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도가 가보로 전해지는 안동의 열녀가문. 이 집의 막내딸인 민서(신애)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하지만, 딸을 험한 도처로 내보낼 수 없다는 아버지(송재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 민서를 돕는 건 평소 아버지에게 핀잔 듣기 일쑤인 어머니(송옥숙). 결국 민서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야반도주에 성공하고 간신히 대학에 입학한다. 한편, 첫눈에 민서에게 반한 신입생 주학(오지호)은 그녀와의 ‘하룻밤’을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여차하면 가슴에서 은장도를 꺼내드는 민서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다.
■ Review“니는 열녀가문의 피를 가지고 태어났다카는 기를 한시도 이자뿌서는 안 된대이.” 난(亂) 중에도 정절을 지켰던 조상의 기개를 한시도 잊지 말라는 아버지의 엄포는 스무살 민서에게 철칙이다. 칼을 맞을지도 모를 위기에 처하면서도 민서와 동침을 원하는 캠퍼스 남정네들의 욕망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상황이 <은장도>의 주된 갈등. 여기에 내숭을 떨지만 사실은 프리섹스주의자인 경주, 걸걸한 성격 때문에 남자친구가 없는 하사관 출신 가련 등의 캐릭터가 가세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몽정기>와 <색즉시공>의 설정들을 떠올리게 하는 전반부를 지나 중턱을 넘으면 <은장도>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겨누는 자세를 취한다. <개같은 날의 오후>에서 한여름 아파트 옥상을 점거한 다음 남성들을 향해 이유있는 악다구니를 퍼붓던 송옥숙을 남편에게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다” 열녀문을 무너뜨리는 등 반란을 주동하는 민서 엄마 역으로 캐스팅한 것은 유효하다. 그러나 곧이어 남자친구의 발기부전 치료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인의 몸짓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이어지는 걸 보면 이는 구색맞추기라는 비난을 면키 힘들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최대 약점은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시트콤이라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자 셋 여자 셋’이 벌이는 소동의 나열만으로 엮어놓은 탓에 영화의 줄기는 앙상하고 매듭은 헐겁다. 수시로 등장하는 카메오 또한 역효과를 불러올 뿐이다. 심지어 킹카와 가련의 첫 만남 장면에서 일어나는 소동은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전에 써먹었던 것이기도 하다. 시트콤 작가 출신(<남자 셋 여자 셋> <세친구>)으로 지난해 <보스상륙작전>을 들고 충무로에 입성한 김성덕 감독은 이번에도 전작에서 들었던 비판을 듣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