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제2의 <라이온킹> 꿈꾸는 디즈니의 <브라더 베어> 뉴욕 시사기
2003-11-10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다른 존재, 다른 세상에 대한 관용과 이해

지난 10월20일, 뉴욕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뉴암스테르담극장에는 붉은 카펫이 깔리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브라더 베어>의 첫 시사가 열렸다. 뮤지컬 공연으로 유명한 브로드웨이 한복판에 위치한 뉴암스테르담극장 벽에는 <라이온 킹> 뮤지컬의 거대한 간판이 걸려 있다. 그러고보니 <브라더 베어>는 <라이온 킹>과 꽤 인연이 깊은 작품이다. 10년 전 <라이온 킹>의 성공에 고무된 마이클 아이스너는 새로운 동물애니메이션의 기획을 요구했고, 그 결과 ‘숲의 왕’ 곰이 등장하는 <브라더 베어>가 탄생한 것이다. 어쩌면 뮤지컬 <라이온 킹>이 상영되는 뉴암스테르담극장에서 <브라더 베어>의 시사를 가진 것에는 그런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침체에 빠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디즈니의 최대 히트작 <라이온 킹>의 정기를 받기 위해서. 게다가 <브라더 베어>는 뮤지컬로 만들기에도 적합한 내용과 주제를 가지고 있다.

곰의 눈으로 본 세상

<뮬란> <릴로 & 스티치>에 이어 플로리다스튜디오가 만든 세 번째 작품 <브라더 베어>의 무대는 1만년 전, 빙하기 말기의 태평양 연안 북서부 지역이다. 부락의 무당인 타나나는 세 형제에게 토템의식을 내린다. 맏형 시트카는 리더십의 독수리, 둘째형 데나히는 지혜의 늑대 그리고 막내인 키나이에게는 사랑의 곰. 두 형은 만족하지만, 멋진 용사가 되고 싶은 키나이는 ‘사랑’이 불만이다. 어느 날 키나이는 곰을 쫓다가 위기에 처하고, 시트카의 희생으로 겨우 살아난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키나이는 곰을 쫓아가 겨우 죽이는 데에 성공한다. 그런데 곰을 죽인 순간, 이상한 빛이 내려오더니 키나이는 그렇게도 저주하던 곰으로 변해버린다. 곰으로 변한 키나이를 본 타나나는 “너를 곰으로 변형시킨 건 시트카의 영혼이다. 빛이 대지와 만나는 산으로 가면 형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해준다. 키나이는 엄마를 잃은 아기 곰 코다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인간 중심’의 오만에 빠져 있었음을 자각한다. 그 잔혹하고 무서웠던 곰들은 실제로는 평화롭고 온순한 동물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인간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것뿐이다. 곰으로 변해버린 키나이의 목소리는 <글래디에이터>의 와킨 피닉스가, 코다는 아역배우 제레미 수아레즈가 맡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항상 등장하는 익살꾼 역의 말썽꾸러기 무스 러트와 투크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것은 캐나다의 코미디 배우 릭 모라니스와 데이브 토머스다.

<브라더 베어>는 한 청년이 이해와 사랑을 깨닫는 내용을 축으로 진행된다. 인간이 곰으로 혹은 다른 동물로 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다른 존재, 다른 문화, 다른 세상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브라더 베어>를 보다가, 잠깐 놀라는 순간이 있다. 키나이가 곰으로 변해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는 순간, 화면이 넓어진다. 일반적인 1.85:1 포맷의 화면이 그 순간부터 2.35:1의 와이드스크린 시네마스코프 포맷으로 바뀌는 것이다. 혹시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지만 변한 건 크기만이 아니다. 색감도 놀라울 정도로 풍성해지고 생생해졌다. 어딘가 적막해 보이던 세상이 생기로 가득 찬 느낌이 든다. 아니 실제로 화면 자체가 동적으로 변해 활기가 넘친다. 제작진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것이야말로 ‘곰이 보는 세상’이다. <브라더 베어> 제작진의 기본적인 철학은 ‘이토록 큰 세상을 담아내기엔 인간의 카메라가 너무나 작다는 인식’이었고,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여준 것이다.

