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밍 풀>의 그녀는 반쯤 미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 모습이 프랑수아 오종이 상상하던 캐릭터였을 것이다. <사랑의 추억>에서 그녀의 진면목을 알아본 프랑수아 오종은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이 영화의 신경질쟁이 ‘사라 모튼’으로 샬롯 램플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망연자실하게 창에 서서 어린 소녀의 육체를 따갑게 훑어보는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식칼 하나쯤 집어들 만큼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노트북에 코를 파묻고 창작의 마성에 넋을 잃고 있을 때면 감히 말을 붙이기도 어려울 듯한 지적 매력을 풍긴다. 아마도 메릴 스트립이나 카트린 드뇌브 정도만이 그녀의 주술에 적대할 만한 여신들이 아닐까. 그래서, 스크린이라는 올림포스의 신전에서 그녀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가장 ‘신경질적인 여신’이다. 빼빼마른 몸, 주름살마저 날카로운 얼굴, 안경을 쓰나 안 쓰나 바깥으로 쏘아 내비치는 날카로운 시선. 하지만, 사실 육체의 윤곽을 갖고 그녀를 평한다는 건 어림없는 묘사의 낭비일 뿐이다. 아름다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게 마련이고, 샬롯 램플링이 소유한 아름다움은 그중에서도 남들은 갖지 못한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적대감의 미감이다. 영국 록밴드 킨키 머신이 “샬롯 램플링”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에게 러브송을 바친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1946년에 태어났으니 여신의 연세도 어느덧 58살이 되었다. 그러나 누가 그녀를 그 나이로 보겠는가? 그런 젊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혹시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400m 계주 우승자로 영국의 깃발을 날린 아버지의 그 건강미를 이어받았던 건 아닐까? 어쨌거나 1965년 리처드 레스터의 영화로 데뷔한 이후 샬롯 램플링의 연기생활은 40년 가까이 지난 셈이다. 그동안 그녀는 영화사상 가장 매혹적인 화가 루치노 비스콘티의 <망령들>(1969)에 출연했고, 릴리아나 카바니의 두렵고, 음울한 영화 <비엔나의 야간 우편 배달부>(1974)에서 수용소의 생존자 역할도 했다. <안녕 내사랑>에서 할리우드 최고의 악한 로버트 미첨의 패악함에 맞설 수 있는 팜므파탈이 바로 그녀였고, 우디 앨런이 <스타더스트 메모리>(1980)에서 그 혼란스러운 정신상태를 믿고 요구한 것도 그녀였다. 일본의 정치 악동 오시마 나기사가 <막스, 내사랑>(1986)에서 침팬지와 사랑에 빠지는 연인으로 그녀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엔젤하트>(1987)에서 미치광이 미키 루크를 상대하는 주술전문가 역시 그녀의 몫이었다. 하나같이 순진하고 맹한 소녀들의 나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매력은 삐딱하기로 소문난 영화쟁이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그들에 의해 여신으로 추앙받았다.
점점 더 나이를 먹어 이제는 곧 할머니 소리를 듣게 될 처지인데도 샬롯 램플링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사들은 “도착적인”, “피골이 상접한 사도마조히즘의”, “불온한” 등등 극단의 표현들이다.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줄줄이 그녀의 차기작들은 공포와 호러영화, 그리고 어딘가 이상할 것 같은 드라마로 즐비하다. “할리우드의 베벌리힐스 생활이 싫어 그곳을 떠났고, 림보를 하는 기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영화의 삐딱이들은 여전히 구애를 해올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때때로 한 문장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여신들이 영화 속에는 존재해왔는데, 그레타 가르보의 얼굴이 그랬고, 마를렌 디트리히의 다리가 그랬다. 그녀들이 없는 세상에서 신경질 가득한 미소를 던지며 무언가 또 꿍꿍이를 꾸미고 있을 샬롯 램플링의 마수에 또 한번 어김없이 걸려드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