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쳐진 밑줄은 몰상식의 흔적일 수도 있겠지만, 밑줄 친 누군가의 내면과 ‘접속’하게 되는 ‘코드’일 수도 있다. 게다가 ‘다음엔 이 책을 보세요’란 언급까지 적혀 있다면, ‘타인에게 말걸기’를 시도하는 익명의 발신자가 궁금하지 않을 리 없다. 진척없는 연애보다 독서가 위안인 20대 여성에겐 이런 숨바꼭질이 자기를 짝사랑하는 남자가 제안한 지적인 연애게임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사랑은 이같은 착각에서 시작되는 오인의 판타지다. 공개적으로 줄쳐진 기호들은 은밀한 ‘작업’처럼 해석되고, 보이지 않는 발신자는 수신자의 상상 속에서 미화된다.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는 이런 참신한 발상에서 피어나는 ‘로맨틱 연애 추리담’이다. 이 소설은 주요 설정상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이하 <봄곰>)의 원작이라 할 만하다.
프랑스 소설의 한국식 변용은 <위험한 관계>가 <스캔들-남녀상열지사>가 될 때처럼 철저히 한국적 정서에 부합하는 장르 공식에 따라 이루어진다. 초반에 웃겨주고 막판에 감동주려는 요지부동의 뼈대 위에, 청춘 스타들의 익숙한 이미지와 재담거리 에피소드들이 아기자기하게 살을 바른다. 버거킹과 까르푸, 지하철 같은 도심 공간은 CF계에서 날리던 용이 감독 스타일로 윤종신의 발라드에 맞춰 판타지화된다. 결코 코미디가 아닌 원작으로부터는, 상상적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천착 대신 로맨틱코미디의 유구한 교훈만을 추려낸다. 그림 속 왕자보다 당신 주위를 살피라는. 한데 원작과 달리 왕자는 왕자대로 공주를 만나고, 귀염둥이 배두나는 그녀대로 멋진 김남진과 맺어지니, “Don’t make it sad movie”를 흥얼대는 해피엔딩 주술은 일말의 그림자도 없는 쌍쌍파티로 실현된다. 로맨스의 신비화보다 누추한 일상성이, 기호 뒤에 숨은 허구적 대상보다 소통 가능한 현실적 대상이 소중하다고 말할 때조차 <봄곰>은 도리없이 허구적인 로맨틱판타지인 것이다. 남들은 쉽게 하는 연애가 내겐 왜 이리 힘들까라는 의구심은, 연애의 조건에 대한 봉그랑식 탐색으로 이어지기보다 가까운 곳에 사랑이 있다는 통념을 재현하는 것으로 뻔하게 봉합될 뿐이다.
관객을 달콤하게 감싸려는 <봄곰>은 다분히 키치적으로 기성 문화코드를 세속화하며 장르적 안정성을 강화한다. 애초 제목이 <밑줄 긋는 남자>였던 것도, 바뀐 제목이 하루키 인용이란 것도, 스스로 독창적이기보단 기존의 독창성을 대중적이고 평균적으로 회수하기 바쁜 요즘 트렌드에 편승한다. 봉그랑 소설 속의 문학서들은 대중이 소화 가능한 고야나 르누아르의 부담없는 화집으로 바뀌고, ‘빈센트 반 고갱’식의 유머는 교양화된 서양미술을 12세 관람가 수준에 맞는 코미디로 안착시킨다. ‘사랑의 종착역 광한루’라는 멘트는 남원에서 결실을 맺는 <불어라 봄바람>과 연결되면서, <봄날은 간다> 인용과 더불어 <봄곰>의 봄타령에 모종의 맥락을 부여하는 듯도 하다. <불어라 봄바람>의 ‘좀팽이’와 <봄곰>의 ‘미련곰탱이’는 만화적 장면들과 윤종신 음악으로도 서로 묶이면서, 짝짓기의 계절 ‘봄날은 온다’고 외친다.
