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참을 수 없이 섹시한,<참을 수 없는 사랑> 캐서린 제타 존스
2003-11-12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올려다보는 것보다 내려다보는 것이 어울리는 여자. 큐피드의 화살을 맞아 정신없는 남자에게 냉정한 심장으로 응수하는 <참을 수 없는 사랑>의 ‘꽃뱀’ 마릴린은 지금껏 캐서린 제타 존스가 보여주었던 도도함의 총결산이다. ‘조로’의 칼끝에 의해 조금 풀어 헤쳐진 드레스 앞섶만으로도 아찔함을 선사했던 그의 매력은 마릴린 먼로가 보여준 무방비의 백치미와 모니카 벨루치의 원시적 관능미와는 다른 축에 있다. 드세지 않지만 연약하지도 않은, 정복욕을 접고 숭배하게끔 만드는 그의 파워풀한 섹시함은 ‘생활용’이라기보다는 ‘관상용’이다. 지난 베니스영화제에 조지 클루니의 에스코트를 받아 리도섬에 당도한 그는, 까탈스런 어린 암고양이보다는 고혹적이고 성숙한 여신에 가까웠다. 적당히 그을린 건강한 피부와 진한 오렌지색 눈동자, 건방지진 않지만 꼿꼿한 거동, 무심하게 다이어트 코크를 주문하는 말투에는 고급스런 영국 악센트가 살짝 묻어났다.

“최근 몇년간의 스케줄은 거의 살인적이었어요, 내 스스로가 집시처럼 느껴질 만큼.” 실로 <트래픽> <아메리칸 스윗하트> <시카고> <참을 수 없는 사랑>으로, 또한 결혼에서 두 아이의 출산으로 이어지는 그의 21세기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과적상태로 내달린 몇년이었다.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나 10살 때부터 지역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깜찍한 소녀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15살 때 학교를 떠나 영국행 기차에 올랐다. “11년 동안 극장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나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매일 마녀처럼 구는 고약한 여배우들을 상대하면서 콩알만한 배역을 받아들곤 했죠. 내가 무엇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던 적도 많았어요.”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의 손을 잡아 끌어올리는 첫 번째 사람은 캐서린, 바로 자신이었다. “나는 꽤나 야망이 큰 사람이에요. 그것이 왜 내가 웨일스를 떠나 런던으로 왔는지, 또한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이유죠.” 1998년 당시 최고의 섹시남이었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호흡을 맞춘 <마스크 오브 조로>로 미국 관객에게 자신의 존재를 처음 알렸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스페니시”쯤으로 오해받았다. “한참 동안 사람들은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왔죠. 그러다 <엔트랩먼트>에서 정확한 미국 악센트를 구사하는 나를 보고, 그때서야 놀란 듯이 묻더라구요, 당신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아메리칸 스윗하트>에서 줄리아 로버츠를 시녀처럼 부리는 철딱서니 없는 여배우 그웬과 임신한 몸으로 남편을 위해 국경을 넘던 <트래픽>의 강인한 부인 헬레나를 거친 그의 집 앞에 드디어 <시카고>의 시나리오가 당도했다. 무대에서 단련된 그녀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벨마 켈리는 굉장한 역할이었어요. 모질고, 꼬여 있고, 특히 성실하지 않아서 좋았죠.” (웃음) 여동생과 통정한 남편을 쏴죽인 무서운 여자, 포효하듯 노래하고 스크린을 뒤흔들며 춤추던 그의 압도적인 연기에 아카데미는 여우조연상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시카고>를 끝내고 “모든 시나리오가 지루하고 시시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스티븐 소더버그를 통해 친해진 조지 클루니가 그에게 물었다. “코언 형제가 당신을 한번 보자고 하는데 만나볼래요?” “당연하죠!” 캐서린 제타 존스가 명망 높은 ‘코언 패밀리’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사반세기의 나이차가 나지만 9월25일, 같은 날짜에 태어난 남편 마이클 더글러스와 “연극이든 영화든 언제라도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는 그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엄마가 된 것”이라며 만약 아이들이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해도 절대 반대하지 않겠다고 한다. “배우는 세상에서 최고의 직업”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가진 두 가지 보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여자다. “가끔 사람들은 나에게 치고 올라오는 젊고 예쁜 배우들과 비교당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오는데,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나는 누구의 것을 빼앗아서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뺏길 거란 두려움이 없는 거죠.” 현재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터미널>(The Terminal)을 톰 행크스와 찍고 있다. 또한 남편과 함께 독립프로덕션을 비롯해 몇몇 영화사를 운영 중이다. “왜 사업에 손대냐구요? 50, 60살이 되어서 아무도 나를 캐스팅해주지 않을 때도 콧방귀를 끼며 ‘당신들 도움은 필요없어, 내 회사에서 영화를 만들지 뭐’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냉정한 직시를 통해 야망의 아우성에 솔직하게 응하는 캐서린 제타 존스, 이 ‘야심만만’ 아줌마는 노후대책까지 ‘참을 수 없이’ 당당하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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