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다,<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
2003-09-12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네살배기 릴리-로즈 멜로디 뎁은 얼마 전부터 “우리 아빠는 해적이에요”라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아직 배우가 뭔지 몰라서, 보이는 대로 믿기 때문이다. 이 천진한 아이를 위해 조니 뎁은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에 출연했다고 말했다. 디즈니랜드 놀이기구에서 모티브를 따온, 세상에서 조니 뎁과 가장 안 어울리는 영화지만, 릴리-로즈는 <베니와 준> 같은 영화를 아직 이해할 수 없는 탓이다. “릴리-로즈가 태어나기 전 내 삶은 허상”이었고 “삼십년 넘게 이상하고도 어두운 안개 속에서 헤매다가 릴리-로즈를 얻고서야 비로소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는 조니 뎁. 그러나 조니 뎁은 아빠가 되고나서도 자신을 특별한 배우로 만들어주었던, 지상의 어떤 영토에도 속하지 않는 그림자를 잃지 않았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는 “일단 조니 뎁을 고용했다면, 캐릭터를 창조하는 일은 그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브룩하이머의 영악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조니 뎁은 십년이 넘도록 홀로 바다를 떠도는 캡틴 잭 스패로우에게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것 같은 걸음걸이와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아득한 시선을 부여했다. <LA타임스>가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의 가장 큰 흥행요인은 조니 뎁이라고 지목하면서 “컴퓨터가 만든 특수효과를 압도하는, 신비한 개성의 승리”라고 분석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조니 뎁은 해변에서 멀어지는 썰물을 탄 것처럼 할리우드로부터 거리를 넓히고만 있다. 한때 그는 <초콜렛>의 집시처럼 세상에 발붙이지 못하고 살았다. <슬리피 할로우>의 예민한 수사관이나 <가위손>의 거짓말처럼 순수한 인조인간은 그 자신의 부정과 상관없이 조니 뎁의 일부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가수 바네사 파라디를 만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서야 조니 뎁은 처음으로 집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그 집이 프랑스 남부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다. 누가 성공했고 실패했는지, 누구를 만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나는 하나도 모른다. 그건 정말 멋진 일이다.” <점프 스트리트 21>로 아이돌 스타가 되었던 조니 뎁은 <가위손>의 팀 버튼을 만나면서 “할리우드의 고깃덩어리가 될 위기에서 구원”받았고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다. 조니 뎁은 돈도 명예도 신경쓰지 않는다. “언제나 내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느껴온” 조니 뎁은 “공장 조립 라인에 배치된 것 같고 끔찍한 감옥에 유폐된 것 같았던” 시절을 되풀이할 생각이 없다.

사람들은 가족을 얻으면 이기적이 된다. 조니 뎁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기적이 되었다. 그에게 미국은 <CNN> 뉴스만 틀면 고등학교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새어나오는 지옥이고, 꿈의 나라라는 그곳에 아이들을 보낼 수가 없다. 그는 “파파라치들이 나나 바네사 사진을 찍는 건 상관없다. 우리는 어른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을 찍고 싶다면 멀리서 장거리 렌즈로 촬영해야 할 거다. 가까이 오면 내가 코를 물어뜯어 먹어버릴 테니까”라고 말하는 무서운 아버지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아버지가 된다. <피터팬>에서 작가 제임스 배리를 연기한 것이다. <피터팬>이 그릴 제임스 배리는 어린 시절 형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아버지 없는 네 소년과 부정(父情) 비슷한 우정을 쌓으면서 어른이 되는 인물. “너무도 어둡고 절망적인” 배리에게 매혹된 조니 뎁은 또다시 어느 먼곳에서 찾아온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매혹할 것이다.·

사진제공 SY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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