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8일 오후 프레스센터 19층. 예상보다 마른 체구에 평범한 옷차림을 한 배우 정이건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99년 <중화영웅> 이후 4년 만에 <쌍웅>의 홍보차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공항이 깔끔하고 예뻐졌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요란한 광둥어 억양에도 그의 목소리는 무척 조용해서 가끔씩 기자들의 웅성거림에 묻히기도 했다.
경찰과 심리학자의 미묘한 대결을 그린 영화 <쌍웅>에서 그는 올곧은 이성과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경찰을 연기한다. 자신의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으로 “건물 옥상에서 옥상으로 뛰어넘는 장면”을 꼽더니 “자신이 없어서 대역을 쓰려다가 배우들끼리 서로 격려하며 몸소 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공동경비구역 JSA> <색즉시공> 등의 한국영화를 봤다며 “배우들의 연기가 대범하고 개방돼 있다. 나라면 저렇게 했을까 싶을 정도다”라고 말했고, 할리우드 진출 계획을 묻자 “배우란 위치는 정말 수동적이어서 누군가 다가와서 선택해줘야 뭘 할 수 있다. 제의를 받으면 당연히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정이건은 작품선택의 기준으로 “감독님과의 의사소통”을 들었다. “홍콩영화는 시나리오가 계속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하더니 느닷없이 손을 들어 기자들에게 질문한다. “한국에서는 시나리오가 매일매일 바뀝니까?” 그리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통역관의 대답을 기다렸다.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정이건은 소박하고 겸손하면서도 호기심에 솔직한, 참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