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 핵전쟁으로 초토화된 지구상에 재건된 신국가 ‘리브리아’에서는 감정이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국민들은 총사령관의 지령에 따라 감정을 배제하는 약물 ‘프로지움’을 투입한다. 인간의 감정이 전쟁과 범죄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예술작품들 또한 모두 제거된다. 기계 같은 특수전사 존 프레스턴(크리스천 베일)은 감정 회복을 꾀하는 반군을 진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러나 점점 더 가중되는 가치관의 혼란은 그를 반군쪽으로 기울게 한다.
■ Review<이퀼리브리엄>은 전후 다 때려치우고 곧장 지옥 같은 ‘평정’의 국가로 우리를 안내한다. 감정이 모든 죄악의 근본이라고 설파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체제가 어떻게 생성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전사는 영화 속에서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서사가 아니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세상을 구출하는 ‘액션’만이 자랑거리이다. 리브리아에 살고 있는 모든 국민은 감정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정해진 시간마다 프로지움을 맞아야 한다. 그 체제를 지키는 살인기계 존 프레스턴은 가공할 실력을 지닌 전사이다. 그가 얼마나 빨리 정부군에서 저항군의 수호신으로 입신할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도시의 미치광이 살인자 역을 맡았던 크리스천 베일이 여기에서는 살인을 일삼는 냉혈한과 감정을 되살리는 ‘액션 네오’의 그 양자를 모두 수행한다. 그의 찰나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편집 스타일은 순간순간 눈을 휘어잡을 정도이다. 또한, ‘건카터’라는 권총 무술은 재미있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액션의 개념은 그리 나아가지 못했다. 액션에도 개념이 있어야 한다.
<이퀼리브리엄>은 감정없는 세상이라는 ‘불가능한 명제’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사전범죄예방과 만나게 된다. 또는, 과거를 끌어당겨 미래를 상상한다는 점에서 대다수 SF영화들과 합을 같이한다. <리크루트> <스피어>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의 각본을 썼던 커트 위머는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히틀러와 베를린을 배경으로 깔았고, 분서갱유의 역사적 사실을 은연중에 가상화한다. 현존했던 역사를 상기시키기 때문에 <이퀼리브리엄>은 재미를 제공하면서도 자꾸 무거운 생각을 짊어지게 만드는 영화이다. 제작자 얀 드봉의 영화철학을 신망하는 관객이라면 그 점을 무시해도 된다. 그럴 때 <이퀼리브리엄>은 ‘감동’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