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이보그가 공존하는 2080년. 인간들은 수명 조절로 사이보그들을 통제하고 있다. 리아(서린)는 폐기처분까지 얼마 남지 않은 댄서 사이보그.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된 무단이탈 사이보그 제거요원 R(유지태)은 폐기처분 위기의 리아를 살리기 위해 불문율을 깨면서까지 그녀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시온(이재은)을 찾아나선다.
■ Review민병천 감독이 4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영화 <내츄럴시티>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데뷔작 <유령>에서 받았던 석연치 않은 느낌이 한층 분명해진다. 매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진보적인 비주얼을 발견했다’는 식의 찬사가 뒤따르지만, 그 비주얼이란 것 역시 인용구들로 짜깁기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비주얼로만 석연치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령>이 발표되고 나서 언급됐던 할리우드영화들, <크림슨 타이드>나 <붉은 10월>, 혹은 <내츄럴시티> 전반에 깔린 <블레이드 러너>의 그림자는 단순히 비슷한 소재를 사용해 얻어진 우연적 동질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작가의 상상력 부재는 민병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간을 사랑하는 사이보그와 그녀를 사랑하는 인간(사이보그 제거 요원), 정해진 폐기날짜를 거부하고 좀더 긴 생명에의 욕망을 지니게 된 폭주 사이보그들, 인간이 만든 첨단 문명과 과학의 한계,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황량하게 관통하는 세기말적 사조, 환경오염과 새로운 계급사회, 인간 사냥꾼,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 하늘을 나는 자동차, 거대한 우주선, 첨단과 복고가 뒤섞인 이국적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2080년의 미래도시 <내츄럴시티>는 <블레이드 러너>의 인물과 배경을 가감없이 차용하고 있으며, 주제의식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민 감독은 <내츄럴시티>를 가리켜 “사랑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기본축이어야 할 R과 리아의 사랑은 공감을 줄 만한 인물 설명이 말끔히 생략돼 있다. R이 리아를 만나는 장면이나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을 빌려서까지 안드로이드의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절실한 의도는 짐작으로 가늠할 뿐이다. “아마도 러닝타임 때문이겠지만”, 멜로와 액션이라는 거대한 두축 가운데, 멜로 부분이 깨끗하다 싶을 정도로 도려져, 메마른 폭력의 소리들만 화면을 가득 메운다. 유지태와 이재은의 연기는 어색한 티가 없고, 민 감독의 매끈한 연출솜씨도 기능적으로 작동하지만, 극장을 뒤로 하는 마음 안에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사랑도, 멋진 화면에 대한 감탄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