과도한 털털함과 눈치없음 탓에 소개팅마다 퇴짜맞는 현채에게 도서관 화집에 적힌 사랑 고백은 계쏙 다른 책들로 이어지면서 보이지 않는 왕자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밑줄 대신 메모를 택한 <봄곰>은 으레 감상적 프로포즈로 여겨질 만한 바로 그 메모들 같은 상투구들로 가득하다. 딸에게 유치하다고 꼬집히면서도 <장미꽃을 꺾는 남자>라는 자신의 책을 과장된 감상성으로 자랑하는 소설가 아버지는 이 영화가 지향하는 감수성의 단면을 드러낸다. 현실에 끼어든 만화적 환상들은 꽤 능란한 장면 전환으로 다채로운 결을 만들어내지만, 뽀시시한 세트에 앙각과 슬로모션의 짧은 컷들로 편집된 클라이맥스는 진부한 MTV풍 멜로로 머문다. 곰인형과 벙어리장갑 같은 로맨틱 소품들은 이런 취향의 20대 이하 여성을 타깃으로 삼은 기획을 노출한다. 그래서 인물들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깡다구 넘쳐나던 배두나뿐 아니라 송강호를 무참히 찔러 죽이던 오광록까지― 앞다투어 이 시대의 캐릭터, 귀여움을 과시한다. 잘 나가는 엘리트들 대신 소박한 선남선녀가 사랑받으려면 귀엽기라도 해야 하니, 유아틱한 제스처로 만화 같은 귀여움을 남발하는 것 자체가 흠은 아닐 테다. 하지만 인용과 클리셰로 치닫는 <봄곰>의 키치성은 별다른 대중문화적 의미없이 너무나 ‘안전빵’인 장르 문법과 캐릭터에 종속될 뿐이다. 몇번의 폭소와 약간의 감상, 아이돌 스타의 재롱에 맘 편히 의탁하고 싶다면 무리가 없지만, <밑줄 긋는 남자>의 지적 긴장감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꽤 다른 영화를 볼 각오를 해야한다.
::원작,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소설에 그어진 밑줄을 따라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원래 제목이 <밑줄 긋는 남자>였다. 카롤링 봉그랑의 소설 <밑줄 긋는 남자>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소설에 밑줄을 긋는 남자에서 화집에 메모를 남기는 남자로 설정이 바뀌기는 했지만, <봄날의 곰을…>의 제작사는 봉그랑으로부터 판권을 사기 위해 번역한 시나리오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봉그랑은 이 시나리오가 새로운 창작물이므로 굳이 판권을 살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로맨틱하고 책을 좋아하는 여자와 미지의 남자, 짝사랑에만 도가 튼 털털한 여자와 그 곁을 맴도는 고등학교 동창생. 이렇게 캐릭터도 다르지만, <밑줄 긋는 남자>가 없었다면 <봄날의 곰을…>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봉그랑의 93년작 <밑줄 긋는 남자>는 콩스탕스가 도서관에 일반회원으로 등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콩스탕스는 로맹 가리, 혹은 그의 필명인 에밀 아자르를 무척 좋아해서 그의 흔적이라면 모두 찾아다녔지만, 한계에 이르고 만다. 이미 죽은 로맹 가리는 더이상 소설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콩스탕스는 다른 작가에게 취미를 붙이기 위해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가스통 르루 등을 섭렵해보지만, 지루하기만 하다. 그 순간 그녀는 폴리냑의 <오렌지빛>이라는 책에서 “당신을 위해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라는 메모를 발견하고, 그 권유에 따라 도스토예프스키의 <노름꾼>을 대출한다. 그때부터 소설에 그어진 밑줄을 따라, 콩스탕스는 환상을 키워간다. 젊은 여성의 심리를 세심하게 꿰뚫는 묘사와 특별한 사건이 없으면서도 경쾌하게 달려가는 문체가 인기를 얻은 소설이다.
김현정 para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