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픽처스 대표 최재원
2003-08-13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똔똔의 영화비즈니스, 이제 알겠다.

<장화, 홍련>이 그렇게 잘 될지 정말 몰랐다. 흥행이 잘된 영화든 못 된 영화든 왜 그렇게 됐는지 얘기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흥행을 장담할 순 없다. 예전에 강우석 감독이 영화판에 들어와서 똔똔만 하면 성공하는 거라고 말했는데 이해가 간다. 손해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손해를 안 보는 것만 해도 굉장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픽처스 대표 최재원(37)씨는 지난해와 올해 지옥과 천국을 오간 인물이다. 지난해 아이픽처스의 메인 투자작 <마리이야기> <정글쥬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드무비> 등 4편 가운데 손해를 보지 않은 영화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한편뿐이었다. <마리이야기> 20억원, <정글쥬스> 3억원, <로드무비> 9억원 등 3편이 32억원의 손해를 끼친 반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10억원의 수익을 냈다. 불운은 올해 초로 이어져서 <마들렌> 역시 15억원의 손해를 냈다. 회사의 존망이 불안한 상황에서 <장화, 홍련>이 개봉했고 전국관객 315만명을 기록했다. <장화, 홍련>으로 아이픽처스로 들어올 돈은 최소한 30억원이 넘는다. 일거에 손실분을 만회하는 기사회생, 요즘 그의 표정이 밝아질 수밖에 없다.

한때 차승재 펀드로 불렸던 무한창투의 영상투자펀드를 만들었던 최재원씨는 튜브엔터테인먼트의 김승범 대표와 마찬가지로 펀드매니저 출신 투자자다. 금융자본이 대거 영화계로 몰려들던 시절,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씨를 내세워 의욕적으로 영화투자를 했던 인물. 하지만 다른 금융자본과 마찬가지로 무한창투도 지난해부터 영화계에서 발을 뺐고 최재원씨만 영화계에 남았다. 무한창투의 자회사로 출범한 아이픽처스는 지난해 9월부터 그가 운영하는 독립된 회사가 됐다. 대규모 펀드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자와 제작사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장화, 홍련>의 성공으로 첫발은 제대로 디뎠고 많은 영화인들이 그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요즘처럼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전문적인 영화투자사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조건 반가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흥행성적이 나빠서 회사의 존립이 위태롭다는 말도 돌았는데 올해 <장화, 홍련>이 흥행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 것 같다.

사실 올 초에 많이 힘들었다. 무한창투의 그늘에 있다가 지난해 무한창투로부터 독립해서 처음 개봉한 영화가 <마들렌>이었는데 15억원 정도 손해를 봤다. 하지만 손해를 본 만큼 배운 것도 많다. <마들렌>을 하면서 박광춘 감독과 많이 친해졌는데 박광춘 감독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미안하다”는 취지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돈을 못 벌어줘서 그런 건데 감독이 그런 말을 할 이유도 없지만 어쨌든 메시지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더라. 다음에 한국에 오면 다시 잘해보자는 얘기도 남겼는데 영화 일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작품이 실패하더라도 사람은 남는다. 이런 맛 때문에 영화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장화, 홍련>만 해도 그렇다.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가 <고양이를 부탁해>로 손해본 뒤 다음 영화 <장화, 홍련>으로 돈 벌어줄게, 그랬는데 그가 말한 대로 됐다. 영화 일 하면서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를 만난 것도 그렇고, 내가 인복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픽처스는 무한창투에서 영화투자를 하면서 만든 회사인데 그동안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언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명해달라.

무한창투에서 온라인투자 관련업무를 하다가 98년부터 영화투자에 관심을 가졌다. 99년 초에 문성근 선배의 소개로 유니코리아를 만났고 함께 투자조합을 만드는 걸 검토했으나 일이 잘 진행되진 않았다. 그러다 그해 6월경 차승재 대표와 만나서 CJ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일하는 걸 진행했는데 역시 막판에 일이 꼬였다. CJ랑 틀어지고 나자 차승재 대표가 12월 중순에 강우석 감독을 만나서 투자조합 만드는데 도와달라고 했고 강우석 감독이 흔쾌히 받아들여서 115억원 규모의 펀드가 만들어졌다. 첫 투자작이 <플란다스의 개>였는데 손해를 많이 봤고 그뒤로도 돈을 많이 번 영화는 별로 없었다. 아이픽처스는 무한창투의 펀드를 운영하기 위한 회사로 2000년 2월 창립했다. 차승재 대표가 펀드의 공동대표를 맡아서 초기엔 차승재 대표가 작품 선정의 책임을 지는 형태였는데 흥행성적이 나빠지면서 결국 차승재 대표는 펀드에서 손을 떼게 됐다. 무한창투로부터 독립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무한창투에서 독립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투자사인데 투자할 돈이 없는 상태에서 독립한 것 아닌가.

처음 결성했던 115억원 펀드를 비롯해 운영하던 자금이 있었는데 갖고 나올 수는 없었다. 무한창투에 기존 펀드의 운영권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월급쟁이 생활만 하던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동안 쌓은 노하우가 있으므로 독립해서 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고 배수진을 치고 투자를 한 게 <마들렌>과 <장화, 홍련>이었다. 그게 지금은 새로운 단초가 되고 있다.

