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경찰 관리의 범행을 조사하던 이문건(정이건)은 이것이 최면에 의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살인 혐의로 복역 중인 최면술사 여상정(여명)에게 도움을 의뢰한다. 덕분에 수억달러에 이르는 보석 탈취를 시도하려던 용의자의 계획을 간파하고 경매장 보호에 나서지만 오히려 여상정의 최면에 걸려 보석을 훔치게 된다. 여상정이 보석과 함께 달아나자 쫓기는 신세가 된 이문건은 누명을 벗기 위해 여상정을 추적하다 여상정이 갱단에 협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Review“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자물쇠만 찾는다면 쉽다.” 여명이 말한다. 과연 영화는 냉철하고 의지가 강한 형사가 거짓말처럼 넋을 잃고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정말 너무나도 쉽다. 아니 쉬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영화적 가정이며 설령 최면은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마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손 치더라도 묵인해야 하는 출발지점이다. 그리고 그 계약에 서명하자마자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아군과 적군이 일순간에 뒤바뀌고 피아(彼我)가 교차하는 좁은 길을 따라 도주하면서 동시에 추격하는 스타일리시한 액션이다. 광각렌즈로 한껏 왜곡된 화면과 탈색 토닝을 통해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스피디하게 전개하는 초반까지 영화는 꽤 만족스럽다. <무간도>, 부산영화제에 소개될 <PTU>와 함께 홍콩누아르의 재생을 이끄는 작품이라거나 <천장지구>의 진목승 감독의 이름 석자 등을 기억하게 되는 것도 대충 거기까지.
그러나 속모를 것 같던 우리의 마법사(혹은 최면술사) 여명의 알고보니 ‘눈물없인 볼 수 없(어야 하)는’ 애절한 사연과 아내 사랑에다가 ‘이보다 더 사악할 수 없는’ 악당이 순진하게 등장하고 나면 선악과 흑백이 중첩되면서 일으키는 아찔한 <무간도>의 긴장감과 이 영화가 왜 비견되는지가 아리송해진다. 바바리 자락 휘날리며 의리에 죽고 살았던 거친 ‘싸나이’ 누아르를 극복하기 위해 총 대신 마법(!)으로, 의리 대신 아내 사랑으로 무장한 부드러운 남자가 해답이 될 거라고 여긴 모양이지만, 감동의 도가니를 겨냥하는 진목승의 최면에 걸려 마음의 자물쇠를 따줄 만큼 순진한 관객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그 자물쇠는 영화 속에서 온갖 다양한 기능의 최신 기종 휴대폰들을 늘어놓은 모 회사가 더 많이 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마법은 그러니까 다만 가정으로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