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이라크 국경지대에서 칠판을 등에 지고 가르칠 학생을 찾으러다니는 리부아르와 싸이드는 각각 밀수품을 나르는 짐꾼 소년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쿠르드족 노인 행렬과 동행하게 된다. 틈틈이 이들을 가르치려 하지만 사람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 Review<칠판>에서 뭐니뭐니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황량한 길을 따라 칠판을 지고 걸어가는 사람이 보여주는 칠판의 압도적인 이미지다. 그것은 심화된 은유이다. 거듭 “길이 어디 있니?” 하고 선생은 묻고 아이는 짜증스레 “어디나 다 길이다”라고 말하는 중이다. 길(희망)이 아이들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란판(版) 브나로드?’ 하지만 계몽적이기엔 가난한 국경지대에서의 가르침은 너무 험난하다. 상황이 너무 절박하고 불신의 골은 너무나 깊다. 때문에 그들은 뛰고 도망치고 심지어 (사실상) 혼인빙자강습까지 해야 할 판이다. 선생들이 학생을 찾아 헤매는 웃지 못할 코믹한 여정은 이렇게 소통을 향한 구도(求道)의 길이 된다.
사람들에게 칠판은 그저 폭격을 피하는 방패나 들것이나 부목이나 빨래걸이 정도로의 의미로서만 반짝이지만 선생들은 쪼개 잘라버려 쪽칠판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학생을 얻기 위하여 칠판이 그렇게 되는 데 개의치 않는다. 이들이 본의 아니게 국경을 타고 넘는 ‘경계인’들과 뛰거나 심지어 기어서 함께하는 며칠간의 이 로드무비는 마치 귀먹은 노인과 대화하듯 단순한 대화들을 느물느물 반복하다가 어느새 쿠르드족의 참혹한 기억과 사제간의 넘을 수 없는 소통의 불가능성이 암시된 국경에 도착한다. 그러나 물론 뜻밖의 감동이나 버릴 수 없는 착한 희망도 남겨둔다. 그런 점에서 <칠판>은 분명한 이란영화다.
사실, <칠판>과 같은 이란영화를 이해하는 데 대단한 독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이야기는 단순하고 화면은 소박하다. 세계의 오지에서, 자본과 시스템의 수혜(혹은 저주?)를 받지 못한 가난하고 못 배운 작은 이들의 삶을 스쳐가는 미셀러니를 그것도 대개 며칠 동안만 추적한다. 그렇지만 근사하게 인생 그 자체가 포착된다. 시적이고 아름답다. 때문에 열여덟살 소녀가 장편영화로 칸에 입성하고 영화감독을 사칭하던 이도 진짜 영화감독이 된다. 영화에 관한 한 이란은 적어도 그런 곳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이 이란영화와 친숙하지 못하다면 그건 이란영화가 유통기한 지난 유럽 예술영화의 핀치 히터로 타석에 들어선 탓에 받는 오해와 선입견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유럽영화의 극복(이해)없이 이란영화의 참된 가치가 이해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창작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을 통해 진보해왔던 예술영화 자체의 한계와 부작용을 체감하지 못하면 이란영화의 ‘착함’은 그저 양순함이기 십상이다.
키아로스타미 이후, 한국에서도 비전문 배우가 끼어들어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가 지워지는 문법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정말 낯선 것은 이란이 너무나 변방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이란은 너무나도 멀다. 현실을 직시하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혼재되어 있는데도 그곳에는 마치 까마득한 옛 설화가 주는 안전함과 느슨함만이 있다. 이란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그런 점에서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장녀 사미라가 스무살에 만든 두 번째 장편작인 <칠판>은 ‘착하기만 한 이란영화’라는 느슨한 선입견을 재고하게 만든다. 꿈결 같던 ‘어떤 세계의 동산’은 학살의 기억을 안고 국경지대를 넘나드는 쿠르드족과 밀수품을 나르는 어린 짐꾼들의 행렬이 머무는 황량한 고준산령으로 바뀐다.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총탄이 날아드는 곳, 우리는 그곳이 <뉴욕타임스>나 <CNN>이 생색내며 염려하는 바로 지도상의 그곳임을 피해갈 수 없다. 그 점은 어쩌면 잊혀졌던 네오리얼리즘의 정수일 수도 있다. 칸이 이 영화에 대해 심사위원 대상으로 열렬히 화답했던 것도 아마 일단 여기에서부터일 것이다.
이란 영화들이 인생을 관조하는 소우주의 운문이고 리얼리즘영화들이 현실이라는 대우주의 산문이라면 사미라의 영화는 소우주와 대우주를 잇는 이음새에 대한 선 굵은 산문시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사미라는 그 이음새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기능으로 변모하는 칠판을 메고 전화(戰火)가 채 꺼지지 않은 땅을 가는 주인공들처럼 사미라도 카메라를 메고 그렇게 한다. 진정성이 그 이음새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숨이 턱에 차오를 지경에서도 어디 멈추기만 하면 풀어놓을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 내 수많은 ‘공동 저자’들을 조화롭게 끌어안는 이란영화 전통의 힘이며 세계를 렌즈 안팎에서 조화롭게 굽어보는 마흐말바프가(家)의 선한 시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관의 나이에 칸의 지지를 끌어냈던 그녀를 천재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 비전문 배우, 쿠르드족 노인들
“지뢰 어디 묻혔는지 우리가 알려줬지”
영화 <칠판>에서도 역시 많은 비전문 배우들이 사용되었다. 영화의 라스트신을 장식하는 할랄레 역의 베흐너즈 자파리를 빼놓고 모두가 비전문 배우였는데 그중에는 밀수품이나 장물을 나르는 짐꾼 아이와 동행하는 선생 리부아르 역할을 맡은, 사람 좋은 인상의 바흐만 고버디 같은 유명인도 있지만(그는 53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 상까지 받은 쿠르드의 영화감독이다) 대개는 모두 현지에서 찾아낸 이들이다. 국경을 넘나들며 밀수품을 나르는 소년들 모두 정말 목숨을 걸고 밀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비전문 배우들보다도 영화가 그 리얼리티나 동시대성을 환기하는 데 빚지고 있는 이들은 고향으로 되돌아가느라 애쓰고 있는 쿠르드족 노인들일 것이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만큼은 연출된 것이지만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할렙체 학살을 피해 이란으로 넘어온 이들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실제로 영화는 국경지대에서 지뢰가 어디 묻혀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할렙체 학살은 1988년 이라크의 후세인이 자국 내 쿠르드반군에 대한 군사적 원조를 통해 이라크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이란과의 접경지역에 있는 이 마을의 쿠르드족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던 사건이다. 이 일로 쿠르드족은 걸프전이 끝나고 이라크 비행금지구역 내 사실상의 국가인 자치구역을 갖게 되었고 그 이후로 고향으로 되돌아오려는 쿠르드족 행렬이 있게 된다.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행렬이나 화학공격에 대한 증언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들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