무한창투의 펀드는 처음엔 차승재 펀드로 불렸다. 차승재 대표와 갈라선 것은 무한창투의 뜻이었나.

차승재 대표는 나의 사부다. 작품을 보는 시각, 사람을 보는 변별력, 영화를 하는 태도, 모두 다 차승재 대표한테 배웠다. 지금 함께 일하는 제작사나 배급사도 차승재 대표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고 지금도 사외이사다. 차승재 대표가 작품을 선택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것은 아이픽처스가 위축되면서다. 결정적인 이견이 발생했던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였는데 아이픽처스는 <지구를 지켜라!>에 투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이픽처스가 무한창투에서 독립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제됐다고 보면 된다.

지금은 펀드도 없는 상태인데 아이픽처스가 영화에 투자하는 돈은 어떻게 조달되는 것인가.

김동주 대표가 코리아픽처스에서 독립해서 쇼이스트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작품과 자금을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고 보면 된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여러 작품에 분산 투자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데 아이픽처스가 그걸 대행하는 셈이다. 개발비를 지원하는 정도까지 우리가 하고 나머지는 여러 투자자로부터 끌어오는 식이다. 사실 우리끼린 ‘앵벌이’라는 표현도 쓴다. 작품 들고 돈을 구하러 다니는 거니까.

배급은 청어람이 맡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청어람과 관계를 맺은 것은 어떤 계기에서였나.

2001년에 <고양이를 부탁해>와 <와니와 준하>를 배급하면서 좋은 날짜를 못 잡아서 고생했다. 그때까지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을 했는데 시네마서비스가 투자한 영화가 많으니까 아이픽처스 투자작은 치이는 것이었다. 강우석 감독을 찾아가서 대안이 있어야겠다는 얘기를 했고 강우석 감독이 그렇다면 다른 배급사를 하나 만들자고 제안했다. 아이픽처스와 싸이더스 영화를 전담해서 배급하는 회사를. 그렇게 해서 당시 시네마서비스 배급팀에 있던 최용배 이사가 대표인 배급사 청어람을 만들었다. 청어람 지분구조를 보면 플레너스가 50%, 무한창투가 40%, 청어람 임직원이 10%다. 무한창투 지분을 아이픽처스가 되사는 형식으로 올 여름이 지나면 지분구조에 변화가 있긴 할 것 같다.

아이픽처스가 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는 대체로 아직 작은 영화사들인데 제작사와 파트너십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마술피리, 청년필름, 이스트필름, 원필름, 프리시네마, 씨즈엔터테인먼트 등과 일을 했는데 대부분은 차승재 대표를 통해 알게 된 회사들이다. 차승재 대표는 능력있는 프로듀서들과 일하는 것을 제일 중요시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이들 영화사 대표들을 신뢰하고 함께 작업하려고 한다.

지난해부터 금융자본이 영화계에서 철수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최근 상황은 어떤가.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등이 흥행하면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질 법도 한데.

큰 변화는 없다. 기본적으로 영화투자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예전엔 무조건 번다는 생각이었는데 신중해졌다. 일하기 쉬운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코스닥 시장이 안 좋아서 돈이 갈 데가 없어진 측면도 있다. 단기간에 투자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쌓은 노하우가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아직 괜찮은 투자처이기도 하다. 신중한 움직임이지만 그렇다고 영화투자가 지금보다 더 위축되지도 않을 것 같다.

영화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매형이 <코르셋>의 정병각 감독인데 매형 덕분에 영화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교 다닐 때 방송작가 일을 해본 것도 도움이 됐고. 금융공학대학원을 나와서 처음 취직한 곳은 증권회사였고 97년부터 무한창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펀드매니저를 하면서 돈도 많이 벌어봤지만 큰 보람은 없었다. 몇배로 벌더라도 단순한 머니 게임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하지만 영화를 하면서는 다르다. 처음 투자한 작품 <플란다스의 개>를 개봉시키면서 흥행은 잘 안 됐지만 몇만명, 몇천명이라도 영화를 보고 울고 웃는 모습을 보는 게 보람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교신자인데 이것도 하나의 ‘보시’가 아닌가 싶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내가 영화인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내가 할 몫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영화를 산업화하는 데 있어서는 할 만한 일이 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내가 관련됐던 영화 가운데는 <플란다스의 개>와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아주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났을 때 뭔가 짠한 느낌이 남는 영화들이 좋다. 지금 영화투자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를 많이 봤던 때는 오히려 그 전인 것 같다. 93년에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간호사라서 혼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 무렵에 한 3년간 1년에 100편 정도씩 비디오를 봤다.

이제 흥행도 해봤는데 흥행에 대한 감이 오나.

<장화, 홍련>이 이렇게 잘될지 정말 몰랐다. 불안해하면서 개봉을 했는데 너무 잘돼서 나도 놀랐다. 흥행이 잘된 영화든 못 된 영화든 왜 그렇게 됐는지 구구절절 얘기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흥행을 장담할 순 없다. 예전에 강우석 감독이 영화판에 들어와서 똔똔만 하면 성공하는 거라고 말했는데 이해가 간다. 손해보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손해를 안 보는 것만 해도 굉장한 거라고 생각한다. 흥행이라는게 관객의 무의식을 따라가는 건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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