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더욱 강렬한 핑크색으로 재무장한 팬시상품,<금발이 너무해2>
2003-09-30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 Story

하버드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유명 법률회사의 변호사로 일하는 엘 우즈(리즈 위더스푼)는 ‘금발은 멍청해’라는 선입견을 깬 입지전적 인물. 결혼을 앞둔 엘은 애완견 ‘브루저’의 부모에게 청첩장을 보내기 위해 수소문하다 브루저의 엄마가 화장품회사 동물실험실에 갇혀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엘은 동물실험법을 반대하는 법안통과를 위해 혈혈단신 워싱턴으로 향한다.

■ Review

워싱턴으로 입성한 엘이 첫 출근을 앞두고 옷을 고르면서 읊조린다. “이건 너무 재클린 같아. 이건 너무 힐러리 같은걸. 음… 이건 너무 르윈스키 같지 않아?” 그러다 결국 “완벽한” 핑크색 정장으로 차려입은 엘이 물밀듯이 한 방향으로 밀려오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을 거스르며 경쾌하게 계단을 올라간다. 이 장면은 전편에서부터 이어지는 <금발이 너무해2>의 컨셉을 명확히 드러낸다. 튀더라도, 방향이 다르더라도, 난 내 길을 가겠어.

지난 2001년 개봉해 미국 내 큰 호응을 이끌어냈던 <금발이 너무해>를 잇는 <금발이 너무해2>는 더욱 강렬해진 엘의 핑크색 의상과 더욱 빈번한 우연으로 무장한 틴에이저용 팬시상품이다.

선의로 똘똘 뭉친 정직하고 용기있는 자가 주변을 감화시키고 진실한 승리를 이루는 프랭크 카프라의 ‘인민주의 코미디영화’의 공식을 뒤따르는 <금발이 너무해2>는 다분히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다. 하여 ‘스미스씨’나 ‘디즈씨’의 현대 여성판이라고 할 수 있는 엘의 캐릭터는 역경이 닥쳤을 때 정의의 링컨동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 자신의 뺨을 후려갈길 때 다른 뺨을 내놓는 예수 같은 자비를 펼쳐 보인다. 그러나 전편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것은 엘의 지혜와 사건해결의 통쾌함이다. 불행히도 옷장 밖 세상은 핑크빛 원더랜드의 엘리스가 ‘핑킹가위와 500m 꽃분홍색 리본’'으로 치장하기에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너무나 안이하게 엘에게 승리를 안겨준다. 또한 머리색, 인종, 직업, 성적취향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강조했던 전편의 약점을 고스란히 가져와 엘과 사사건건 마찰하는 대립의 축을 흑인여성으로 놓고, 애완견 브루저가 수캐였고 알고보니 게이였더라는 설정 또한 우스꽝스럽게 배치한다. 그러나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를 연출한 찰스 허먼-웜펠드의 위트있는 대사나 루이뷔통, 돌체 앤 가바나, 베르사체 등의 톱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친 엘의 의상과 프로덕션디자인은 귀와 눈을 즐겁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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