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 독하게 욕망을 구(求)하다
2003-08-13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바람난 가족>은 배우 문소리에게 독립의 영화다. 충무로 한복판의 극장 벽면에, 지하철 대합실과 버스 옆면에, ‘덤빌 테면 덤벼봐’ 하는 표정으로 알몸에 가랑이를 쩍 벌린 채 앉아 있는 문소리를 보면서 세상은 파격적 ‘변신’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우리는 그녀의 ‘독립’에 주목해야 한다.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박하사탕을 내밀던 들꽃 같던 순임씨. 문소리가 처음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건 아련한 첫사랑의 초상으로 출연했던 <박하사탕>을 통해서였다. 면회를 거부당하고 모랫바람 속에 긴 치마를 휘날리며 사라지던 그 뒷모습, 세상의 똥물에 손 담근 애인 앞에서 끔뻑끔뻑 눈물을 퍼올리던 그 막막한 표정, 꼼짝달싹 못하고 병실에 누워 카메라를 전하던 그 안타까운 손. 달려가지도, 터트리지도, 뻗지도 못했던 문소리의 모든 것은 <오아시스>로 이어지며 더욱 갑갑하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오아시스>를 본 해외 관객이 <바람난 가족>의 예고편을 보고 저 장애인 배우가 그 사이 저렇게 상태가 좋아졌느냐”며 놀랐다던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을 만큼 <오아시스>의 문소리는 웅크린 손과 찌그러트린 얼굴 속에 고통과 욕망을 꽁꽁 가두어놓았다. 그랬던 그가 <바람난 가족>에서 나신으로 춤추고, 사랑을 유혹하며, 주먹을 휘두른다. 욕망을 소곤대고, 자위를 하고, 분노를 터트린다. 그렇게 문소리는 ‘순해도 너무 순하게 생겼다’던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순할 수도 독할 수도 있는 유연한 표정과 움츠릴 수도 뻗을 수도 있는 자유로운 팔과 다리를 얻었다.

<바람난 가족>이 세 번째 영화인 문소리 필모그래피의 2/3는 이창동 감독과 함께였다. 설경구를 이야기함에 있어 이창동 감독을 떼어놓을 수 없듯이, 문소리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이창동 감독은 늘 함께 가는 수식어였다. 하여 ‘은근고민’형인 이창동 감독에게서 트레이닝된 이 신인배우에게 ‘명쾌속결’형 임상수 감독의 스타일은 처음부터 쉽게 적응할 것이 아니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처음엔 탐색기를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러나 서서히 이 감독의 스타일을 파악하게 된 거죠.” 일단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인 뒤에 타협점을 찾아가는 방식을 택했던 문소리의 선택은 임상수와의 불안해 보였던 동거를 결국 잘 어우러진 하모니로 마무리짓게 했다. ‘그동안 보여줬던 연기가 사실 연기였나, 동물적인 반응이었다’, ‘이창동 없이 문소리는 한낱 미숙한 신인배우일 뿐이다’라는 주위의 우려는 <바람난 가족>의 당돌하고 자신감 넘치는 연기와 함께 쑥 들어가버렸다.

문소리의 부모님은, <박하사탕> 오디션을 보고 영화에 출연하겠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없어도 정직하게 살아온 집안이니 이상한 신문에만 나지 말라”며 술 한잔에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바람난 가족> 때는 달랐다. 그러나 이 독한 딸은 “호적에서 파겠다”고 노발대발하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후루룩 짐을 싸, 눈물을 머금고 대문을 넘었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신인여배우상을 받고 돌아온 문소리는 관객에게 “수상 사실을 잊어달라, 상은 뒤로 묻어두고 더 겸손하게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상의 기쁨은 잊을 만하면 또 찾아왔다. 이후 각종 연기상을 받느라 바빴던 그에게 ‘겨우 2번째 영화로 받은 상들로부터 벗어나라’는 주문은 좀 무리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이 혼란스러운 때였어요. 내가 해놓은 게 뭐가 있다고 벌써부터 이렇게 상만 받나….” 공허한 명예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자고 몇번을 다짐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바람난 가족>의 출연을 놓고 고민하는 나를 보면서 순간, 정신차리자, 고 생각했죠.” 그렇게 수많은 트로피들을 침대 아래로 밀어넣은 문소리는, ‘남이 하려다가 그만둔 역할’이라는 오명을 가진 호정이란 여자에게 순수하게 접근해나갔다. 그리고 한바탕의 소란이 끝난 그곳에, 베니스행 두 번째 티켓이 개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난 가족>의 촬영을 앞두고, 문소리는 서른해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품을 떠나 홀로 조그만 원룸에 둥지를 틀었다. 교육학과를 졸업해서 교사가 될 줄로만 알았던 당신의 딸이 서울예대에 들어가 배우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도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시던 문소리의 부모님은, <박하사탕> 오디션을 보고 영화에 출연하겠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없어도 정직하게 살아온 집안이니 이상한 신문에만 나지 말라”며 술 한잔에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바람난 가족> 때는 달랐다. 그러나 이 독한 딸은 “호적에서 파겠다”고 노발대발하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후루룩 짐을 싸, 눈물을 머금고 대문을 넘었다. “아무래도 노출이 많으니까 걱정이 많이 되셨겠죠. 저 역시 다른 사람들은 아무 걱정 안 되는데, 부모님은 늘 신경쓰였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고민에 싸여 있으면 뭐해요. 이미 결정한 영화인데. 결국 계속 얼굴 보고 있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나오게 되었죠.” 촬영장에서 혼자 살게 된 이야기를 씩씩하게 말하던 그였지만, 그의 얼굴엔 생전처음 홀로 떨어진 생활에 대한 외로움의 기운이 역력했다. 그러나 영화가 완성되고, 결과에 만족하고, 여기저기 좋은 평가와 좋은 소식들이 이어진 지금, 문소리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다. “요즘엔 부모님이 ‘소리야, 너는 어쩌면 그 세계를 몰라도 그렇게 모르냐’고 나무라신다니까요. 배우가 인기니, 관리니 이런 것에 너무 무덤덤하다고 야단치세요.”

인간에게 독립은 늘 강한 유혹이자 두려움이다. 모두들 갑갑한 과거의 공간을 떠나는 꿈을 꾸지만, 막상 허허벌판에 홀로 서면 편안했던 옛날이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모두 고개를 내젓는다. 독립은 그런 것이다. 두렵고 막막하지만 그를 통과했기에 미래가 있는 것이다. 순박한 첫사랑의 초상으로부터, 큰오빠 같던 이창동 감독으로부터, 쏟아지던 트로피로부터, 따뜻한 부모님의 품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배우 문소리. 이제 비로소 그는 주체적인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다. 바람난 아줌마 만세, 문소리, 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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