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12명 감독의 야심만만 뉴프로젝트 [2]
2003-10-1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정진환
사진 : 오계옥

관계, 존재, 행복... 그건 다 오해야

<유혹의 기술> | 김대우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김대우라는 신인감독은 생소할는지 몰라도, ‘시나리오 작가 김대우’는 꽤나 익숙한 이름이다. <송어> <정사>부터 최근 개봉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까지, 그는 충무로 시나리오계에서 이미 안정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는 작가다. 그런 그가 ‘감독선언’을 했을 때 “백이면 백, 극렬하게 뜯어말렸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본 만화 중에 아들은 굉장히 열심히 살고, 아버지는 엉망으로 사는 부자이야기가 있다. 마지막쯤에 두 부자가 베란다에서 ‘남자는 늙으면 어떻게 봐도 다 똑같아 보여’라고 말하는데, 만화 가게에서 펑펑 울게 되었다. 싸한 느낌이랄까. 인생에서 결과는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감독으로 성공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루빨리 영화의 가까운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고 싶었다.” 결국 이 작가의 감독행은 흔히 상상하듯 감독들에 대한 불신이나 반발심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비교적 작가라는 일에 만족했던 편이다. 어쩔 땐 감독의 손을 거치며 훨씬 좋게 변화된 경우도 많았다. (웃음) 그러나 결과물의 상태를 떠나 ‘온전히 내 것’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결국 ‘온전히 내 것’에 대한 갈증이 가장 컸을 거다.”

프랑스고등영화학교(ISEC) 때 쓴 시나리오 <슬픔에 찬 성모는 서 있었다>가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공모에 가작으로 뽑히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던 그는 이제 ‘감독’이라는 타이틀 아래 “요즘엔 영화가 내러티브를 제외하고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를 보려고 노력” 하는 등 모드전환에 한참이었다. 또한 ‘세련되었지만 비교적 건조하다’는 그간의 평가와 달리 감독 데뷔작은 “물기있는 이야기, 땅에 발을 붙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감독이 떠안아야 하는 긴 공정에는 완전히 다른 괴로움과 신비로움이 있다”며 새 학교로 전학온 아이 같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호기심과 설레임 그리고 약간의 떨림을 안은.

- 이런 영화

원래 이 영화의 제목은 <숲>이었다. “단테의 <신곡> 중 ‘30대 중반에 어두운 숲 한가운데서 길을 헤매이고 있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욱 명확해질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갈수록 모호해져가고 있다는 생각” 이 영화의 근원이 되었다. 얼핏 베스트셀러인 <유혹의 기술>(The Art of Seduction)에서 따온 것 같은 이 영화 제목의 의미는 유혹의 ’기술’(記述)이다.

한눈에 반한 여자를 유혹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 유혹의 틀이 만들어져 있었단 걸 알게 됐을 때의 황망함, 가까운 사람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해라는 발견 등이 이 영화를 싸고 있는 요소들이다. “관계, 존재, 행복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는 순간, 오히려 그 3가지 요소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이 영화를 “유혹되면서 파괴되고 파괴되면서 발견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또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풍차그림을 보며 자위를 하던 친구에 대한 이미지, 함께 작업하던 어시스턴트가 풀어놓았던 목욕하는 옆집 여자를 훔쳐보았던 관음의 기억도 속속들이 숨어 있다. 이야기는 크게 보면 스릴러적 진행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 ‘스릴러’라는 표현은 어쩐지 소비자용 같고 그보다는 허리 뒤춤에 이야기를 감추고 조금씩조금씩 꺼내놓는 방식”이 될 거라는 <유혹의 기술>은 내년 4월 중 크랭크인을 목표로 마지막 시나리오작업 중이다.

