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시작은 미미하였으나,<황산벌> 배우 정해균
2003-10-22
글 : 권은주
사진 : 이혜정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남자가 <황산벌> 기자시사회장 무대에 날렵하게 뛰어올랐다. <황산벌>은 두 나라의 군대가 등장하는 ‘인력 블록버스터’인 탓에, 그는 신라 진영 대열 끝부분 시야 가장자리에 간신히 걸릴 뿐이었다. 배역은 이름도 없는 암호해독관.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오르는 서른다섯명의 신라군 중에서 열일곱 번째 자리를 차지한 정도지만, ‘거시기’가 무얼 뜻하냐고 윽박지르는 김유신 앞에서 눈물을 글썽, 하는 표정만은 무명이 아까웠다. “이건, 이건… 죽어도 모르겠심더”라고 서글프고도 절박하게 고백한 그의 이름은 정해균이었다.

같은 제작사의 영화 <공포택시>에 출연했던 인연으로 황산벌 전투에 참전하게 된 정해균은 눈에 띄는 조연배우들이 대부분 그렇듯 연극무대에서 살아왔다. 여자처럼 곱게 휘어지는 몸짓, 서른여섯 나이에도 아직 해사한 동안과 치렁한 머리채, 바뀌는 무대를 따라 리듬을 타는 애드리브는 먼 객석에 앉아서도 그를 기억하고 싶도록 만들곤 했다. 그런 정해균이 연기를 시작한 지 5년 남짓 되었다는 건 뜻밖이었다. “처음엔 연출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거하고 할 수 있는 거하고는 다르더라고요. 어쩌면 그전엔 내 욕망을 억지로 눌렀던 건지도 모르고.” 그는 이소룡의 영화처럼 멋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서울예대에 진학했지만, 참 먼 길을 돌아 엉뚱한 정거장에 도착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십년도 더 전에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던 놀기 좋아하는 아이에겐 이 길이 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착한 말투가 주는 수줍은 인상과는 다르게, 정해균은 코미디가 필요했던 <황산벌>의 이준익 감독이 찾을 수밖에 없는 배우였다.

영화와는 먼 곳에서 지내온 정해균은 아직도 카메라를 잘 모른다고 했다. <공포택시>에 출연한 뒤에 너무 부끄러워서 뒤통수만 나오는 학생들의 단편영화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는 아직도 스크린을 채우는 자신의 얼굴이 “이상하고, 초라하고, 너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해균은 그런 인상에 만족하기도 한다. 피투성이 전쟁터에서 유일하게 책상에 파묻혀 사는 암호해독관, “경상도 사람으로서는 구사가 불가능한” 전라도 사투리를 어색하게 따라해야 하는 그는 초췌하고 피곤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두 장면 출연할 뿐인데도 온갖 연구에 골몰했던 정해균은 코미디를 만들고 과장하고 거품을 걷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그 노고는 한자에서 ‘거’자와 ‘시’자, ‘기’자를 찾아내 100만 가지 넘는 ‘거시기’ 조합을 만들어낸 암호해독관의 그것에도 필적할 것이다.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아 한때 마음 편한 시골 순경이 되고 싶어했던 정해균은 곧 <선샤인 파출소> 촬영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대사도 적어 웅얼거리는 한줄과 제대로 발음하는 대사 한줄뿐. 줄기차게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서 절을 지키는 더벅머리 스님 역할이라 한다. 별들이 반짝이는 스크린에서그는 또 몇번째 크레딧을 차지하게 될까. 그러나 정해균은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은 배우인지 몰라도, 결코 이름없다 내쳐서는 안 될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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