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베를린] 한국 애니의 발견
2003-10-06
글 : 진화영 (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서 열린 서울애니메이션 영화제 현지 뜨거운 반응 보여

여름 휴가를 맞아 조용하던 베를린은 9월 들어서자마자 한층 분주해졌다. 중순부터는 가을 축제가 시작되고, 월초에는 1997년부터 시작된 베를린 ‘아시아태평양주간’ 행사 때문이다. 명실상부한 통일독일의 중심부로서의 위상을 되찾은 베를린은 ‘멀티컬처’, 즉 복합문화의 중심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며, 1997년부터는 ‘아태주간’ 행사를 격년으로 치러오고 있다. 이름 그대로 아시아 전역과 호주, 뉴질랜드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문화권을 커버하는 전방위 행사다.

매회마다 주제국을 선정해 일본, 중국 등을 거쳐 인도까지 이른 이 행사에서, 올해는 한국도 분주했다. 2년 뒤를 위한 예행연습 내지 전야제 차원에서다. 한마디로 2005년은 독일 땅에서 한국이 판치는 해다. 세계적인 프랑크푸르트 서적 박람회는 물론 2005년 ‘아태주간’ 주제국에도 한국이 선정되었다. 게다가 독일에서 개최될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붉은 악마’로 각인된 축구의 나라 한국을 상기시키려는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곳곳에서 개최되어 사람 헷갈리게 만든 한국 행사 풍년 한켠에 조용히, 그러나 풍요롭게 한국애니메이션영화제가 열렸다.

한국애니영화제는 마침 베를린을 찾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일정과 맞물렸다. 이 시장은 9월25일부터 27일까지 베를린의 유서 깊은 극장 로열팔라스트에서 열린 ‘서울애니메이션영화제’ 개막식에도 참석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홍보했다. 개막작으로는 2002년 서울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대상과 프랑스안시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가 선정되었고, <오세암>(사진), <엘레시움> 등의 극장용 장편은 물론 <인생> 등 갖가지 영화제에서 수상한 단편들이 3일 동안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실사영화들에 비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 시장인 독일에 첫선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영화제는 그 의미가 매우 큰 행사였는데, 독일 유수 영화제 관련자들, 언론인들,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을 비롯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관객이 몰리는 바람에 많은 이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난처한,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그지없이 반가운 상황을 빚기도 했다. 베를린영화제의 경쟁 섹션 중 하나인 ‘어린이영화제’의 마리안 레드파트 부위원장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운 색채와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 그리고 단편들의 놀라운 아이디어와 기술 수준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국 작품들이 꾸준히 독일에 소개될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오기도 했다.

9월17∼21일 동안 열린 제1회 ‘아태 영화제’에서도 상영작 총 25편 중 <취화선> <오아시스>를 비롯한 우리 영화 4편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아직도 유럽에서는 몇몇 영화제를 제외하고는 한국영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전무하다. 날로 높아가는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에 비해 이제는 마케팅이 한수 처지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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