 속에서 일치점을 찾아나가고 있다.

오케스트라도 대단한 규모다. 80명에 이르는 단원이 연주한 풀 오케스트레이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동원하여 웅장하거나 으스스한, 때로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코러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간간이 등장하는 현대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 등 더이상 가져다 쓸 사운드가 없어 보일 지경이다. O.S.T를 따로 들어보면, 애플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사운드는 더 세련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웅장하며 깔끔한 자태를 자랑한다.

정말 한치의 모자람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자연히, 흘러 넘친다. 애니메이션의 모험 이야기가 다 그렇긴 하지만 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모든 것은 특히 과잉을 자랑한다. 더이상 빠를 수 없어 보이고 더이상 아름다울 수 없어 보이고 더이상 환상적일 수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이 이렇게 넘치고 흐르는데 음악이라고 안 그럴쏘냐. 음악가는 돈 받은 것이 있어서 그렇게 안 해줄 수도 없다. 돈값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장면에서 여백을 좀 두고 조용하게 넘어가려고 했다면 그것이 결과적으로 더 긴박감을 발휘할 수 있을지언정 투자한 사람들이 ‘저 음악가, 좀 불성실한 사람 아냐?’ 하는 핀잔을 면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렇게 하면 들이는 시간도 더 짧을지 모른다. 그러나 클라이언트는 그런 걸 용납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돈값을 진짜로 했다는 티를 무조건 겉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음악가는, 속으로는 욕하면서도 겉으로는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해준다. 그래서 할리우드적인 블록버스터에서는 여백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과잉의 원리’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지배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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