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의 미셸 로드리게즈
2003-10-01
글 : 박혜명

외국 언론이 미셸 로드리게즈의 이름 앞에 붙이는 가장 흔한 수식어는 ‘feisty’다. ‘feisty’는 ‘성마르다, 공격적이다, 잡종강아지 같다’는 뜻을 가진 단어. 미셸 로드리게즈가 영화 속에서 보여줬던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설명하기 적합하다. 첫 주연작 <걸파이트>의 소녀 복서 다이애나를 비롯해 <분노의 질주>의 폭주족 레티, <레지던트 이블>의 전사 레인, 그리고 최근 개봉한 <S.W.A.T 특수기동대>의 특수경찰 크리스까지. 이들은 하나같이 터프하고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자들과 힘겨루기를 한다면 곧바로 비등한 실력을 과시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이며, 건강하게 벌어진 어깨와 작지 않은 몸집,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로드리게즈에게서 가장 쉽게 표현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첫 주연작으로 <걸파이트>를 만났다는 건 그러므로 운이 좋았다기보다 당연한 결과이다. 감독 카린 쿠사마는 미셸 로드리게즈에게서 스크린을 불태워버릴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말론 브랜도 같은 느낌의 여자아이를 찾던 감독은, 350명이 모인 1차 오디션에서 로드리게즈를 보는 순간 마음을 정해버렸다. 이렇게 점찍은 배우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논답시고 2차 오디션에 1시간이나 늦어서 감독을 애태웠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일화. 로드리게즈 본인도 이 배역을 낯설어하지 않았다. “나랑 닮은 구석이 많다. 라틴계이고, 선머슴 같은 여자애고.” 그는 어릴 때부터 레즈비언 중에서도 남성 역할을 하는 부치(butch)쯤으로 취급받았다. 가슴이 자라기 전까진 남자애들조차 그를 남자애로 의심했더랬다.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미지이기도 하다. 다른 여자애들이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당할 때 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했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유사한 역할을 맡아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곱지도 가녀리지도 않다는 자신의 외적 특징을 단순히 이용한 건 아니었다. “남자랑 샤워하는 장면을 요구하는 섹시한 영화를 찍자는 제안들도 있었다. 제2의 제니퍼 로페즈가 되는 건 쉽지만, 난 어렵게 성공하고 싶었다.”

그녀의 섹시함을 써먹으려 했다는 걸 보면 할리우드는 확실히 눈썰미가 뛰어나다. 미셸 로드리게즈의 동그란 두 눈꼬리는 예쁘게 처져 있다. 자연스럽게 풀어내린 검고 긴 머리는 기네스 팰트로 혹 카메론 디아즈의 우아하거나 화려한 금발과 또 다르게 아찔한 인상을 남긴다. 같은 여전사의 이미지를 지녔어도 <에이리언>의 시고니 위버나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와 다른 이유다. 그는 안젤리나 졸리만큼 도도하지 않고, 시고니 위버보다 유순하다. 아직은 이런 이미지들이 짧은 필모그래피 속에 다 녹아들어가 있지 않지만, 에서 훈련을 마치고 팀원들이 술자리를 즐길 때 ‘크리스 산체스’를 눈여겨 봤다면 감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분노의 질주>를 찍기 전까지 운전면허도 없었다는 그는, 라스베이거스 레이싱 스쿨에서 카레이싱 수업을 받는 동안 내내 불만스러워했다. “한정된 시간만 차를 몰게 하고, 시속 80마일 이상은 속도를 못내게 했다.” 같이 수업받는 남자배우들이 옆에서 씽씽 내달리는 모습을 쀼루퉁하게 바라봤을 그의 얼굴은 상상이 어렵지 않다. 미셸 로드리게즈는 자신의 신체부분 가운데 두뇌(brain)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지성을 과시하려고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정돈되지 않은 구어로 인터뷰에 응하고, 비속어도 거침없이 쓴다. 그가 자신의 두뇌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안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를 들인 전례가 없다는 S.W.A.T의 유일한 여성 멤버로 활약하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느껴졌다면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미셸 로드리게즈는, 아직 신인임에도 “힘들게 성공하고 싶다”고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사진제공 콜럼비아트라이스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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