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아버지의 후광, 놀 언덕이 되어주었죠`,<아카시아> 배우 김진근
2003-10-29
글 : 박혜명
사진 : 정진환

선이 굵은 남성적인 연기로 6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김진규의 막내아들 김진근(34)은 건축과 경영학을 공부하다 뒤늦게 연기를 시작했다. 두형과 누나는 일찌감치 연기를 본업으로 삼았지만, 막내아들만큼은 사업가로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중학생이었던 어린 시절 미국으로 보내졌다. 마음 깊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그로서는 결정에 순순히 응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커지는 걸 스스로 막을 도리가 없었다. “건축이나 경영을 공부해서 직업을 삼는다면, 남자로선 멋진 일이 되겠지만 행복해질 자신은 없더군요. 연기를 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연기를 하겠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을 때 ‘허허’ 웃으시더니 ‘하려면 2등말고 최고가 되라’고만 하셨어요.”

어느 가정이 이처럼 연기를 공부하기에 좋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권유와 어머니의 도움으로 대학로의 한 연극무대에 오른 95년, 그는 햄릿이 됐다. 당시 함께 출연한 신성일의 아들 강석현과 아버지의 ‘그늘’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대스타의 아들로 자란 두 사람에게 아버지의 그늘은 한없이 든든하기도 했지만, 또한 무거운 것이기도 했다. “제가 석현이한테 그랬어요.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자고. 우리에게 놀 언덕을 마련해주신 분들에게 오히려 고마워하자고 했죠.” 김진근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삶은 가난과 실향의 고통에 빠진 대중에게 희망과 웃음을 주는, 진정한 광대의 삶이었다. 스스로 분장을 하고, 필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극 안에 강하게 몰입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뒤에 그의 연기 지표가 됐다.

하루 3∼4시간의 수면과 6개월 동안 흘린 땀방울을 뒤로 하고 연극은 막을 내렸다. 데뷔작 <햄릿>은 어설픈 배우에게는 연기 인생을 그르칠 만한 선택이었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기본기를 다져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안겨준 계기가 됐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뉴욕에서 4년째 연기 공부를 하며 틈틈이 오디션을 보던 중 우연히 강제규 감독과 대면하게 된다. 99년 뉴욕영화제에 <쉬리>를 들고 참석했던 강 감독이 통역할 사람을 구하다가 김진근과 맞닥뜨리게 된 것. 그때 <단적비연수>의 출연 제의를 받게 되었으며, 뒤에 몬트리올까지 강 감독 일행과 동행하여 박기형 감독과도 만나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3년 동안 두편의 작품이 무산되고, 두편의 작품이 스크린에 걸린 지금, 그는 조금 여유를 되찾은 얼굴이다. “지난 3년은 제 마음속에 한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만큼 저를 단단하게 만든 시기인 것 같아요.” 거대한 아카시아 나무처럼 관객의 마음에 파고들어갈 연기를 해내는 것, 3년차 배우 김진근에게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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