- 시놉시스

인테리어디자이너 영민은 아내 수미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어느 날 영민에게 40대 부동산 중개업자 노철호가 사무실 개조를 의뢰한다. 우연히 책상에 놓인 노철호의 젊고 매력적인 아내, 지미의 사진을 보며 잠시 아득해지는 영민. 이후 철호 부부와 영민의 부부는 몇번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철호 부부는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있다. 잦은 만남 속에 영민과 지미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밀월여행까지 떠나게 된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영민은 아내 수미가 사실은 지미 부부와 원래 알고 있었다는 의심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나 감독, 너 배우? 웃기는 부부들

<달려라 장미> | 김응수 감독

-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달려라 장미>는 이상한 눈을 가진 두명의 화가 덕분에 빛을 보게 됐다. 김응수 감독은 지난해 여름에 이미 <달려라 장미> 초고를 썼지만, “이게 영화가 되겠느냐”는 몇몇의 핀잔에 시나리오를 컴퓨터 깊숙이 묻어둔 상태였다. 그러나 우연히 초고를 본 두 사람이 재미있어 했고, 또다시 우연하게도 그들은 모두 화가였다. 김응수는 “음, 재미가 있나보다”라는 자신을 얻어 초고를 쓰고도 두 계절이나 지난 뒤에야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들었다. “<욕망>은 정적인 영화였다. 하지만 사람 마음속에서 변화무쌍하게 소용돌이치는, 역동적인 감정이 또한 욕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엔 말도 많고 행동도 많은 동적인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것이 <달려라 장미>의 탄생 배경. 그리고 놀랍게도 <달려라 장미>는 “굳이 정의하자면 한국형 코미디”다.

김응수가 그토록 쉽게 <달려라 장미>를 포기한 데는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 외에도 코미디를 잘 모른다는 그 자신의 머뭇거림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의 전작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와 <욕망>. 고민 많은 영화들을 찍은 이 감독이 과연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까. 그러나 김응수는 험난한 나라 네팔과 인도를 여행하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얻었고, 돌아와선 즐거운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다고 했다. 독신인 탓에, 영화의 핵심이 되는 결혼과 이혼은 잘 몰라서, 마음에 떠오른 상황을 현실에 적용해보면서 조금씩 살을 덧붙여나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너 같은 남자는 처음 본다”면서 침을 뱉은 여자마저 있었지만, 지금 그는 “뒤집어지게 웃기는 대사”에 밑줄을 쳐가면서 자신만만하게 <달려라 장미>를 준비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저예산예술영화제작지원 사업지원작으로 뽑힌 것을 보면, 그 웃음의 코드에 동감하는 사람은 감독 한 사람만은 아닌 듯하다.

- 이런 영화

<달려라 장미>는 어느 부부의 하루, 그리고 그들이 이혼하고 나서 함께 보낸 또 다른 하루를 세밀하게 기록하는 영화다. 담담한 것 같다가도 느닷없이 튀어오르고, 무게를 잡는 듯싶더니 체면을 땅에 처박는 코미디. 김응수는 <욕망> 후반작업을 하던 무렵 너무 심심해서 TV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TV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단련한 감각을 이 영화에 쏟아부었다. “너 TV 참 많이 봤구나”라는 것이 시나리오를 읽은 친구들의 코멘트. 그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너무도 능숙한 연기자로 변신하는 한국인들이 신기해서” 허황된 꿈을 꾸는 이 부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달려라 장미>의 부부는 처음 만난 척 비디오카메라 앞에 나란히 앉아 어색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 각각 유명한 영화감독과 배우 심은하를 라이벌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하루는 서글픈 희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고 닿지 못할 꿈에 슬퍼하는 보통 사람. 김응수는 <달려라 장미>를 “고상하진 않지만, 거친 에너지를 품은 한국적인 코미디”로 만들 결심이다.

- 시놉시스

남대와 장미는 어린 아들을 둔 부부다. 오해와 우연이 겹치면서 인연을 맺은 이 부부 사이에는 결혼기념일마다 그들에게 엽서를 보내는 한 친구의 존재가 껄끄럽게 얹혀 있다. 장미는 그가 쓴 소설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가 자신을 잊지 못해 토해낸 연서라고 착각하면서 은근히 기뻐한다. 이들의 결혼기념일을 지켜보는 1부가 지나면, <달려라 장미>는 2년을 뛰어넘어 이혼한 처지가 된 두 사람의 하루로 다가간다. 남대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남루한 백수로, 장미는 월 50만원을 받는 보습학원 국어강사로 살아간다. 외로운 남대는 자신을 홀로 남겨둔 장미를 원망하지만, 이들에겐 아직 3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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