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의 일본. 대대로 근위병을 지냈던 다케미카즈치 가문은 제정 이후 반정부 조직의 진압을 도맡아오다가 살인청부조직으로 바뀌었다. 이 가문에 속한 유키(샤쿠 유미코)는 뛰어난 검술을 지닌 열아홉살의 소녀 킬러.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가문의 두목 뱌쿠라이(시마다 규사쿠)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맞서지만, 목숨만 겨우 건진다. 부상입은 몸으로 조직의 부하들을 피해 도망하던 유키는 외딴 곳에서 여동생과 단둘이 사는 청년 다카시(이토 히데아키)를 만난다. 그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유키는 복수할 기회만을 노린다.
■ Review<프린세스 블레이드>는 1970년대 출간됐던 일본 만화 <슈라유키 히메>가 원작이다. 고이케 가즈오와 가미무라 가즈오가 그린 이 작품은 1973년과 1974년에도 영화화된 바 있다. 고이케 가즈오는 <새끼 달린 이리>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아들을 등에 업고 다니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잔인한 칼날짓을 서슴지 않는 검객을 그린 이 작품도 역시 영화화됐는데, 72년 <아들을 동반한 검객>이 그것이다. 특히 <새끼 달린 이리>는 맹인 검객의 활약을 다룬 <자토이치>와 함께 일본에서 손꼽히는 무협만화로 알려져 있다.
이쯤에서 짐작했겠지만 <프린세스 블레이드>는 여주인공 ‘유키’를 비롯해 일본 사무라이들의 검술장면이 핵심인 영화다. 원작과 달리 시간적 배경을 근미래로 옮겨왔지만 그 미래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근미래의 전사들이 날렵한 총 대신 고풍스러운 장검을 휘두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무들이 빽빽한 어두운 숲속에서 와이어를 단 배우들이 몇 차례 공중 칼부림을 벌인다. 빠르고 간결하게 수직·수평으로 내지르는 검술액션은 <블레이드2> <영웅>에 참여했던 무술감독 견자단의 솜씨다.
인상적인 건 주인공 유키의 캐릭터다. 배우의 연기가 뛰어난 건 아니다. 입술을 야무지게 포개고 적개심 가득한 시선으로 상대방을 노려보거나 제 키의 절반 길이나 되는 칼을 휘두르면서 “이야압!” 하고 기합을 넣는 게 전부이지만 그것이 나이 어린 킬러 유키의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진다. 왜소한 몸집이 복수심에 불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양새가 때론 안쓰럽게 보일지라도 유키는 씩씩해서 사랑스럽다. 다카시의 인상이 상대적으로 연약해서 유키의 기에 눌리는 탓도 있겠지만 유키는 자신을 돌봐준 다카시에게 모든 걸 의지할 생각이 추호도 없을 만큼 당차다.
<프린세스 블레이드>는 <링> <주온1> <주온2> 등을 제작했던 다카 이치세가 제작했다. 음악은 <공각기동대> <아바론> 등의 작업에 참여했던 가와이 겐지가 맡았다. 여기에 원작의 인기까지 더해 <프린세스 블레이드>는 지난해 일본에서 크리스마스 바로 전주에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