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들이 고대하던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라인업이 발표됐다. 10월2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이번 부산영화제에선 역대 최대 규모인 60개국 244편의 영화가 선보이며, 어느 해보다 많은 게스트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관심을 모았던 개막작으로는 일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도플갱어>가, 폐막작으로는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가 선정됐다. 각각 “일본 영화계 최고의 감독 기요시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작품”, “호러라는 장르를 경유하지만 가족과 현대적 삶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영화”라는 게 프로그래머들의 선정 이유. 한편, 개막식은 박중훈과 방은진이, 폐막식은 김호정과 황정민이 각각 진행하게 된다.
부산을 찾을 해외 게스트들의 진용 또한 화려하다.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 주연 야쿠쇼 고지를 비롯해 부산영화제가 제정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인 모흐센 마흐말바프, 그리고 그의 딸인 사미라와 하나, 캐나다의 괴짜감독 가이 매딘,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등이 영화제를 빛내줄 인물들. 또 부산프로모션플랜(PPP)에 참여하는 홍콩의 왕가위, 스탠리 콴, 프루트 챈, 인도의 무랄리 나이르 또한 반가운 얼굴들이다.
한편, 올해 부산영화제는 해운대로 메인센터를 옮긴 가운데 치러지는 첫 행사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영화제 사무국과 각종 게스트 서비스가 해운대에 집중되는 가운데, 해운대 메가박스 10개관이 사실상 주상영관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야외상영도 2년 만에 부활해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돋울 전망이다. 남포동의 부산극장 3개관과 대영시네마 3개관에서도 상당수의 작품이 상영될 계획. 해운대와 남포동의 상영작 비율은 대략 6 대 4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폐막작 예매는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http://www.piff.org)나 부산은행 홈페이지(http://www.pusanbank.co.kr)를 통해 9월18일과 19일 이뤄질 예정이며, 일반 예매는 9월24일부터 폐막일까지 인터넷과 부산 해운대 메가박스,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점, 서울 대한극장, 수원 메가박스, 대구 메가박스에서 이뤄진다.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섹션별 상영작과 각종 행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한국영화회고전은 56쪽 ‘정창화 회고전’ 기사 참조).
아시아영화의 창
젊고 패기 넘치는 감독들의 작품이 상당수를 이룬다. 특히 중국, 일본, 홍콩의 독립영화가 강세를 보인다. 홍콩의 <푸보>(웡칭포, 리컹록), <사랑은 죄가 아냐>(덕 첸), <어둠의 신부>(윌리엄 콕)나 일본의 <후나키를 기다리며>(야마시타 노부히로), 중국의 <아야야>(쿼이지언) 등은 부산을 통해 세계로 발돋움하려는 ‘따끈따끈한’ 작품들.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파리>(밝은 미래),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오후 5시>, 자파르 파나히의 <붉은 황금>,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 나카다 히데오의 <라스트 신> 또한 영화광이라면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물결
아시아의 신예감독 13인이 내놓은 젊은 영화 중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세디그 바르막 감독의 <오사마>. 탈레반 정권 이후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장편 극영화인 이 작품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자행되는 인도의 현실을 뒤틀어 보여주는 가상드라마 <마트루부미: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땅>(마니쉬 자)이나 싱가포르 청소년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로이스톤 탄), ‘차이밍량의 배우’ 이강생의 감독 데뷔작 <불견>도 관심을 끈다. 허문영 프로그래머가 “한국영화가 배출한 올해의 성과”라고 표현한 홍기선 감독의 <선택> 또한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한국영화 파노라마
올해 이 부문의 특징은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은 작품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점. 충무로 주류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제작방식을 택한 영화들이 해외 관객뿐 아니라 한국 관객의 눈길을 기다린다. 전수일 감독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진아 감독의 <그 집 앞>, 이윤택 감독의 <오구>, 박광수, 박찬욱, 정재은 감독 등이 참여한 인권영화 <여섯개의 시선> 등이 그것. 이외에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살인의 추억> <바람난 가족> 등이 포함돼 있다.
월드 시네마
모두 49편의 다양한 작품들이 상영되는 월드 시네마에서는 유명감독들의 신작이 우선 눈에 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의 <아버지와 아들>, 피터 그리너웨이의 <털시 루퍼의 가방>을 비롯해 마이클 윈터보텀의 <인 디스 월드>,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 미카엘 하네케의 <늑대의 시간>, 제임스 아이보리의 <프렌치 아메리칸>, 자크 드와이옹의 <라자>, 누리 빌제 세일란의 <머나먼>, 알랭 기로디의 <용감한 자에게 안식은 없다> 등이 영화광들과의 조우를 고대하고 있다. 만약 내일의 영화를 발견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미국의 광채> <반복되는 나날들> <절망으로 불타는 우리집> <내 이름은 노이> <영 아담> 등에 주목해도 좋다.
