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고 올 가을 프랑스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는 <몽상가들>(사진)은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1972) 이후 30여년 만에 다시 파리를 배경으로 촬영한 작품이어서 제작 당시부터 각별한 관심을 얻어왔다. 68년 5월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미국인 청년과 프랑스인 남매 테오와 이자벨이 맺게 되는 관계를 그린 이 영화는, ‘아버지 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던 사회 격변기에 대한 회상인 동시에 프랑스 영화계의 오늘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극중 테오를 연기한 루이 가렐은 포스트 누벨바그 시대의 대표적 감독인 필립 가렐의 아들이며, 그 누이 역을 맡은 에바 그린은 장 뤽 고다르의 <남자, 여자>로 데뷔했던 여배우 마를렌느 조베르의 딸이다. 60년대 말과 70년대에 감독 자신과 친분을 나누었던 프랑스 시네아스트들의 자녀를 배우로 캐스팅함으로써 베르톨루치는 청년시절의 기억과 조우하는 한편, 자녀들을 통해 새롭게 대를 이어가는 프랑스의 ‘아버지 세대’ 배우들에 관해 암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들어 프랑스에는 영화인 가문의 소식들이 주요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8월 연인에게 구타당한 뒤 사망한 배우 마리 트랭티냥은 <남과 여>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등으로 유명한 원로배우 장 루이 트랭티냥의 딸이며, 영화감독인 어머니 나딘이 연출하는 TV시리즈에도 출연 중이었다. 트랭티냥 가처럼 가족 모두가 영화인인 드파르디외 집안의 경우 아버지 제라르와 아들 기욤이 매스컴을 이용해 벌이고 있는 공개적인 상호비방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영화계에서 스타 2세가 데뷔해 급부상하는 사례도 최근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카느린느 드뇌브가 이탈리아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의 사이에 낳은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로저 바딤 감독과의 사이에 낳은 크리스티앙 바딤 등은 대표적인 예다. 가수이자 영화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한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의 사이에 태어난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14세 무렵부터 클로드 밀러의 <귀여운 반항아>나 아버지가 만든 <샤를로트 포에버>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 입문해 활동해왔고, 그녀의 의붓동생이자 자크 드와이용 감독의 딸인 루 드와이용 역시 프랑스에서 가장 촉망받는 여배우로 거론되고 있다. <포르노그래픽 어페어>등에 출연하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나탈리 베이가 가수 조니 할리데이와의 사이에 둔 딸 로라 스멧도 올해 초 배우로 데뷔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듯 거미줄처럼 엮인 스타의 가계보에서 뱅상 카셀, 로만느 보링제, 안토니 들롱 등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은 배우들도 프랑스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핏줄을 따라 세습되는 문화 자본과 구별짓기에 대한 부르디외의 현대사회 분석은 프랑스 영화계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누구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캐스팅 과정이나 이후 경력에서 그들이 누리게 되는 특권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두드러진 이러한 경향에 대해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스타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만일 기욤 드파르디유가 다른 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영화계에서 지금과 같은 지명도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라고 반문하며, 재능있는 신인배우를 기용할 만한 능력조차 상실한 프랑스 영화계의 위기를 증명하는 현상으로 풀이하고 있다. 스타 가문의 대를 이은 영광이 프랑스 영화를 빛낼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놓고 프랑스가 고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