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뉴욕] 9·11을 원망할까?
2003-08-11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탈선 미군을 다룬 영화 <버팔로 솔저스>, 도발적 내용에도 큰 반향 못 일으켜

탈선 미군들의 이야기를 다룬 블랙코미디 <버팔로 솔저스>가 수차례 연기 끝에 지난 7월25일 뉴욕과 LA에서 한정 개봉됐으나, 배급사인 미라맥스의 소극적인 홍보로 큰 반응을 얻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미군을 기회주의자와 냉소주의자, 마약 중독자와 사기꾼으로 풍자한 영화 <버팔로 솔저스>는 주연 와킨 피닉스를 비롯하여 에드 해리스, 스콧 글렌, 안나 파킨 등 연기파 배우들이 동원됐다. 이 영화는 지난 2001년 토론토영화제에서 열띤 경쟁 끝에 미라맥스에 판매됐으나 9·11 테러로 지난 2년간 영화사 창고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영화제에서 신세대 영화팬들이 선호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됐던 이 영화가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돼버린 것.

그러나 이라크 전쟁 뒤에도 계속되는 이라크인들의 공격으로 미군들이 죽어가고, 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도가 낮아지자, 최근 미라맥스는 조용히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버팔로 솔저스>를 뉴욕과 LA의 6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최소한의 미디어 홍보로 시작한 미라맥스는 관객의 호응에 따라 <버팔로 솔저스>의 개봉관을 점차 넓힐 예정이었으나, 8월3일 현재까지 흥행수입이 6만9384달러에 그치자 개봉관을 5개로 줄인 상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89년 서독에 주둔한 미군부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군들을 마약에 찌들거나 각종 범죄로 돈버는 데 혈안이 됐으며, 자신들이 어느 나라에 주둔하는지, 서독과 동독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관심조차 없거나 알지 못하는 무지하고 무능력한 젊은이들로 묘사했다.

군수과 행정담당 사병으로 있는 주인공 레이 엘우드(와퀸 피닉스)는 경범죄로 재판 받은 뒤 징역 대신 3년간의 군복무를 선택한 케이스. 그는 우둔한 대대장 버맨(에드 해리스)을 교묘하게 속이면서 군수품을 빼돌려 인근지역 갱단에게 팔고, 헤로인을 부대 내에서 직접 만들어 흑인 헌병들과 함께 군인들에게 마약을 배급한다. 그러나 마약을 복용한 사병이 사고로 죽은 뒤, 부검에서 약물 복용 흔적이 나오자 사태 수습을 위해 상사 리(스콧 글렌)가 파견된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벤츠를 몰고다니는 엘우드에게 수사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당연한 일. 리가 자신을 괴롭히자, 복수를 계획한 엘우드는 리의 딸 로빈(안나 파킨)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는 엘우드를 더욱 괴롭히기 시작하고,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이 영화를 보면 적군을 죽이도록 훈련받은 군인들이 평화시에는 과연 어떻게 적응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극중 엘우드는 자신들의 ‘탈선’을 “우리에게 평화는 따분하기 때문에”라고 정당화한다. 일부 평론가와 미군 관계자, 보수단체들은 <버팔로 솔저스>가 미군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동명 원작소설을 쓴 로버트 오커너는 영화 중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설을 위해 상당 기간 리서치를 한 오커너는 실제 부대 내에서 마약거래가 이뤄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으며, 해외 주둔 부대 내에서 대량의 군수품이 사라지고 마약에 취한 군인들이 사고를 치는 것은 황당하지만 실제 상황이라는 것.

한편 호주 출신의 그레고어 조던 감독은 소설 속의 풍자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약간의 과장이나 축소를 하기도 하고, 때론 초현실적인 이미지로도 이끌어 갔다. 마약에 취한 군인들이 탱크를 타고 사격연습을 하던 중 길을 잃어 배회하다가 폴크스바겐 비틀을 탱크로 뭉개는 장면에서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탱크가 오기 직전 피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실제로는 차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버팔로 솔저스>는 9·11 테러 전에 개봉이 되었다면, 냉소와 풍자로 반향을 일으켰을 영화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이 없는 현 이라크에서 미군이 보여주고 있는 실망스러운 모습들 속에서, 현재 <버팔로 솔저스>는 더욱 현실적이고 적절한 작품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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