와이드 앵글
우선 이란 모슬렘 만수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들만의 영화천국>을 신경써야 한다. 정부의 통제를 피해 영화와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한 가정 안의 은밀한 부분을 파헤친 <프리드먼가 사람들 따라잡기>, 춤추는 젊은이들을 뮤직비디오처럼 담아낸 <가무중국>, 언니 사미라가 <오후 5시>를 위해 캐스팅하는 과정을 담은 마흐말바프 가족의 막내 하나의 <광기의 즐거움>도 관심을 모은다. 김태일 감독의 <나도 노동자이고 싶다>, 최하동하 감독의 <높은 언덕> 등 한국 다큐 6편은 처음 소개되며, <잼 필름스2> <터널> <크래커백> 등의 단편과 <나수: 안달루시아의 여름> <소강로사> 같은 애니메이션도 흥미롭다.
오픈 시네마
대중의 호응이 높을 만한 작품들 위주로 선정했다. 조엘 코언의 신작 <인톨러블 크루얼티>, 유쾌한 정치코미디 <굿바이, 레닌!>, 기타노 다케시의 검객영화 <자토이치>, 타이 전통무술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옹박>,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소녀의 이야기 <웨일 라이더> 등을 놓치지 말 것.
크리틱스 초이스
전찬일, 김영진 등 4인의 평론가가 선정한 이들 영화 중에서는 박경희 감독의 미개봉작 <미소>를 비롯해 홍콩 유릭와이의 <명일천애>, 오스트리아 루트 마더 감독의 <투쟁>, 아이슬란드 브래들리 러스트 그레이 감독의 <솔트>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별기획 프로그램
아톰 에고이얀의 <패밀리 뷰잉>, 드니 아르캉의 <야만적 침략>, 가이 매딘의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등 캐나다 감독들의 작품이 소개되는 ‘캐나다 특별전’, 장위안의 <마마>, 왕샤오솨이의 <극도한랭> 등이 소개되는 ‘중국 독립영화 특별전’, 아프가니스탄과 관련된 영화를 묶어 상영하는 ‘아프가니스탄과 영화’, 뉴 이란 시네마에 영감을 준 이란의 시인 포루흐 파로허저드를 소개하는 ‘파로허저드 특별전’ 등이 준비돼 있다.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의 감독들과 영화들한국 감독들 프로젝트 두드러져
올해 PPP의 특징은 한국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18개 중 5개를 차지할 정도로 두드러진다는 사실. 허진호 감독의 <행복>(가제), 전수일 감독의 <어느 한국 사제의 이야기>(가제),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 김인식 감독의 <러브 바이러스>, 이명세 감독의 <크로싱> 등이 투자자와 배급망을 기다린다. 특히 가족을 북한에서 탈출시키는 한 여성의 이야기인 이명세 감독의 <크로싱>은 <래리 플린트>의 프로듀서였던 재닛 양이 제작을 맡을 예정. 이외에 가장 눈길이 가는 프로젝트는 왕가위의 <피안화>다. 그의 신작은 중국의 컬트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남매의 사랑 이야기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신작 <로프트>나 스탠리 콴의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무랄리 나이르의 <버진 카우>, 조앤 첸의 <애첩>, 헬렌 리의 <벤츄라>, 펑하오싱의 <나이키를 기다리며> 역시 국제적인 관심을 모을 프로젝트들이다.
한국 신인감독들을 대상으로 하는 뉴디렉터스 인 포커스(NDIF)에는 박진오 감독의 <죄와 벌>을 비롯한 5편이 출품됐고, 프루트 챈의 <마운틴 블루스> 등 홍콩-아시안필름파이넨싱포럼(HAF)의 프로젝트 5편 또한 부산에서 프리마켓을 열 예정이다.
한편, PPP는 올해부터 해외 세일즈 오피스를 아시아 전역의 영화사로 확대함으로써 향후 본격적인 필름마켓으로의 도약을 준비할 예정이다. 또 부산영상위원회가 주최해온 로케이션 박람회인 BIFCOM과 행사를 함께 열어 영화의 기획, 투자에서부터 로케이션, 후반작업까지를 총괄하는 ‘토털 마켓 플레이스’ 아시아 필름인더스트리센터(AFIC)를 운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