곰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정한 뒤 제작진은 북미의 인디언 설화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리고 ‘변형’을 발견했다. ‘문화적으로 변형 신화가 만들어진 것은 인생의 교훈을 가르치려 한 것… 그들은 동물이 단지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인간이라고 믿는다.’ 처음에는 <리어왕>을 이용하여 반항하는 아들이 곰으로 변한 다음 원래대로 돌아오기 위해 아버지에게 보상을 치러야만 하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브라더 베어>는 한 청년이 이해와 사랑을 깨닫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키나이의 인도자가 큰 곰 턱에서 아기 곰 코다로 바뀌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인간이 곰으로, 혹은 다른 동물로 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다른 존재, 다른 문화, 다른 세상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아직 어린 코다는 곰으로 변한 키나이에게 ‘어떤 선택을 내리든 두려움과 증오심을 갖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이야말로 9·11 이후 두려움과 증오심으로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미국의 집권층이 배워야 할 점이 아닐까.

자연을 믿음직스럽게 담아내다

<브라더 베어>는 무엇보다 눈을 즐겁게 한다. 곰의 시각으로 보이는 화면의 풍성함은 물론이고, 화면 곳곳에서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이 엿보인다. 불의 계곡에 있는 화산의 용암 분출장면이나 사방으로 흩날리는 폭설장면, 오로라가 대지를 덮는 장면 등 2D와 3D가 어울려 장관을 이뤄낸다. 제작진이 <브라더 베어>를 만들면서 역점을 둔 것 하나는 ‘자연을 믿음직스럽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19세기의 화가 앨버트 비어스타트가 그린 로맨틱한 터치의 서부 경관, 로키산맥, 요세미티의 그림은 <브라더 베어>의 출발점이 되었다. 앨버트 비어타스트는 ‘허드슨강파’(Hudson River School)의 일원이었는데, 그들은 야생의 이미지 표현에 능했으며 안개와 일몰을 사로잡기 위하여 드라마틱한 빛의 효과를 잘 이용한 화가들이었다. 그런 이미지들을 <브라더 베어>에서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

제작진의 기본적인 철학은 ‘이토록 큰 세상을 담아내기엔 인간의 카메라가 너무나 작다는 인식’이었고,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여준다.

<브라더 베어>의 시사가 끝나자마자, 스크린이 위로 올라가고 음악이 연주되었다. <브라더 베어>의 음악을 맡은 필 콜린스의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필 콜린스에 이어 티나 터너가 등장한다. <매드 맥스3>에도 출연했던 여걸 티나 터너의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 진귀한 경험이다. 티나 터너는 이미 무대를 떠난 지 오래고, 그간 공식적인 모습은 일체 드러내지 않았다. 티나 터너는 필 콜린스와의 개인적 친분으로 <브라더 베어>에 참여했고, 이번 특별공연에도 참여했다. <위대한 영혼들>(Great Spirits) 단 한곡만을 부르고 내려간 티나 터너가 못내 아쉬웠지만, 그녀는 오로지 그 한곡을 위해서 스위스에서 날아왔고 공연이 끝난 뒤 바로 돌아갔다고 한다. 프로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절대적인 우정이라고 해야 할까. 키나이와 코다의 우정을 보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브라더 베어>의 감독인 밥 워커는 이 애니메이션을 부시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타자에 대한 관용과 이해 그리고 사랑을 말해주는 <브라더 베어>는 이 어지러운 시대에 꼭 필요한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사랑을 비웃기는 쉽지만,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는 일은 어렵다. 큰형을 잃고, 곰이 된 뒤에야 비로소 사랑을 깨닫는 키나이처럼 우리는 어떤 고통과 희생을 치러야만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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