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새 영화] 니콜 키드먼 주연의 <버스데이 걸>
2003-10-07

인터넷 주문했어‥모스크바 여자를

그다지 잘나가지 못하는, 영국의 은행원 존 버킹검(벤 채플린)은 말수가 적고 소심한 탓에 친구도 적고 연애도 못하고 산다. 큰 마음먹고 러시아 여자와의 결혼을 주선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신부감을 주문한다. 모스크바에서 날아온 나디아(니콜 키드먼)는 눈부신 미인이지만 사이트의 소개와 달리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존은 사이트 담장자에게 전화해 ‘반품’하려 하지만 전화가 안 된다. 와중에 나디아는 존에게 몸으로 접근해온다. 어느덧 둘은 섹스를 통해 몸으로 말하고, 서로 묶고 묶이는 사도매조키스틱한 유희까지 나누며 사랑에 빠진다.

이게 어떤 영화인가, 멍청한 한 남자의 멍청한 판타지인가 싶을 즈음에 <버스데이 걸>은 반전한다. 나디아의 사촌이라는 남자 유리(마티유 카소비츠)가, 여행 도중에 만났다는 러시아인 알렉세이(뱅상 카셀)와 함께 나타나더니 무작정 존의 집에 죽친다. 며칠 뒤 알렉세이가 나디아를 묶고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여자를 샀으니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한다. 존은 근무하던 은행의 금고를 턴다. 수만파운드를 안겨줬더니 진상이 드러난다. 나디아와 두 남자는 국제 전문 사기꾼이고, 더 나아가 나디아와 알렉세이는 연인사이였다.

영화는 이후로도 몇차례 반전하면서, 관객의 허를 찌르는 재미를 주지만 반전의 장치들이 치밀한 편은 아니고 비약이 심하다. 그러니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방법은 존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길 뿐이다. 완전히 당한 뒤에 존은 나디아를 다시 만난다. 나디아는 궁지에 몰려있다. 쥐앞에 고양이 격인 존이 흔들린다. 소심한 존으로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그보다 ‘바디 랭귀지’에 먼저 익숙해진 사랑일수록 연민에 약한 법, 그 점을 이해해준다면 영화는 귀여운 구석이 있다. 결국 멍청한 한 남자의 멍청한(그러나 밉지 않은) 판타지의 성사로 귀결되는 이 영화는, 존의 상대역이 키드먼이 아니었다면 정말 멍청한 판타지가 되고 말았을지 모른다. 키드먼의 슬퍼하는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나디아를 내치지 못하는 존의 심리가 설명된다고 하면 너무 주관적인 견해일까. 감독 제즈 버터워스. 10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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