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지는 토요일 오후. 제작사인 KM컬쳐 사무실에서 스탭들과 농을 주고 받던 김용화(32) 감독은 데뷔작 개봉을 앞두고서 불안에 떠는 신인감독이 아니었다. <오! 브라더스>가 각종 시사회를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상황이 여유를 갖게끔 한 것일까. “에이. 그래도 좋다고 내색할 수 있나요.” 인터뷰에 들어가자 갑자기 진지 모드로 돌변한 그가 웃음기 띤 얼굴로 응대한다.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동생과 빚독촉에 시달리는 파파라치 형이 만나 우여곡절 끝에 ‘믿음’을 회복한다는 내용의 <오! 브라더스>는 ‘영리한’ 상업영화라는 세간의 평가를 업고서 추석 대전에 나설 준비를 마친 상태.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졸업작인 단편 <자반고등어>를 통해 해외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김 감독은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 작심이라도 한 듯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에 엄정한 평가 기준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보고나면 가슴 찡한 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코믹한 분위기로 가다가 슬픈 결말로 도식적으로 흘러가는 것말고. 그랬다면 마지막에 우리 영화도 상우랑 봉구랑 껴안고 울어야지. 물론 촬영 때 찍긴 했다. <파이란>의 강재처럼 이정재씨가 눈물, 콧물 다 흘리고 그런 장면도 있긴 했는데 그러고보니까 좀 당황스럽더라. 이거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슬픔과 기쁨은 다른 감정이라기보다 하나의 감정이라고 본다. 그런 전제 아래서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했다. 다들 그러잖나. 코미디의 정수는 페이소스라고. 그러려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놈이 등장해야 하는 거고, 그런 놈이 굉장히 큰 아이러니한 병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거고, 정작 등장인물은 웃고 있고 관객도 저러면 안 되는데, 저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따라 웃는 상황들이 이어지길 바랐다.
한국판 <레인맨>이라고도 알려졌는데. 참고는 했다. 그 밖에도 <잭> <빅> <내 사랑 컬리수>도 정서적으로 참조했다. <아홉살 인생>이라는 책도 자료로 삼았고. 인물들은 직접 경험한 이들을 극화시킨 경우다. 정 반장은 내가 잘 아는 형사를 좀 부풀렸고, 상우는 나랑 비슷하고 봉구는 내 어렸을 적이랑 비슷하고. 이걸 어떻게 컴바인을 잘해야 하나, 그걸 끊임없이 고민했다.
주변 캐릭터까지도 취재를 바탕으로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있다면. 사설 흥신소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사무실은 1평도 채 안 되는 곳이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벽에 걸려 있는 엉성한 액자였다. 자신에 관한 조그만 기사가 실렸던 모양인데 그걸 달아놨더라. 자리에 앉았는데 커피도 내오고 영화에 도움을 주겠다면서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데 너무 웃겨서 정신없이 웃었더니 이 사람이 갑자기 건방을 떨기 시작한 거다. ‘헛 가오’도 좀 있는 사람인데, 겁을 주려고 했는지 내가 별의별 놈을 다 잡았어라고 갑자기 반말을 하면서 포크레인 이야길 꺼내는 거다. 시체를 묻을 때 3m는 땅을 파야 파리가 안 꼬인다는 영화 속 대사는 실제 그분이 했던 말이다. 극중 박영규씨가 연기했던 캐릭터뿐만 아니라 자기애가 강한 그분의 성향이 전체 영화의 캐릭터에 녹아들어갔을 거다. 코언 형제의 영화에 보면 자주 나오는 캐릭터들인데, 예를 들면 나름대로는 주도면밀하고 꼼꼼한데 어벙하게 취급받는 이들을 보면 애정이 간다.
시나리오와 비교하면 코믹한 부분이 좀 늘어났다. 원래 시나리오는 휴먼드라마 분량이 좀 많다. 코믹은 터치 정도였는데 영화는 코미디가 좀 세졌다. 반대로 드라마는 약해졌을 수 있다. 톤 조절에서도 좀더 자연스러운 결말, 자연스러운 감동을 주고 싶었는데 편집과정에서 드라마가 거세되고 디테일들이 빠지다보니 정서보다는 사건만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
컨셉영화인데도 불구하고 A편집본이 무려 3시간 분량이었다고 들었다. 실수한 거다. (웃음) 현장에서 재밌으면 무조건 하라고 했으니까. 이 영화를 두고 인공적인 장치들이 눈에 거슬린다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은데, 사실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간 부분들이 대부분 작위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상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상우의 개인사라든지 상우와 봉구의 관계 변화를 표현하는 정서장면이라든지 관계가 좋아지는 시점에서도 상우가 봉구에게 아버지에 관한 한 용납할 수 없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빠졌다. 그래서 상우가 나중에 되찾게 되는 가치들을 조금 쉽게 얻는 것 아닌가 할 수도 있고.
