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아리랑> 평양 시사회 다녀온 임범 기자의 북한영화인 취재기
2003-10-14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남북영화교류 일보 전진!

미션1: 이두용 감독의 <아리랑>을 북한에 널리 알릴 것.

미션2: 남북 합작영화 제작을 성사시킬 것.

미션3: 대종상영화제를 남한과 북한이 함께하는 행사로 바꿀 것.

미션4: 남한의 영화진흥위원회가 북한과 접촉할 창구를 확보할 것.

미션5: 북한 특산품 수입 등 경제교류를 추진할 것.

지난 9월30일부터 10월4일까지 남한 영화관계자 6명(기자 빼고)이 평양을 다녀왔다. 이 북한 방문단의 구성은 조금 복잡했다. 그룹으로 나누면 (1)주수도 주코그룹 회장과 주코그룹 산하 제이유엔터테인먼트의 호수정 사장, (2)<아리랑>을 제작한 시오리엔터테인먼트의 이철민 대표와 조성인 이사, (3)영화인협회 신우철 이사장, (4)영화진흥위원회 남북영화교류소위 위원인 이민용 감독 등 4개로 나뉜다.

이중 제일 먼저 북한과의 교류를 시작한 건 (2)번팀, 시오리엔터테인먼트이다. 이 팀은 지난해 10월 <아리랑>을 들고 평양에 가서, 북한 문화예술인과 시민 300명을 상대로 1차 시사회를 가졌고 남북영화 합작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다. 그뒤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도 방향을 다각화하기 위해 (1)의 주코그룹과 손을 잡았다. 주코그룹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상품을 유통시키는, 암웨이와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른 방식의 마케팅 기법으로 성장해 많을 땐 하루에 90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회사다. 수년 전부터 영화쪽에도 관심을 갖고서, 강수연이 모처럼 주연한 영화 <써클>에 투자했다.

(3)의 신우철 이사장은 지난해에도 시오리엔터테인먼트와 평양을 같이 갔고, 영화인협회가 주관하는 대종상영화제에 북한쪽을 참가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었다. (4)는 영진위가 남북영화교류에 나서기 위한 일종의 탐색전으로 이번 평양행에 동참했다. 그러니까 위의 미션들 중 1은 (2)그룹의, 2는 (1)과 (2)그룹의, 3은 (3)그룹의, 4는 (4)그룹의, 5는 (1)그룹의 미션인 셈이었다. 이런 일들이 다 남북영화교류라는 큰 틀에서는 한 가지나 다름없었다.

미션1은 성공적이었다. 10월2일 평양국제영화회관(평양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 안 300석 규모의 상영관에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대학, 김형직사범대학, 음악무용대학 등 4개대 학생과 북한 문화예술인들이 꽉 들어찬 가운데 <아리랑> 시사회를 열었다. 북한영화 <살아있는 령혼들>(2000)도 함께 틀었다. 시사회 반응이 좋아, 상영 뒤 관객이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다음날인 3일 북한쪽은 <아리랑> 필름프린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을 방문단에 통보해줬다. 북한 조찬구 문화성 부상(남한식으로 문화부 차관)은 “남한 필름이 이렇게 공식절차를 거쳐 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된 건 처음”이라며 “<아리랑>이 북쪽 전체에 상영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말했다.

미션2, 3, 4는 진전이 더뎠다. △남북영화축제 추진 △남북영화 합작 등을 추후에 실무협의해나가기로 했지만 구체적인 얘기는 초보적인 선에 그쳤다. 남북영화축제에 대해서는 북한쪽이 비교적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대종상과는 별도로 추진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러나 남북영화 합작의 길은 쉽지 않아 보였다. 시오리엔터테인먼트쪽은 지난해 방북 이후 <고구려의 혼>이라는 시나리오를 북쪽에 전달하면서, 북한 여배우를 출연시키고 개마고원 등 북한 몇곳에서 촬영하는 형식으로 합작하자는 제안서를 이미 낸 상태였다. 북쪽의 답은 평양에 있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선에서 그쳤다. 남한과 북한의 영화미학이 다르다는 점이 합작에 걸림돌이 되겠지만, 거기에 더해 북한의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커보였다. 북한이 시나리오와 연출부터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서는, 남한과의 합작에 쉽게 응하기 힘들 것 같았다.

정치·사회·문화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게 영화인 만큼 끈기와 인내심 없이 남북 영화교류는 힘들 터. 그럼에도 평양에서 만난 북한 영화인, <살아있는 령혼들>의 김춘송 감독과 인민배우 김윤홍은 인상도 부드러웠고 말에는 유머가 넘쳤다. 37년 동안 150편에 출연한 57살 노장배우 김윤홍의 말. “우리 영화인들이야 욕심낼 게 뭐 있습니까. 감독이 아무리 잘돼봤자 감독이고, 배우가 아무리 못 돼도 배우인데. 우리가 자주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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