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해답을 주지 못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써클>
2003-11-12
글 : 박혜명
■ Story

조명구(정웅인)는 6명의 여자를 죽인 연쇄살인범이다. 다혈질인 여검사 오현주(강수연)는 사형을 구형하려 하지만 피고쪽 변호사 김병두(전재룡)는 그가 정신이상자라고 주장한다. 조명구의 동거녀 미향은 조명구의 살인이 제3자의 조종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증언하고, 김병두는 그 존재가 조명구의 전생과 연관이 있음을 알아낸다.

■ Review

<써클>은 어둡고 축축한 공간에서 출발한다. 이 집에 사는 남자는 피범벅이 된 시체 위에 그림을 그려넣고 그 옆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라면을 먹어치우는 사람이다. <양들의 침묵>의 렉터 박사처럼 잔인하고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가진 그는, 쉽게 말해 싸이코 살인마다. 헛소리를 지껄이고 이죽인다는 기본적인 특징 외에 버거킹 햄버거만 먹고 자신을 성기능 불구자로 착각한다는 특성도 가졌다. 터프한 여검사는 그가 무고한 여자들을 여섯 명이나 죽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격노하여 윽박지른다. 익숙한 미스터리스릴러의 외양을 띠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미향이 ‘산홍 님’의 이름을 거론하고 조명구의 전생이 개입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자신의 외양을 잊어버리고 만다.

<써클>의 본론은 설움과 슬픔으로 점철된 조명구의 전생, 조선시대의 화가 광림에게 상당한 비중을 둔다. 조명구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전생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토록 중요한 전생이 어떤 의문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광림의 삶과 사랑은 드라마틱하게 그려지는데 살인사건과의 연결고리는 보이지 않는다. 검사와 변호사가 열띠게 대립하는 법정 공방도 내용이나 긴장감없이 별개로 진행되고, 의미심장하게 묘사됐던 연쇄살인범의 특징은 살인사건의 정체를 해명하는 열쇠가 되지 못한다. 영화는 마지막 반전에 이르러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포기하고 엉뚱하게 감동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한다. 결국 미스터리스릴러가 책임져야 할 질문들은 법정에서도 전생에서도 마지막 반전에서도, 영화 속 어디에서도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이렇게 불완전하니 배우들의 연기가 힘에 부쳐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박승배 감독은 촬영감독 출신이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걸어서 하늘까지> <넘버.3> 등을 거쳐 60대의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한 셈이다. 그 첫 작품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의도 자체를 두고 논란을 벌일 필요는 없겠지만, 이야기의 앞뒤를 맞추는 일은 차치하고 분위기만이라도 한 가지로 유지했다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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