일반 시사에 가봤나. 애초 의도와 반응이 엇갈리는 경험을 했을 텐데. 예를 들어 웃음이 터져나오는 지점이라든지. 안 빠지고 다 갔다. (웃음) 사족 같지만, 털어놓자면 후반작업하면서 음악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나중에 방준석 음악감독까지 가세해서 트윈으로 일주일 동안 새로 작업했다. 그래서 프린트 버전이 3개인데 쓰이는 음악도 다 다르고, 인아웃 지점도 모두 다르다. 기술시사 하는 날이었을 거다. 모니터를 위해 일반 관객 50명을 불렀는데, 마지막에 상우가 봉구에게 아버지의 유언을 묻는 장면이 있다. “이게 마지막이야” 하고 물으니까 봉구가 “응” 하는데 거기서 막 웃더라. 조소는 아니었겠지 하는데도 가슴이 철렁해졌다. 애 같은 봉구의 반응에 이입돼서 웃는 건데, 애초 신의 목적과 반대니까. 그래서 뒤로 밀어놨던 음악을 다 당겨오고 그랬다. 그 다음 시사 때는 웃음이 잦아지더라. 아, 음악을 몇 콤마만 달리 써도 저러는구나 싶었다. 또 하나는 도입부 문제인데. 영화에서 가장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초반 10분이다. 보면서 맘속으로 관객이여 조금만 견뎌달라고 애원했다. 관객이란 게 시작은 관대하고 엔딩은 박한 면이 있지만, 막상 옆에 앉아서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더라.
이정재, 이범수 두 배우에게 요구한 것이 있다면. (상우 역의) 정재씨가 전체를 끌고가야 한다면 (봉구 역의) 범수 형은 각각의 신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봉구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매력이 크기 때문에 그걸 잘 드러내줄 수 있다면 그렇게 갔다. 범수 형이 워낙 아이디어가 많아서 별 어려움이 없었고. 리허설을 하면 할수록 좋은 걸 건질 수 있는 스타일이라 더 그랬다. 일례로 정 반장이 봉구에게 불교 이야기를 들며 이죽거리는 상황에서 봉구가 “나 하나님 믿는데요” 하고 돌아서는 것까지가 원 상황이었는데 몇번의 리허설 끝에 범수 형이 대사 치고난 뒤 곧바로 “예쑤 이름으로∼”라고 흥얼거리며 애드리브를 치더라. 그거 보고서 곧바로 카메라 돌리자고 했다. 정재씨는 스타일 자체가 범수 형하고는 좀 다르다. 리허설 할수록 첫 느낌보다 안 좋아진다. 대신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진실로 믿고서 내놓는 즉발적인 감정은 무척 뛰어나다.
현장에서 ‘슛’ 부르기 직전까지도 리허설에 공을 들였다. 연기 디렉션에서 리허설 덕을 좀 봤나. 책에선 1분 정도의 장면이면, 1시간의 리허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도 짧다.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수십만 가지다. 현장에서 직관으로 판단하려면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해야 한다. 이번 영화에선 촬영 전에 그리고 촬영 도중에도 끊임없이 리허설을 했다. 그게 없었다면, 범수 형이 애드리브를 쉽게 꺼내놓을 순 없었을 거다. 예를 들어 대사 아래 서브텍스트로 인물의 심리를 적어놓았는데, 리허설 하다보면 배우가 생각하는 해석이 있고, 그게 원래 것보다 좋은 경우가 있다. 그런 건 다 적어놨다가 현장에 가서 말해준다. 정작 현장 가면 배우들은 감독의 의도대로 따라오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말해주면 연기가 좀더 윤택해진다. 대사 입에 붙으라고 하는 리허설이 아니다. 리허설은 내겐 즉효약처럼 꺼내먹을 수 있는 일종의 알사탕들을 확보하는 시간이다.
현장에서 스스로 실연을 여러 번 하기도 했는데. 좋은 배우, 좋은 연기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코언 영화의 배우들을 보면 양식적인 연기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모건 프리먼이나 알 파치노 같은 경우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공기를 몸으로 진심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하고 꼼꼼한 리액션이 돋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를 즐겨 본다.
정 반장이라는 캐릭터는 이질적이다. 애초에는 정 반장을 통해 다른 코믹한 관계들을 좀더 긴장감 있게 끌고 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레옹>의 게리 올드먼 같은 캐릭턴데. 그렇게 센 캐릭터가 좋다. 정 반장은 파편적이고 히스테리컬한 친구인데 뭘 원하는 건지 파악이 잘 안 되는 인물이다. 처음에 상우와 만나는 장면에선 형, 동생하는 사인가, 아니면 친군가 뭐 그렇게 헷갈려 하다가 아, 저 새끼가 저런 농담할 땐 웃으면 큰일나겠구나 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근데 그게 너무 많이 들어내서 듬성듬성 드러나니까 캐릭터의 뾰족한 모서리만 두드러진 것 같다.
‘쎈’ 캐릭터, ‘쎈’ 영화를 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지. 전체 드라마나 캐릭터가 굉장히 강한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영화다. <트루 로맨스>가 그렇다. 이번 영화에선 너무 순화시켜서 간 것 아닌가 싶기도 해서 좀 아쉽다. 감정의 파고가 다이내믹하고 크되 그걸 관객이 놓치지 않고 흡수하는 웰 메이드 영화를 하고 싶다. 입은 웃지만,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그런 영화도 해보고 싶고.
다음 프로젝트는 뭔가. 평소 하고 싶다던 스릴러인가. 감독은 일종의 벤처다.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아나. (웃음) 데뷔가 제 스스로 빵점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자신있는 척하는 거지, 뭐. 전에 써놨던 <오르페우스>는 하고 싶은데 잘 모르곘다.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가 여자들을 살해한다는 줄거린데, 거칠지만 원초적인 끌림이 있다. 재기발랄하고 톡톡 튀고 유머 많은 뮤지션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제리 맥과이어>류의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유의 영화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 인물, 상황을 만들 자신도 없고, 배포도 없다. 오히려 많이 본 듯한데 전혀 새로운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